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26권, 고종 26년 11월 28일 경오 2/7 기사 / 1889년 조선 개국(開國) 498년
영종 대왕과 두 왕후의 존호를 올리기 위해 도감을 설치하는 것을 묘호도감과 합쳐서 설치하고 거행하도록 하다
국역
시임 대신(時任大臣)과 원임 대신(原任大臣), 예조 당상(禮曹堂上)을 소견(召見)하였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홍집(金弘集)이 아뢰기를,
"영종 대왕(英宗大王)의 묘호(廟號)를 추후에 높이기 위하여 도감(都監)을 설치하여 행하도록 명이 있었습니다. 생각건대 영종 대왕은 문장과 계책과 무공은 우뚝이 모든 임금 가운데 으뜸이고, 52년 동안 명하여 토벌하고 공로에 따라 관리들의 품질(品秩)을 내려 준 것은 역사책에 이루 다 쓸 수 없을 정도이므로 탄식하며 잊지 못하는 생각이 세월이 오래 될수록 더욱 간절합니다. 지금 다행히 대론(大論)이 일어나 성대한 전례를 거행하게 되었으니, 위로 성상의 효성이 빛나고 아래로 사람들의 여론에 참으로 부합합니다. 신들은 흠송(欽頌)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고, 판중추부사 김병시(金炳始)는 아뢰기를,
"생각건대 우리 영종 대왕은 문덕(文德)으로 교화를 펴시고 무덕(武德)으로 난리를 평정하셨으니, 큰 공과 성대한 업적은 높고 위대하여 형용할 수 없으며 나라의 터전을 영구히 다져서 오늘날까지 아름다움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묘호(廟號)를 추후에 높이는 것은 실로 모든 임금들의 변함없는 법이며 온 나라 사람들의 다같은 바람인데, 조정의 의논이 하나로 합쳐져 성대한 예를 크게 거행하게 되니, 따르고 계승하는 성상의 효성이 더욱 빛날 것이므로 찬송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우의정(右議政) 조병세(趙秉世)는 아뢰기를,
"우리 영종 대왕은 큰 공과 위대한 업적이 있는데도 공이 있는 임금은 ‘조(祖)’라고 칭하는 예를 아직 행하지 않았으니, 수백 년 동안 겨를이 없어 행하지 못한 일이어서 공의(公議)가 억울해합니다. 오늘 조정의 의논이 모두 같으니 떳떳한 의식을 거행하여 묘호를 추후에 높임으로써 성상의 효성이 더욱 빛나고 사람들의 여론이 모두 기뻐할 것이므로 기쁘고 다행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우리 영고(英考)는 5기(紀) 동안 정치가 융성하였고 덕은 모든 임금 중에 으뜸이며 문장과 계책과 무공은 역사에 이루 다 쓸 수 없을 정도이므로 백대 후에도 탄식하며 잊지 못하는 생각이 오래될수록 더욱 간절하다. 지금 경들의 의논을 보니, 묘호를 추후에 높이는 것이 여러 사람의 여론에도 참으로 부합하여 나 소자는 감동되어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공이 있으면 ‘조’로 칭하는 것은 바로 변할 수 없는 법이니, 오늘 추후에 천양하는 것은 오히려 늦다고 하겠다."
하였다. 조병세가 아뢰기를,
"신이 삼가 나라의 예를 살펴보니, 묘호와 시호(諡號)를 일찍이 고쳐 정한 예(例)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고쳐서 의논하여 정해야 하니, 묘호를 의논할 날짜를 해조에서 좋은 날을 받아서 거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하교하기를,
"이미 행한 예가 과연 그러하였다."
하였다. 김홍집이 아뢰기를,
"우상(右相)이 아뢴 것을 물론 널리 고찰해야 합니다. 시호는 행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니 한두 글자는 고치는 것이 마땅하고, 묘호에 이르러서는 ‘영(英)’ 자는 참으로 진선진미(盡善盡美)하니, 다시 더할 나위 없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영’ 자는 실로 문무(文武)의 뜻을 다 갖추고 있으니 과연 더할 나위 없다. 더구나 ‘영’ 자는 바로 평소에 남긴 뜻이다."
하였다. 김홍집이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참으로 옳습니다. 묘호가 남긴 뜻에 부합하니 실로 우연이 아닙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묘호를 장차 높일 것이다. 현책(顯冊)을 추가로 올려 성덕(聖德)의 만분의 일이나마 형용하는 것은 떳떳한 전례(典禮)에 부합하며 또 우리 왕가에서 이미 행한 예이다."
하였다. 김홍집이 아뢰기를,
"우리 영묘(英廟)의 공과 덕은 여러 번 휘호(徽號)를 받았지만 아직까지 형용한 점이 미진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 묘호를 추후에 높이는 날에 또 현책을 올린다면 성상의 효성이 더욱 빛날 것이니, 더욱 흠앙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하니, 김병시가 아뢰기를,
"옥첩(玉牒)과 금보(金寶)로 아름답고 훌륭한 공적을 드날리니, 추후에 천양하는 뜻이 더욱 빛납니다. 이에 매우 기뻐하면서 송축하는 마음이 간절할 뿐입니다."
하였다. 조병세가 아뢰기를,
"더 높인 묘호를 올리고, 이어서 빛나는 큰 전례를 거행하게 되니, 진선진미합니다. 이에 두 손 모아 축하하여 마지않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영종 대왕, 정성 왕후(貞聖王后), 정순 왕후(貞純王后)에게 존호를 추후에 올려야 할 것이니, 도감을 설치하고 거행하여 존호를 의논하는 날짜는 예조에서 택하여 들이게 하고 묘호도감(廟號都監)과 합쳐서 설치하여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 【원본】 30책 26권 4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33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원문
召見時原任大臣、禮堂。 判府事金弘集曰: "英宗大王廟號追隆都監設行, 已有成命矣。 洪惟英宗大王, 文謨武烈, 卓冠百王, 五十二載之間, 命討敍秩, 史不勝書。 於戲! 不忘之思, 愈久愈切, 今幸大論斯發, 晠典將擧, 上有光於聖孝, 下允叶於輿情, 不任欽頌之至。" 判府事金炳始曰: "惟我英宗大王, 文以敷敎, 武以戡亂, 豐功盛烈, 巍蕩莫名, 邦基永固, 式至于今日休矣。 乃玆廟號追隆, 寔百王不易之典, 擧國大同之願, 而廷議歸一, 晠禮誕擧, 尤有光於遹追之聖孝, 無任讚頌之忱。" 右議政趙秉世曰: "以我英宗大王豐功偉烈, 尙闕祖功之禮, 爲數百年未遑之事, 公議齎鬱。 今日廷議攸同, 克擧彝章, 追隆廟號, 聖孝彌光, 輿情胥悅, 不勝慶幸矣。" 敎曰: "我英考治隆五紀, 德冠百王, 文謨武烈, 史不勝書, 百世於戲之思, 愈久愈切。 今見卿等之議廟號追隆, 允協輿情, 而予小子, 尤切感慕之忱矣。 有功稱祖, 乃是不易之典, 而今日追闡, 尙云晩矣。" 秉世曰: "臣謹考邦禮, 廟號諡號, 曾有改定之例, 今番改爲議定。 而議號日字, 令該曹擇吉擧行何如?" 敎曰: "已行之禮, 果然矣。" 弘集曰: "右相所奏, 當有博考, 而諡是象行, 一二字改之爲宜, 至於廟號則英字固已盡善盡美, 更無以加矣。" 敎曰: "英字實備文武之義, 果無以加矣。 況英字, 乃平日遺意也。" 弘集曰: "聖敎誠然矣。 廟號之符合遺意, 實非偶也。" 敎曰: "廟號將加隆矣, 追上顯冊, 形容聖德之萬一, 允合彝典, 而亦我家已行之禮也。" 弘集曰: "惟我英廟之功之德, 雖以屢應徽稱, 而尙有形容未盡者, 今於廟號追隆之日, 又上顯冊, 則聖孝彌彰, 尤切欽仰。" 炳始曰: "玉牒金泥, 載揚休烈, 尤有光於追闡之義, 祗切懽頌萬萬。" 秉世曰: "旣上加隆之廟號, 仍擧揚徽之丕典, 盡善盡美, 無任攢祝矣。" 敎曰: "英宗大王、貞聖王后、貞純王后, 當追上尊號矣。 設都監擧行, 議號日字, 令儀曹擇入, 與廟號都監合設擧行。"
- 【원본】 30책 26권 4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33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고종실록26권, 고종 26년 11월 28일 경오 2/7 기사 / 1889년 조선 개국(開國) 498년
영종 대왕과 두 왕후의 존호를 올리기 위해 도감을 설치하는 것을 묘호도감과 합쳐서 설치하고 거행하도록 하다
국역
시임 대신(時任大臣)과 원임 대신(原任大臣), 예조 당상(禮曹堂上)을 소견(召見)하였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홍집(金弘集)이 아뢰기를,
"영종 대왕(英宗大王)의 묘호(廟號)를 추후에 높이기 위하여 도감(都監)을 설치하여 행하도록 명이 있었습니다. 생각건대 영종 대왕은 문장과 계책과 무공은 우뚝이 모든 임금 가운데 으뜸이고, 52년 동안 명하여 토벌하고 공로에 따라 관리들의 품질(品秩)을 내려 준 것은 역사책에 이루 다 쓸 수 없을 정도이므로 탄식하며 잊지 못하는 생각이 세월이 오래 될수록 더욱 간절합니다. 지금 다행히 대론(大論)이 일어나 성대한 전례를 거행하게 되었으니, 위로 성상의 효성이 빛나고 아래로 사람들의 여론에 참으로 부합합니다. 신들은 흠송(欽頌)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고, 판중추부사 김병시(金炳始)는 아뢰기를,
"생각건대 우리 영종 대왕은 문덕(文德)으로 교화를 펴시고 무덕(武德)으로 난리를 평정하셨으니, 큰 공과 성대한 업적은 높고 위대하여 형용할 수 없으며 나라의 터전을 영구히 다져서 오늘날까지 아름다움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묘호(廟號)를 추후에 높이는 것은 실로 모든 임금들의 변함없는 법이며 온 나라 사람들의 다같은 바람인데, 조정의 의논이 하나로 합쳐져 성대한 예를 크게 거행하게 되니, 따르고 계승하는 성상의 효성이 더욱 빛날 것이므로 찬송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우의정(右議政) 조병세(趙秉世)는 아뢰기를,
"우리 영종 대왕은 큰 공과 위대한 업적이 있는데도 공이 있는 임금은 ‘조(祖)’라고 칭하는 예를 아직 행하지 않았으니, 수백 년 동안 겨를이 없어 행하지 못한 일이어서 공의(公議)가 억울해합니다. 오늘 조정의 의논이 모두 같으니 떳떳한 의식을 거행하여 묘호를 추후에 높임으로써 성상의 효성이 더욱 빛나고 사람들의 여론이 모두 기뻐할 것이므로 기쁘고 다행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우리 영고(英考)는 5기(紀) 동안 정치가 융성하였고 덕은 모든 임금 중에 으뜸이며 문장과 계책과 무공은 역사에 이루 다 쓸 수 없을 정도이므로 백대 후에도 탄식하며 잊지 못하는 생각이 오래될수록 더욱 간절하다. 지금 경들의 의논을 보니, 묘호를 추후에 높이는 것이 여러 사람의 여론에도 참으로 부합하여 나 소자는 감동되어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공이 있으면 ‘조’로 칭하는 것은 바로 변할 수 없는 법이니, 오늘 추후에 천양하는 것은 오히려 늦다고 하겠다."
하였다. 조병세가 아뢰기를,
"신이 삼가 나라의 예를 살펴보니, 묘호와 시호(諡號)를 일찍이 고쳐 정한 예(例)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고쳐서 의논하여 정해야 하니, 묘호를 의논할 날짜를 해조에서 좋은 날을 받아서 거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하교하기를,
"이미 행한 예가 과연 그러하였다."
하였다. 김홍집이 아뢰기를,
"우상(右相)이 아뢴 것을 물론 널리 고찰해야 합니다. 시호는 행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니 한두 글자는 고치는 것이 마땅하고, 묘호에 이르러서는 ‘영(英)’ 자는 참으로 진선진미(盡善盡美)하니, 다시 더할 나위 없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영’ 자는 실로 문무(文武)의 뜻을 다 갖추고 있으니 과연 더할 나위 없다. 더구나 ‘영’ 자는 바로 평소에 남긴 뜻이다."
하였다. 김홍집이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참으로 옳습니다. 묘호가 남긴 뜻에 부합하니 실로 우연이 아닙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묘호를 장차 높일 것이다. 현책(顯冊)을 추가로 올려 성덕(聖德)의 만분의 일이나마 형용하는 것은 떳떳한 전례(典禮)에 부합하며 또 우리 왕가에서 이미 행한 예이다."
하였다. 김홍집이 아뢰기를,
"우리 영묘(英廟)의 공과 덕은 여러 번 휘호(徽號)를 받았지만 아직까지 형용한 점이 미진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 묘호를 추후에 높이는 날에 또 현책을 올린다면 성상의 효성이 더욱 빛날 것이니, 더욱 흠앙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하니, 김병시가 아뢰기를,
"옥첩(玉牒)과 금보(金寶)로 아름답고 훌륭한 공적을 드날리니, 추후에 천양하는 뜻이 더욱 빛납니다. 이에 매우 기뻐하면서 송축하는 마음이 간절할 뿐입니다."
하였다. 조병세가 아뢰기를,
"더 높인 묘호를 올리고, 이어서 빛나는 큰 전례를 거행하게 되니, 진선진미합니다. 이에 두 손 모아 축하하여 마지않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영종 대왕, 정성 왕후(貞聖王后), 정순 왕후(貞純王后)에게 존호를 추후에 올려야 할 것이니, 도감을 설치하고 거행하여 존호를 의논하는 날짜는 예조에서 택하여 들이게 하고 묘호도감(廟號都監)과 합쳐서 설치하여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 【원본】 30책 26권 4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33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원문
召見時原任大臣、禮堂。 判府事金弘集曰: "英宗大王廟號追隆都監設行, 已有成命矣。 洪惟英宗大王, 文謨武烈, 卓冠百王, 五十二載之間, 命討敍秩, 史不勝書。 於戲! 不忘之思, 愈久愈切, 今幸大論斯發, 晠典將擧, 上有光於聖孝, 下允叶於輿情, 不任欽頌之至。" 判府事金炳始曰: "惟我英宗大王, 文以敷敎, 武以戡亂, 豐功盛烈, 巍蕩莫名, 邦基永固, 式至于今日休矣。 乃玆廟號追隆, 寔百王不易之典, 擧國大同之願, 而廷議歸一, 晠禮誕擧, 尤有光於遹追之聖孝, 無任讚頌之忱。" 右議政趙秉世曰: "以我英宗大王豐功偉烈, 尙闕祖功之禮, 爲數百年未遑之事, 公議齎鬱。 今日廷議攸同, 克擧彝章, 追隆廟號, 聖孝彌光, 輿情胥悅, 不勝慶幸矣。" 敎曰: "我英考治隆五紀, 德冠百王, 文謨武烈, 史不勝書, 百世於戲之思, 愈久愈切。 今見卿等之議廟號追隆, 允協輿情, 而予小子, 尤切感慕之忱矣。 有功稱祖, 乃是不易之典, 而今日追闡, 尙云晩矣。" 秉世曰: "臣謹考邦禮, 廟號諡號, 曾有改定之例, 今番改爲議定。 而議號日字, 令該曹擇吉擧行何如?" 敎曰: "已行之禮, 果然矣。" 弘集曰: "右相所奏, 當有博考, 而諡是象行, 一二字改之爲宜, 至於廟號則英字固已盡善盡美, 更無以加矣。" 敎曰: "英字實備文武之義, 果無以加矣。 況英字, 乃平日遺意也。" 弘集曰: "聖敎誠然矣。 廟號之符合遺意, 實非偶也。" 敎曰: "廟號將加隆矣, 追上顯冊, 形容聖德之萬一, 允合彝典, 而亦我家已行之禮也。" 弘集曰: "惟我英廟之功之德, 雖以屢應徽稱, 而尙有形容未盡者, 今於廟號追隆之日, 又上顯冊, 則聖孝彌彰, 尤切欽仰。" 炳始曰: "玉牒金泥, 載揚休烈, 尤有光於追闡之義, 祗切懽頌萬萬。" 秉世曰: "旣上加隆之廟號, 仍擧揚徽之丕典, 盡善盡美, 無任攢祝矣。" 敎曰: "英宗大王、貞聖王后、貞純王后, 當追上尊號矣。 設都監擧行, 議號日字, 令儀曹擇入, 與廟號都監合設擧行。"
- 【원본】 30책 26권 4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33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비빈(妃嬪)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