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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34권, 고종 33년 4월 28일 양력 3번째기사 1896년 대한 건양(建陽) 1년

이남규가 상소를 올리다

안동부 관찰사(安東府觀察使) 이남규(李南珪)가 올린 상소의 대략에,

"남쪽 지방이 소란스러운 것과 관련하여 신(臣)을 안동부 관찰사(安東府觀察使)에 임명하여 폐하의 명령을 선포함으로써 선비와 백성들을 무마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건대 변변치 못하여 사실 훌륭한 명령을 받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은혜로운 말씀이 간곡하고 신임이 무겁기에 황송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명령을 받들고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상주(尙州) 경내에 이르니, 서상렬(徐相烈)이라는 자가 스스로 ‘호좌 소모 토적 대장(湖左召募討賊大將)’이라고 하면서 그 무리 3,000여 명을 거느리고 예천군(醴泉郡)에 웅거하여 있는데, 그전 관찰사(觀察使)와 군수(郡守) 3명이 모두 그에게 살해당하였습니다. 신이 앞으로 나아가 안동(安東)의 경계에 이르렀더니, 서상렬 등이 신의 직책에 대하여 이것은 박영효(朴泳孝)가 고친 제도이고, 김석중(金奭中)이 새로 만든 법이며, 또 이번의 임명은 폐하가 선발한 것이 아니고 명령은 폐하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여기면서, 아전과 백성들을 위협하여 앞으로는 신의 수레를 막고 뒤로는 무리들을 동원하여 돌아갈 길을 끊어 놓았습니다. 신은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여 민가(民家)에 머물러서는 방(榜)을 내붙여 늙은이들을 불러다가 마주하여 명령을 알려주기도 하고, 군읍(郡邑)들에 격문을 띄워 은혜로운 명령을 공포하기도 하면서 의리로 깨우치고 화(禍)와 복(福)으로 달래었습니다. 그러자 영남(嶺南)의 백성과 선비들은 점점 믿고 따르며 눈물을 뿌리고 흐느끼면서, ‘우리들은 하마터면 의리로 의로운 거사(擧事)를 해치는 것을 면하지 못할 뻔하였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왕왕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나운 기세를 늦추고 의심을 풀고는 각각 돌아가서 생업에 안착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전 관찰사 때에 도피한 순검(巡檢)과 일본 군사가 안동부에 갑자기 달려들어 공해(公廨)를 쳐부수고 여염집들을 불태워버려 수천 호의 민가 중에서 지금은 한두 채도 없으며, 아전들과 군사들은 산골짜기로 뿔뿔이 도망치고 선비와 백성들은 구렁텅이에 굴러 떨어졌으니, 그 광경은 참혹하여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신이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 부임하여 불러모아가지고 안착시키려 한들 애당초 어쩔 수 없는 형편입니다. 또 서상렬은 영남 사람들이 점점 달라지고 일본 군사들이 불을 질러 태워버리자 그 격분을 신의 한 몸에 고스란히 옮겨서 안동에 있는 부락들에 급히 격문을 띄워가지고 신의 머리를 베어오라고 하였습니다. 영남 백성들은 모두 오랫동안 서상렬을 두려워하여 시키는 대로 할 뿐 감히 가타부타 하지 못하는 만큼 신이 만약 머물러 있다면 그 화는 앞으로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몸이 부서져 가루가 되는 것은 애당초 돌아볼 것도 못되지만, 사실 신이 죽으면 폐하의 명령이 더욱 욕되고 민심이 더더욱 어그러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지름길을 따라서 상주군까지 물러간 다음, 정예한 장수를 불러 전후의 형편을 해부(該部)에 보고하여 폐하에게 전달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건대, 임금의 명령을 풀덤불에 내버리고 널리 선포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신의 첫째 죄이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려둔 채 구원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신의 둘째 죄이며, 안동부를 잿더미 속에 밀어 넣고 보전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신의 셋째 죄이고, 선비들을 함정에 밀어 넣은 채 끌어내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신의 넷째 죄입니다. 이런 네 가지 죄를 짓고도 어찌 감히 아무 탈도 없는 사람처럼 뻐젓이 얼굴을 쳐들고 명령을 선포하는 자리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감히 짧은 상소를 올리어 스스로 규탄하면서 감처(勘處)를 기다립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신이 맡고 있는 관찰사의 직책을 위엄과 명망이 있는 사람에게 돌려주는 동시에 임금의 명령을 욕되게 하고 직책을 그르친 신의 죄를 다스림으로써 동료들을 깨우치고 멀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례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나라를 근심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을 스스로 누를 수 없어서 문득 또 시끄럽게 구니 삼가 살펴보아 주소서.

대체로 온 나라 사람들의 마음은 갑오년(1894) 6월 변란 때에 격분을 품고서 난동의 싹이 이미 텄고, 지난해 8월 변란에 원통함을 머금고 난동이 이미 자라났으며, 지난해 11월 변란에 분노가 쌓여 난동이 이미 번졌습니다. 지난번에 폐하가 위엄을 떨친 덕으로 흉악한 역적들이 처단되고 큰 의리가 펴지게 되자 중앙과 지방의 사람들과 선비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서로 말하기를, ‘국시(國是)가 정해지고, 폐하의 형세가 존대해졌다. 이로부터 하(夏) 나라의 정월달을 다시 쓰고, 주(周) 나라의 관직 제도를 다시 세우며 한(漢) 나라의 의식 절차를 다시 보게 되겠으니 우리들도 잠시나마 죽지 않겠구나.’ 하였습니다. 그래서 눈을 비비고 이마에 손을 얹고서 날마다 기다리며 서로 이끌고 부축하여 길가에 나서서 귀를 기울인 지 달포가 됩니다. 그런데 안으로는 내각(內閣)의 부(部)로부터 밖으로는 부(府)와 군(郡)에 이르기까지 시행되는 모든 조치는 모두 흉악한 역적 무리들이 변경시킨 법으로서 나라의 옛 제도는 폐지된 채 또다시 그전처럼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의 뜻과 사람들의 마음이 어찌 현혹되지 않으며 소란스러운 거짓말과 화란(禍亂)이 어찌 뒤따라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크게 간사한 자들을 겨우 제거하고 모든 일을 처음으로 시작하건만 폐하는 돌아오지 않고 외부의 분쟁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옛 제도를 밝게 닦아나가지 못하는 것은 단지 겨를이 없어서일 뿐이지 폐하가 혹시라도 옛 규례를 따르고 이루어 놓은 법을 준수하는 도리를 소홀히 여겨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심으로 나라를 위하는 충성스러운 신하와 의로운 선비들이 손을 모아 간절히 바라는 것은 단지 이것뿐이며, 반역을 꾀하는 간사한 자들과 교활한 무리들이 구실을 대고 난동을 선동하는 것도 역시 이것뿐입니다.

신의 어리석고 망녕된 생각으로는 새 법을 고치고 옛 법을 일체 회복함으로써 충성스러운 신하와 의로운 선비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간사하고 교활한 무리들의 음모를 꺾어버린 다음에야 백성들의 뜻이 정해지고 여론이 진정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화란이 그쳐지고 위험을 전환시켜 편안하게 함으로써 장구한 운수를 이어가는 방도는 바로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신의 말을 시무(時務)를 모르는 속된 선비의 예사로운 이야기로 여기지 말고 빨리 묘당(廟堂)에서 채택하게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번거롭게 사양하지 말고 가서 일을 보도록 하라. 마지막에 첨부한 문제는 응당 시국 형편을 참작해야 하겠다."

하였다.


  • 【원본】 38책 34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책 58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군사-특수군(特殊軍) / 사법-치안(治安) / 인사-임면(任免) / 역사-고사(故事)

安東府觀察使李南珪疏略:

以南服不靖, 命臣觀察安東府, 布諭德音, 撫輯士民。 自惟菲淺, 實無以揚休命、鎭群情。 顧恩言懇摯, 委畀隆重, 怵惕涕泣, 奉命南下。 至尙州境, 有徐相烈者, 自稱湖左召募討賊大將, 率其黨三千餘, 據醴泉郡, 舊觀察使及郡守三人竝被殺。 臣前進至安東界, 相烈等謂臣所帶, 是泳孝改制、奭中創經, 且今差除, 非由聖簡; 諭勅, 非由聖意, 脅盟吏民, 前拒使車, 調發黨類, 後截歸路。 臣進退不得, 占駐民家, 或榜招父老, 面諭德音, 或檄移郡邑, 謄布恩諭, 曉以義理, 示以禍福。 嶺南人士, 稍稍信服, 往往有揮淚哽咽曰: "吾曹幾不免以義傷。" 義擧將消梗釋疑, 各歸安業。 不意前使時巡檢逃避者及日本兵猝入本府, 打破公廨, 燒殘廬舍, 數千民戶, 今無一二。 吏卒奔散山谷, 士民顚連溝壑, 景狀愁慘, 不忍當覩。 臣雖欲前往赴任, 招集其接, 其勢固末由。 且相烈人稍貳, 兵燒蕩, 移怒移憤, 萃臣一身, 乃馳檄其部落在安東者, 令斬臣頭以來。 民皆積畏相烈, 惟令是從, 不敢可否, 臣若逗遛, 禍將不測。 一身糜粉, 固不足恤, 誠恐臣死則君命益辱、民心益乖。 不得已從間路, 退至尙州郡, 收召神精, 將前後形便, 報告該部, 要轉達黈聽。 而竊伏念棄君命於草萊而不能遍宣, 臣罪一也; 陷生靈於塗炭而不能拯救, 臣罪二也; 委城府於衣燼而不能保全, 臣罪三也; 納士類於擭穽而不能援拔, 臣罪四也。 有此四罪, 其何敢晏然若無故人, 抗顔居旬宣之職乎? 庸敢短章, 自劾俟勘。 伏乞臣所有觀察之任, 回授威望之人, 仍治臣辱命溺職之罪, 以警具僚, 以謝遠人焉。 一般憂愛, 不能自已, 輒又冒瀆, 伏願垂察焉。 蓋國中人心, 蓄憤於甲午六月之變而亂已萌矣; 含冤於去年八月之變而亂已苗矣; 積怒於去年十一月之變而亂已蔓矣。 曩者, 賴聖上之威, 凶逆伏誅, 大義克伸, 中外人士, 咸欣欣胥告曰: "國是, 定矣, 主勢, 尊矣。 自此復行正, 復立官, 復覩儀矣。 吾曹其尙少須臾無死乎?" 拭目加額, 惟日望之, 携扶道路, 側聽有月。 內自閣部, 外至府郡, 凡所施措, 一皆凶逆輩變更之法, 國家古制, 廢而不行, 猶復如前。 民志物情, 安得不疑眩; 騷訛禍亂, 安得不踵作? 今大慝纔祛, 庶務草創, 乘輿未旋, 外訌未息。 其未能修明舊制, 特未之暇耳, 非聖念或忽於率舊章、遵成憲之道也。 然忠臣、義士赤心爲國者, 攢手顒俟, 惟是而已; 奸宄、巨猾陰圖不軌者, 藉口煽亂, 亦惟是而已。 臣愚妄謂悉革新法, 一復舊制, 以慰忠臣義士之心, 以折奸宄、巨猾之謀, 然後民志可定, 物情可鎭矣。 禍亂可息, 回危爲安, 迓續永命, 亶在於是矣。 勿以臣言爲不識時務之俗士常談, 亟令廟堂採擇焉。

批曰: "其勿煩辭, 前往視務。 尾附事, 自當有參量時宜。"


  • 【원본】 38책 34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책 58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군사-특수군(特殊軍) / 사법-치안(治安) / 인사-임면(任免)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