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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35권, 고종 34년 5월 28일 양력 2번째기사 1897년 대한 건양(建陽) 2년

한규설이 상소하여 사직을 청하다

법부 대신(法部大臣) 한규설(韓圭卨)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이 사임하는 글을 여러 번 올렸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고 있다가 엄한 명령을 받고 할 수 없어 태연하게 일을 본 지가 지금 10여 일 되는데 근심과 두려움으로 더욱더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지난번 채광묵(蔡光默)의 상소가 올라오자 신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죄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대체로 역적을 죽이고 나라의 원수를 갚는 것은 천리(天理)와 인정(人情)상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혈기를 타고난 사람치고 누군들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법을 담당한 신하가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여론이 극렬해지고 성토가 지극히 엄하니 신이 어떻게 감히 그것에 대해서 구질구질하게 변명을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유생(儒生)의 상소 가운데서 국내외에서 다스려야 할 적을 비호해서 다스리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 격식과 권한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혹시 여러 유생들이 알면서도 신을 규탄하는 것입니까? 죄에 걸린 것이 이에 이른 만큼 어찌 위축되지 않겠습니까?

신이 벼슬에 있으면서 신망이 있었더라면 이런 말이 나오겠습니까? 반드시 없었을 것입니다. 신이 임금을 섬기는 데에 충성을 다했더라면 이런 말이 있었겠습니까? 반드시 없었을 것입니다.

신이 반성하고 자책해야 할 일이 아님이 없으니 지극히 두려워서 간단한 글로 자책합니다.

바라건대 전하는 신에게 빨리 해당되는 법조문을 적용함으로써 사람들의 말에 사죄하며 조정의 기강을 엄숙히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아, 차마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떳떳한 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군들 밝게 처리하려는 뜻이 없겠는가마는 이렇게 늦어지게 된 것은 형세가 그러해서이다. 실없는 말에 대해서 많은 말로 해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경은 사임하지 말라."

하였다.


  • 【원본】 39책 35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27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왕실-국왕(國王)

    法部大臣韓圭卨疏略: "洊控辭本, 未蒙開允, 迫於嚴命, 靦然視務, 今十餘日。 皇隘憂懼, 尤不知所以爲計。 迺者蔡光默之疏出, 而臣不職之罪, 於是著矣。 夫誅亂逆復國讎, 卽天理人情之所當然。 凡今日東土血氣之倫, 孰不欲枕戈而從事也哉? 然而掌法之臣, 不事其事, 人言峻發, 聲討至嚴, 臣何敢與之呶呶辨說? 而儒疏中, 謂以在內在外可治之賊, 掩護而不治, 其爲權限格式之所不能自擅, 抑或諸儒知而論臣耶? 遭罹至此, 寧不危蹙? 使臣居官有孚, 則此言至乎? 必不至也。 使臣事君盡忠, 則此言至乎? 必不至也。 莫非臣反己自責者, 戰慄之至, 短籲自劾。 伏乞聖明, 亟勘當律, 以謝人言, 以肅朝綱焉。" 批曰: "嗚呼! 尙忍言哉。 有彝性者, 夫孰不有明張之義, 而睕晩至此者, 其勢然矣。 無實之言, 尙奚多辨? 卿其勿辭。"


    • 【원본】 39책 35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2책 627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