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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34권, 고종 33년 10월 19일 양력 4번째기사 1896년 대한 건양(建陽) 1년

김익로 등이 상소를 올리다

전 주사(前主事) 김익로(金益魯) 등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들이 작년 10월에 두 통의 상소를 올렸는데, 하나는 대행 왕후(大行王后)의 지위를 회복시키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원수를 갚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날의 각료(閣僚)들에게 제지를 당하는 바람에 중도에서 올라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신들은 걱정스럽고 원통한 마음을 더욱 참을 수가 없어 다시 감히 정성을 다 털어놓아 재차 하소연하는 것이니, 삼가 바라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밝게 살피고 통렬히 살피소서.

지금 저 일본 사람들에게 우리나라는 멀리로는 임진년(1592)에 원통하게도 침범을 당하고, 가까이로는 을미년(1895)에 통분하게도 왕후가 시해되어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는 것을 신민(臣民)들은 통절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장상(將相)과 대신(大臣)들은 원한을 품고 통분을 참은 채 앞뒤로 재고 꺼리면서 한 마디 말도 없이 오늘까지 지내왔으니, 애석한 마음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 《춘추(春秋)》의 법에서는 임금이 시해되었는데도 그 역적을 치지 않으면 장사(葬事)에 대해 쓰지 않는데, 이것은 바로 복수하는 큰 의리를 중시하고 초상과 장례와 같은 상례(常禮)는 도리어 경시함으로써 만 대의 신하들에게 이런 심상치 않은 변고를 당하면 반드시 역적을 토벌하여 복수한 후에야 임금과 아버지를 장사 지낸다는 뜻을 보인 것이니, 그 뜻이 매우 간절하고 명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장례를 지낼 달이 이미 지났으나 인봉(因封)을 하지 못하였고, 소상(小祥) 기일이 이미 지나갔지만 복(服)을 벗을 기약이 없으니, 어찌 통탄스럽고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복수하는 큰일은 한시가 급한데도 형편이 궁하고 힘이 약하여 스스로 분발하지 못하고 있으니, 아! 원통합니다. 연(燕) 나라에서는 선왕(先王)의 수치를 씻고도 오히려 늦었다고 하였으며, 제(齊) 나라에서는 9대의 원수를 갚았으니, 무엇을 기다리겠습니까? 무릇 하늘이 덮어 주고 땅이 실어 주며 해와 달이 비추고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곳에 사는 사람으로서 정말 사람의 마음과 본성을 가진 자라면 누가 그 부모의 원수를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만국(萬國)이 바둑판처럼 퍼져 있어 크고 작은 나라들이 나란히 서고, 강하고 약한 나라들이 대등하게 나서서 평등한 세계를 이루고 있으니, 그것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공법(公法)으로 유지해 나가기 때문에 가능할 뿐입니다. 정말 공법이 아니라면 약육강식(弱肉强食)하는 세상에 어찌 하루라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만국의 풍속은 비록 다르지만 천지의 타고난 성품은 마찬가지입니다. 이웃 나라의 내정(內政)에 간섭하는 것은 이미 공법에서 허락하지 않는 바인데, 더구나 함부로 흉악한 짓을 행하여 우리 국모(國母)를 시해하였으니, 이것을 공법이 용서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폐하께서는 어째서 각국(各國)과 널리 의논하지 않으십니까? 한 목소리로 의리를 같이하여 공법에 따라 토벌함으로써 영원토록 오주 동맹(五洲同盟)에 끼지 못하게 한다면 300년 묵은 원수와 새로 받은 수치를 하루아침에 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신민과 사졸(士卒)들은 의분과 적개심으로 약국(弱國)을 강국(强國)으로 변모시킬 것이며, 자주 독립(自主獨立)의 권한이 여기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무엇을 꺼려서 하지 못하시는 것입니까? 그리고 반역의 무리들이 다른 나라에 도망가서 숨는 데 대해서도 공법에서는 역시 숨겨두거나 보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지금 망명하여 법망을 빠져나가 일본(日本)을 소굴로 삼고 있는 자들이 모두 몇 명이나 됩니까? 화(禍)를 길러내고 재앙을 만들어 화근의 기미가 은연중에 숨어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폐하께서는 또한 누구를 꺼려서 엄히 조사하여 소환하심으로써 신속하게 나라의 법을 바로 세우고 훗날의 끝없는 근심을 막지 않으십니까?

삼가 바라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우레와 같은 위엄을 빨리 떨치시고 해와 달과 같은 밝음을 환히 드러내시어 의로운 목소리를 한 번 떨쳐 천하를 뒤흔드신다면 조종(祖宗)의 영령께서는 장차 기뻐하며 저세상에서 감격하여 말없이 도우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가 중흥하여 다시 억만 년토록 복이 이어질 것이니, 신하와 백성들이 춤추며 기뻐할 것이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상소의 내용은 실로 충분(忠憤)이 격발한 데에서 나온 것이다."

하였다.


  • 【원본】 38책 34권 5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04면
  • 【분류】
    사법-탄핵(彈劾) / 사법-재판(裁判) / 정론-정론(政論)

前主事金益魯等疏略:

臣等於昨年十月, 有兩度封章, 一曰‘復位’, 二曰‘復讎’。 而爲前日閣僚之所壅蔽, 中格未達。 臣等尤不勝憂憤痛恨之忱, 更敢披肝瀝血, 再爲叫閽之擧, 伏惟聖明, 澄察猛省焉。 今夫人之於我邦, 遠而有壬辰夷陵之痛, 近而有乙未弑后之讎, 其不共一天, 臣民痛切矣。 乃將相大臣, 含冤忍痛, 顧瞻畏忌, 噤無一言, 挨至今日, 可勝惜哉? 《春秋》之法, 君弑賊不討則不書葬者, 正以復讎之大義爲重, 喪葬之常禮反輕, 以示萬世臣子遭此非常之變, 則必能討賊復讎, 然後以葬其君親也。 其義可謂深切著明矣。 見今禮月已過, 因封未克, 祥期已過, 闋服無期, 豈不痛切冤迫乎? 現今復讎之大事, 時日是急, 而勢窮力孤, 無以自奮, 嗚呼痛哉? 雪先君之恥, 尙云晩矣; 復九世之讎, 何可待歟? 凡天之所覆, 地之所載, 日月所照, 霜露所墜, 苟有人心人性者, 孰不痛其父母之讎哉? 今夫萬國碁布, 大小竝列, 强弱齊等, 以成宇內平均之勢者, 非有他也, 以公法維持而已。 苟非公法, 則弱肉强食, 豈能一日得全哉? 況萬國之風俗雖殊, 天地秉彝之性則一也。 干豫隣國之內政, 已是公法之所不許, 而況肆然行凶, 弑我國母, 是可曰公法之所貸乎? 陛下何不廣議於各國? 同聲共義, 按公法以行討, 永不齒於五洲同盟, 則不惟三百年舊讎新恥, 一朝得雪, 凡我臣民士卒, 義勇敵愾, 化弱爲强, 自主獨立之權, 於是乎成矣。 陛下何憚而不爲也? 且叛逆之徒, 亡匿他國, 公法亦不許容隱護藏。 今亡命漏網, 以日國爲窩窟者, 凡幾人哉? 釀變媒孼, 禍機之伏冥冥者, 又未知如何。 陛下又誰憚而不嚴査刷還, 亟正邦法, 以杜後日無窮之慮哉? 伏乞聖明, 亟奮雷霆之歲, 渙發日月之明, 義聲一擧, 天下震動, 則祖宗之靈, 將欣然冥感。 默佑我邦家之中興, 更綿萬億之祚, 至於臣民之鼓舞踊躍, 又不待言矣。

批曰: "疏辭, 寔出於忠憤之所激也。"


  • 【원본】 38책 34권 5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604면
  • 【분류】
    사법-탄핵(彈劾) / 사법-재판(裁判)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