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에서 황재현, 홍시중을 처벌할 것을 아뢰다
승정원(承政院)에서 아뢰기를,
"출신(出身) 황재현(黃載顯)·홍시중(洪時中)이 방자하게 상소를 올렸는데 비록 정사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하지만 격식에 벗어난 것이니 마땅히 물리쳐야 합니다. 게다가 홍시중의 상소 내용은 극도로 무엄하고 황재현의 상소문은 문구가 지극히 흉악하기 때문에 원래의 상소문을 모두 다 아직까지 본원에 보류해 두었습니다. 이와 같은 부류는 용서할 수 없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빨리 처분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봉입하라."
하였다. 황재현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이 일개 출신으로서 구중궁궐에 글을 바치는 것은 분수에 어긋나는 행동으로서 감히 용서받기 어려운 죄입니다. 그러나 신이 해변에서 병서(兵書)를 10여 년간 공부하였으니 정밀하고 심오한 문제에 이르러서는 비록 잘 안다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그 대강의 내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이 배운 것이 병법에 관한 것이고 말하는 것도 병법에 관한 것이며 맡은 책임도 군사에 관한 것이니, 세상이 위기에 처한 이때에 제 한 목숨을 아껴 충성스런 계책을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체로 병법은 잘 쓰면 천하의 패권을 쥐기에 충분하지만 잘못 쓰면 도적을 불러들이고 화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그 승패는 군사들이 칼을 들고 접전한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묘당(廟堂)에서 일을 처리하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며, 성공과 실패는 성곽이나 군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장수를 선택하고 군사를 훈련시키는 데 달려 있습니다. 장수를 선택하고 군사를 훈련시키는 것을 어찌 난리가 있게 된 뒤에 하겠습니까? 옛날 봄에 사냥하고 가을에 사냥하며 대오를 정돈하고 무기를 다스린 것은 다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방도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대세를 논한다면 중국이 천하를 호령하지 못하는 반면에 변경에서 반란이 일어나 제(齊) 나라와 초(楚) 나라의 옛 지경과 연(燕) 나라의 옛터를 지키기도 하고 잃기도 하였습니다. 이 밖에 바다를 사이에 두고는 러시아〔俄羅斯〕, 프랑스〔法國〕, 미국(美國), 영국(英國)과 같은 나라의 세력이 크게 확장되어 무도한 짓을 제멋대로 하고 때때로 전쟁을 일으켜 중국과 겨루고 있으니, 이것은 모두 성인이 난 지 오래되어 교화가 해이해져서 세상이 어둠 속에 묻힌 것이니, 이는 치세(治世)에서 난세(亂世)로 들어가는 시대입니다. 혹시라도 그런 세력이 병력을 가지고 우리나라와 같은 작은 나라를 침범한다면 그 환란은 마치 태산으로 계란을 내리누르는 형세보다 심할 것입니다. 또 비슷한 소식으로서는 황준헌(黃遵憲)의 책략이 있고 명백한 사실로서는 일본 사신의 행동이 있었으니, 지금은 참으로 나라가 존재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위급한 시기입니다. 이 때문에 전하께서는 한밤중에도 잠들지 못하고 밤낮으로 근심하면서 삼천리 강산을 자신의 대에 이르러 혹시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500년 종묘사직(宗廟社稷)이 자신의 대에 이르러 혹시 망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계십니다. 안으로는 훌륭한 장수가 없고 밖으로는 적의 나라가 많으며 창고는 텅 비고 무기와 군사는 정예롭지 못하므로 계책을 쓸 수 없고 형세를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제서야 비상한 계책을 내어 또 세상에 없던 일을 경영하여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을 설치하고 사신을 자주 보내는데, 그 의도는 바로 이웃 나라와 연계를 맺어서 외적을 막고 통상으로 유무상통(有無相通)하여 서로 간에 적절하게 쓰는 데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니 잘하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군사를 강하게 만들 수 있을 듯하지만 잘못하면 도리어 침략을 불러오고 화를 초래하기 쉽습니다. 그 계책이 이로운가 이롭지 못한가는 미리 따져볼 수 없지만 사신 행차로 연로(沿路)의 물력(物力)이 피폐해지고 다른 나라의 옷차림을 한 자들이 수도 부근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여 위로는 관리들로부터 아래로는 뭇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에 놀라지 않는 이가 없으니, 이것은 지혜로운 자가 법을 만들면 어리석은 자가 그것에 구애되고 어진 사람이 예법을 고치면 어질지 않은 사람이 그것의 시비를 따진다는 옛 사람의 말과 같지 않습니까?
신이 수도에 머물러 있으면서 경향(京鄕)의 인심을 헤아려보니, 대뜸 무지하고 우매한 사람들이라 하여 그것을 모른다고 결론짓고 선뜻 실시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심(人心)으로 나라를 유지해 가는 것이 마치 썩은 줄로 여섯 마리 말을 모는 것처럼 예나 이제나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의 절실한 경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이 혹시 생활을 넉넉하게 하고 백성들에게 이로운 방도가 된다 하더라도 옛 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을 창출하여 할 수 있는 일에 감히 경솔하게 손대지 않은 것은, 나라의 운명이 백성들에게 달려 있으므로 백성들이 한 번 동요하여 흩어지게 되면 이로운 측면에서는 장차 성공을 보장할 수 없게 되고 해로운 측면에서는 나라의 존망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위에서는 신뢰가 없고 아래에서는 법을 지키지 않아서 백성들의 마음이 흩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대체로 백성들의 정상은 언제나 다스리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는데 팔도(八道)의 감사(監司)로부터 360개 고을의 수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어질고 착한 정사는 모르고 오직 백성들에게서 빼앗지 않고는 만족할 줄 모르는 학정으로 서로들 백성에게서 빼앗으려고만 하니, 온 나라의 백성들이 모조리 물과 불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저 해가 언제나 없어지겠는가? 나와 함께 없어지고 말자.〔是日曷喪及予偕亡〕’라는 말이 오히려 헐후(歇后)한 말이 되었으니, 곤궁해도 호소할 데 없는 그들의 심정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화적떼가 일어나 산골짜기에 모여들고 해적들은 무리지어 무기를 싣고서 대낮에 큰 길에서 길가는 사람을 막고서 돈을 빼앗는데 심지어는 세전(稅錢)과 군목(軍木)까지도 왕왕 탈취당하게 되었습니다. 도적의 수가 혹은 수백 명 혹은 700, 800명에 이르며 그 밖에 시정(市井)과 여항(閭巷)에서 출몰하는 잔당들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도성 안에서 도적과 화재의 변고가 자주 일어나니 이것은 실로 깊이 근심하고 길게 걱정하는 사람으로서는 마땅히 저 사행을 늦추고 이것을 서둘러야 할 일입니다.
만약 이러한 때에 한 사내가 들고 일어나서 주먹을 부르쥐고 선동한다면 관서(關西) 이북과 영남(嶺南), 호남(湖南) 이하의 땅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이 무너지려 하는 때를 당하여 그저 느긋하게 걱정할 줄 모르니, 신은 다만 ‘밤에 파수 보는 누(樓)에 올라 태백성(太白星)을 바라보누나.〔夜上戌樓看太白〕’라는 시를 읊조리면서 눈물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크게 한숨을 쉬니 세찬 바람이 쏴 불고 바다를 바라보며 눈을 부릅뜨니 분노로 간담이 찢어지는 듯합니다.
신은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방황하면서 현실에 대하여 생각해보니, 지금 나라의 운수는 날로 어려워지고 민심은 날로 흩어지며 왜적은 항구를 청하고 도적은 무리지어 일어나며 선비들의 사기는 저하되어 조정을 함부로 비방하며 문관(文官)은 안일에 빠졌고 무관(武官)은 놀기만 하며 고관들의 집에는 청탁하는 일로 분주하고 상하(上下)의 언로가 막혀서 서로 멸망의 길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닥쳐올 화는 ‘내 눈을 빼서 동쪽 성문에 걸어 달라.〔吾目掛東門〕’라고 한 오자서(吳子胥)의 말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화가 자기 집안에서부터 일어날 것이므로 북방 오랑캐를 막아도 소용이 없다.〔禍起蕭牆無用防胡者〕’라고 하는 경우와 어찌 맞지 않겠습니까?
지금 가만히 생각건대 군사에 관한 정사는 다섯 가지나 있으니, 장수를 잘 선택하는 것이 첫째이고 진법(陣法)을 연습하는 것이 둘째이고 군량을 비축하는 것이 셋째이고 병졸을 단련시키는 것이 넷째이고 청야(淸野) 전술이 다섯째입니다.
장수를 진실로 적임자로 얻는다면 복잡한 형세도 손바닥처럼 장악할 수 있고 천리 밖의 형편도 심중에서 따져볼 수 있으므로 적을 제압하고 승리를 이룩하는 묘책이 전쟁을 하기 전에 결정되어 국외의 적과 국내의 도둑으로 하여금 의혹을 가지게 하여 여기에 감히 딴마음을 먹지 못하게 할 것이니, 이른바 가장 뛰어난 병법은 적의 모의를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진법이 숙련되어 있으면 기법(奇法)과 정법(正法)을 써서 세상에 겨룰 데가 없으며, 설사 갑자기 나타나는 복병과 강한 무기를 만난다 해도 군대의 대오가 태산처럼 안정되어 동요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북을 치면 끓는 물과 불 속에라도 뛰어들 듯이 진격하고 징을 울리면 금과 옥도 모두 버리고 멎게 되므로 어떤 군대라도 상대하지 못할 것이니 어떤 적인들 평정하지 못하겠습니까?
만약 군사들이 굳세고 힘이 있어서 인내성 있고 모질다면 이것은 이른바 초(楚) 나라 6군(郡)의 좋은 집안의 젊은이들과 기이한 재주를 갖춘 검객 같은 사람들이니, 절도 있게 제어하고 의리 있게 양성한다면 마치 자제들이 부모를 호위하듯 손발이 머리와 눈을 보호하듯 나라를 보호할 것입니다.
군량을 충분히 쌓아놓고 운반을 잘한다면 적의 형편을 엿보면서 싸우거나 지키면서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은 이른바 편안히 앉아 먼 곳에서 지쳐서 오는 적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청야 전술이란 들에 쌓여 있는 백성들의 곡식을 모조리 감추어 적들로 하여금 먹을 것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적들이 우리의 경내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정말 안다면 꼼짝하지 못하고 온몸을 움츠리고 감히 경솔히 움직이지 못할 것이니, 그것이 또한 다음가는 방법으로 될 만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조리정연하니 비단 《무비지(武備誌)》와 윤씨(尹氏)의 《보약(堡約)》에만 기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몇 해 전에 지금의 장신 신헌(申櫶)이 초기(草記)하여 각 고을에 포고한 것도 역시 급선무를 안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대개 진(秦) 나라, 한(漢) 나라 이후로 송(宋) 나라, 명(明) 나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시험해 보았으나 백번 중에 한 번도 실패한 것이 없었으니 분명히 본받을 만한 것입니다.
다섯 가지 정사 가운데서 장수를 선택하는 법에 대해서는 지금의 시임 장신(時任將臣)과 원임 장신(原任將臣)들을 보아도 한 가지 방법도 시험해 본 적이 없었으니, 신이 외람되게 이에 대해 경솔히 논의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진(陳) 치는 법에도 숙련되었는지 여부를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이 몇 해 전에 함경도(咸鏡道)와 전라도(全羅道)의 군영(軍營)에 다니면서 이른바 병교청(兵校廳)의 집사(執事)들에게서 들은 것은 우리나라의 병서(兵書)로서 일반적인 것은 바로 《병학지남(兵學指南)》 1질(帙)인데, 완전히 통달하였다 하더라도 창졸간에 진 치는 상황에 닥치면 실수하여 격식을 어기는 것이 열에 여덟 아홉은 된다고 합니다. 하물며 평상시에 연습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아서 속오 대오법(束伍隊伍法)과 기법(奇法)과 정법(正法), 북을 울리고 징치는 것을 어떻게 하는지도 전혀 모르며 전투 동작법, 총 쏘고 활 쏘고 나무와 돌을 내리굴리며 당번을 교대하는 일들을 마치 꿈속에서 말을 더듬는 것처럼 여기고 있으니, 여기에서 팔도의 군(郡), 현(縣), 영(營)과 진(鎭)에는 한 명의 병교(兵校)도 진 치는 법을 대강이라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불행한 일이 있다면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기다리기를 마치 임진년(1592)에 적이 천리 길을 단번에 달려와 서울을 곧바로 친 것과 같이 하니 학식 있는 사람들이 어찌 한심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개 각 고을의 이른바 ‘병교’라는 것은 바로 난리가 일어났을 때 장차 군정(軍正)이 될 사람입니다. 변란이 일어날 때를 예상하고 혹시 천성이 충성스럽고 의로운 사람이 자기 직무를 버리지 않고 말을 채찍질하여 입이 마르도록 수십 명의 병졸로 불러 모은 사람 중에서 군무에 능통한 자에게 병교의 임무를 맡기고 능하지 못한 자는 받아들이지 말며 임무를 맡은 자에게는 그 병교청 안에서 제일 중요한 자리를 준다면 한해를 넘기지 않아 군무에 정통한 자가 많아질 것입니다.
식량을 저축하는 방도는, 우리나라는 삼남(三南)에서 배로 운반하는 것에 불과한데 근래 배가 파손되어 잃은 것이 해마다 30, 40척 이상이며 총계가 5, 6만 석(石)이나 되니 백성들에게 독촉해서 징수한다 하더라도 끝내 흐지부지하게 소비하고 맙니다. 신이 바닷가 고을에서 나서 자랐으므로 조운(漕運)의 폐단에 대하여 좀 알고 있습니다.
대체로 경강(京江)의 선주(船主)와 조창(漕倉)의 뱃사공들이 그 선가(船價)를 탐하여 많은 이익을 남겨먹기 위하여 배를 굉장히 크게 만들어서 짐을 싣되 적어도 2,000여 석 이상입니다. 또 혹시 더 실을 쌀이 있으면 일은 적고 값은 곱절로 받는 이익을 탐내어 험한 바닷길을 가면서 요행수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뜸 짐을 더 실으니 그 중량은 태산처럼 무겁게 됩니다. 바람을 받은 돛배가 수십 일 물길을 가는 과정에 사나운 파도와 광풍을 만나기라도 하면 바다의 파도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니, 이는 비단 귀중한 물건을 모두 버리게 될 뿐 아니라 나라의 생계와 군량에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각도(各道)에 엄중하게 공문을 띄워 세곡(稅穀)을 운반하는 배에 짐을 싣는 양을 대략 1,000석을 넘지 않도록 한다면 침몰되는 일이 반드시 줄어들 것입니다.
군사들로 말하면 지금 각 고을의 군총(軍總)은 한갓 빈 장부만 끼고 있으며 속오(束伍), 아병(牙兵), 주사(舟師), 기수(旗手)는 모두 거짓 이름일 뿐입니다. 대장에 올라 있는 이름도 모두 죽은 사람이고 훈련에 참가한다는 인원수도 태반이 어린아이들이니 갑자기 변란이 생길 때에는 이 부류들을 내몰아서 정예한 군사를 방어하게 되니 어찌 승리할 수 있는 방도가 되겠습니까? 권세가의 묘촌(墓村)과 향교(鄕校)의 교생(校生)에 대하여 과조(課條)를 엄격히 세워 병적(兵籍)에 입적시켜 매달 초하루와 보름마다 각 고을의 병교청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훈련시킨다면 충분히 정예병이 될 것입니다. 다만 간사하고 교활한 향리가 뇌물을 받고 빼내려고 하는 것을 엄금해야 합니다.
그러하니 청야 전술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군사들이 없으면 승리를 보장할 수 없고 군사들이 있다 하더라도 군량을 비축하지 않으면 승리를 보장할 수 없으며 군량을 저축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진법대로 하지 않는다면 승리를 보장할 수 없고 진법대로 한다 해도 훌륭한 장수가 없으면 결코 승리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 있어야 정사가 거행되고 사람이 없으면 정사가 폐해진다는 것입니다. 정승의 묘지에 있는 잣나무에도 학이 날아와 둥지를 틀고 충무공(忠武公)의 무덤에도 석린(石獜)만이 쓸쓸하게 있으니 어찌 전하께서 오늘날 자신을 돌아보면 길이 탄식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오늘의 형세는 우선 수성(守成)하고 뒤에 싸우지 않을 수 없는데 먼저 지키는 방도는 민보(民堡)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 법은 위로는 나라를 위하여 적을 방어할 수 있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 생업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이니 간단하면서도 세상 이치에 맞는 것입니다.
그밖에 병정(兵政)의 요령과 일의 임기응변에 대해서는 글로 낱낱이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신은 심한 우려를 금할 수 없어서 이렇게 부족한 계책을 올리오니, 오직 전하께서는 사람이 천하다 하여 말까지 천하게 여기지 말고 쓸 만한 말이면 취해 쓰시고 쓸만하지 않으면 망녕되게 말한 신의 죄를 다스려서 나라 사람들에게 사죄하게 해 주소서."
하였다. 홍시중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은 일개 하찮은 무사(武士)로서 어떻게 감히 나라의 큰 계책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왜인(倭人)들이 우리나라의 화근으로 된 지 오래되었으니 임진년(1592)과 같은 변란에 대해서는 오히려 차마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근래에 아름다운 풍속이 점차 변해지고 좋은 제도에도 폐단이 생겨 문관(文官)들은 안일해지고 무관(武官)들은 유흥에만 빠져 점점 더 수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총애와 녹봉(祿俸)을 탐내는 사람들은 팔짱끼고 바라보기만 하고 모험하면서 요행수를 바라는 무리들은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사설(邪說)을 멋대로 의논하여 군부(君父)의 뜻을 바꾸고 은밀한 뇌물과 진기한 물건으로 임금의 물욕을 이끌어서 관소(館所)를 청소하고 음식 대접을 성대하게 해주게 하며 땅을 떼 주고 항구를 열어주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예의 바른 사람들이 금수같은 무리로 변했고 행적이 개돼지 같은 무리와 교류하게 되니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게 되고 나라가 나라구실을 못하게 되었으니 이런 무리의 죄에 대해서는 주륙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무리들은 왜놈들에게 속임을 당했고 전하께서는 이런 무리들에게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신은 전하께서 속았다는 사실을 분별해 드리겠습니다. 이 무리들은 말하기를, ‘왜인(倭人)들과 화친하는 것은 그전부터 있던 제도이지 오늘 처음으로 만든 일이 아니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크게 옳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옛날의 화친의 경우에 동래부(東萊府)의 한 구석에 관시(關市)를 설치했다 하더라도 한 발자국이라도 경계를 넘는 것을 엄격하게 방지하였으니 이것은 왜인들이 우리에게 제재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화친은 이와 반대로 지역을 형편대로 골라서 요충지를 차지할 뿐 아니라 수도 부근의 연안(沿岸)까지 진출하여 해금(海禁)을 무너뜨리고 수도 안으로 마구 들어오는 바람에 국경의 기찰을 시행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것은 곧 우리가 왜인에게 제재를 받는 격입니다. 또 말하기를, ‘우리가 화친하는 것은 왜인이고 서양 사람이 아니므로 해롭지 않다.’라고 하는데 이것도 크게 옳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옛날의 왜인은 미욱한 풍속과 습관이 그 나라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변천하는 외국의 문물에 관심둘 겨를이 없었지만, 오늘의 왜인은 이와는 반대로 서양옷을 입고 서양기구를 쓰고 서양배를 타고 서양물건을 실어 나르며 서로 통상하는 대상이 모두 대양 서쪽의 다른 종족들입니다. 심정이 서로 통하고 머리모양도 바꿨으니 왜인이 서양 사람이고 서양 사람이 왜인이라는 것은 지혜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또 말하기를, ‘항구를 열고 시장을 설치하더라도 규정을 세워 세금을 받으며 아편이나 예수교 책 같은 것은 모두 조사하고 적발해서 극형에 처한다면 우리가 걱정할 것이 없다.’라고 하는데, 이것도 크게 그렇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교묘한 술책을 써서 잇속의 미끼로 백성들을 유인하고 예수 교리로 사람의 마음을 잡아끌면 우매한 자들은 맛을 들여 좋아하고 건방진 자들은 책을 보고 미혹되어 말세의 폐습에 모든 사람들이 아편을 먹고 예수교에 물들여지게 될 것이니, 앞에서 수색하고 적발해서 극형을 가한다는 것도 결국 헛된 문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왜인이나 여러 나라들과 화친하는 것은 러시아를 방비하기 위한 급선무이며 또 왜인이 우리와 화친하려는 것은 역시 러시아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는데, 이것도 크게 그렇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만일 왜인들이 정말 러시아를 두려워하여 우리와 화친을 하자고 한다면 왜인이 약하다는 것을 알 만한데 지금 약한 왜인의 힘을 빌어서 러시아의 침략을 늦추어 보자는 것이 역시 그릇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 말하기를, ‘지금의 무기는 새로 나올수록 더욱 기묘한 까닭에 저편이 가지고 이편이 못 가지면 이기고 지고 하는 것은 벌써 결판이 나는 것이니 각 나라에 가서 제조법을 배워온 다음에야 변란을 당해낼 수 있다.’라고 하는데, 이것도 크게 그렇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헌원씨(軒轅氏) 이후로 병법(兵法)을 말한 사람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지극히 정밀하고 기묘해서 헤아릴 수 없는 한 가지는 임금의 마음에 있는 ‘일(一)’ 자에 간직되어 있을 뿐입니다. 임금이 이 일심(一心)으로 장수를 임명하고 장수가 이 일심으로 군사들을 통솔하며 군사들이 이 일심으로 상부에 복종한다면 전 부대가 승리하리라는 것은 접전하지 않고도 결정될 것입니다. 지금 외적을 방어하려고 하면서도 적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곳에서 병법을 배워다가 이길 수 있다고 하니, 미욱한 사람도 그것을 승산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불행히도 왜인과 화친하여 수로와 육로로 오고가는 사람들이 잇달아서 보고 들어 우리나라의 실정을 이미 알게 되었으니, 갑자기 왜인을 준엄하게 배척한다면 그것은 왜인에게 트집잡힐 구실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당면한 계책으로서는 따로 조규(條規)를 세워서 10년에 한 번씩 신사(信使)가 가면 다음해에는 그들이 오며 그 9년 사이의 사무는 모두 동래부(東萊府)에서 제기하는 대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신이 일본에 가서는 10일 이상을 객관(客館)에 머물지 않고 또 객관 밖에 나가서 놀지도 말 것이고 일본사신이 우리나라에 와서도 마찬가지로 할 것이며, 사행(使行)의 수원(隨員)은 10명으로 정하여 피차 동일한 인원수로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른바 ‘국서(國書)’란 것은 그 임금이 새로 들어선 때가 아니라면 사신(使臣)의 배를 보내지 말며 그들의 배를 대기시켜 항구를 열어준 대가를 요구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항구를 세 군데나 이미 허락해 준 것에 대해서는 되찾을 수 없지만 그중의 한 군데는 우리나라의 목구멍과 같은 지역이니 단단히 방어할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계선을 명확하게 그어 목책(木柵)을 설치하고 함부로 출입하는 것을 엄하게 방지하며 인천(仁川)을 수영(水營)으로 승격시키고 부평(富平)을 병영(兵營)으로 승격시켜 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방어하게 할 것이며 목책 밖으로 또 몇 개의 진영을 설치하고 군정(軍政)에 지략이 있는 사람을 택하여 두어야 합니다. 항구에는 따로 봉화를 설치하여 저들의 배가 정박하는 것을 봉화로써 알리며 저들의 상선(商船)은 많아도 2, 3척을 거느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시장을 여는 것은 해일(亥日)로 정하여 한 달에 두 차례 사고팔되 교역하는 물건이 서양사람의 손을 거친 것은 일체 엄금하고, 잠상(潛商)도 적발하는 대로 예수교에 대한 형률에 의거하여 즉시 효수시켜 경고시킬 것입니다. 일본에서 생산되지 않은 물건은 사고파는 것을 허락하지 말며 물건을 사고파는 법(法)도 공문으로 통지해 오지 않은 것은 몰수하며, 미곡이나 포목과 같은 물건은 세 곳의 항구에서 모두 무역하지 못하게 하며, 또 현물과 현물을 맞바꾸기만 하고 동화폐(銅貨幣)의 사용을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본국의 상고세(商賈稅)는 10분의 5를 정식으로 만들어 우리 사람들은 잇속이 적다고 하여 잘 가지 않고 저 왜인(倭人)들은 장사가 잘 안 된다고 하여 잘 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몇 해 안 가서 항구에서 생기는 폐단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른바 《중서문견(中西聞見)》, 《만국공법(萬國公法)》, 《공사지구(公史地球)》, 《영환신보(瀛環申報)》, 《흥아회잡사시(興亞會雜事詩)》, 《속금일초공업육학(續今日抄工業六學)》 등의 책과 황준헌(黃遵憲)의 《조선책략(朝鮮策略)》 등 허다한 책들을 일일이 찾아내어 종로 거리에서 불태우고 윤음을 내려서 지난날에 저지른 과오에 대한 뉘우침을 진술하게 하고 예수교를 배척하는 뜻을 널리 알려서 만백성들이 명확히 듣고 잘 따르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여 재난을 없애며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뭉쳐 성벽처럼 된다면 어찌 왜인(倭人)이나 서양 사람, 러시아 사람이 강대한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미천한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말까지 천시하지 말고 쓸 만한 말이거든 채용하고 쓸 수 없는 말이라면 임금을 기만한 신의 죄를 다스려주소서."
하였다.
- 【원본】 22책 18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면
- 【분류】외교-러시아[露] / 외교-미국(美) / 외교-영국(英) / 교통-수운(水運) / 사법-탄핵(彈劾) / 정론-정론(政論) / 군사-병법(兵法) / 군사-군기(軍器) / 역사-고사(故事) / 외교-프랑스[法] / 왕실-종사(宗社) / 사법-치안(治安) / 상업-시장(市場) / 군사-금화(禁火) / 과학-천기(天氣) / 군사-지방군(地方軍) / 군사-병참(兵站) / 출판-서책(書冊) / 군사-부방(赴防) / 재정-전세(田稅)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재정-국용(國用) / 군사-통신(通信) / 군사-관방(關防) / 재정-잡세(雜稅) / 사법-재판(裁判)
承政院啓: "出身黃載顯、洪時中, 肆然投疏。 雖曰言事, 係是格外, 所當退却。 而洪時中疏辭, 極爲無嚴; 黃載顯疏, 則句語至凶絶悖。 故原疏, 竝姑留院。 而似此之類, 不可容貸。 伏願亟降處分。" 敎曰: "捧入。" 黃載顯疏略:
臣一箇出身九重納書者, 有違匪分之責, 敢犯難赦之罪。 然臣竊伏海濱, 讀兵書十有餘年, 精微蘊奧雖不足爲彷彿, 其皮膚糟粕亦頗得其裏許也, 然則臣所學者兵也, 所言者兵也, 所任者亦兵也。 今當此世道危懼之時, 惜其一死之言, 而棄其公忠之計哉? 夫兵, 善用之而足可霸於天下, 不善用之而足爲致寇招禍也。 是故, 其勝敗, 不在於交兵接刃之後, 而在於廟堂之上。 其得失, 不在於城郭甲兵, 全在於擇將鍊兵也。 擇將鍊兵, 豈在於亂離之後而爲哉? 古之春蒐秋獮, 振旅治兵, 皆用安不忘危, 豫立素具之道也。 試論今日天下大勢, 則上國不能令於天下, 而邊徼反亂, 齊·楚古境、燕·雲舊墟, 或守或失。 其餘洋海之間, 如俄羅斯、法國、美國、英國等地, 氣勢張大, 恣其不道, 時興干戈, 與中國抗衡。 此皆聖遠敎弛, 駸駸然長夜乾坤之中, 而蓋由治入亂之時也。 一或擧而擬之於我東方褊小之上, 則其爲患也, 不啻若泰山壓卵之勢也。 且疑似之信息, 有遵憲之策, 的歷之事機, 有日本之使。 此誠危急存亡之秋也。 是故, 殿下之丙枕無寐, 夙夜憂懼‘三千里江山, 至於朕之身而或有損失歟? 五百年宗社, 至於朕之身而或有傷敗歟?’ 內無良將, 外多敵國, 而倉庫空虛, 甲兵不利, 則計無所施, 勢無可爲。 故乃出非常之計, 又營不世之功, 創設機衙, 齎煩使行, 其意不過是結連隣國, 防禦外患, 有無通商, 彼此適用而已。 則善爲之, 似可富國强兵, 不善爲之, 反易招寇致禍也。 其計之利不利, 雖不能豫籌, 然使行之資裝, 疲於道路, 異國之服色, 駭於畿甸, 上自縉紳, 下至韋布, 莫不驚動於一國。 此或古人之智者作法、愚者拘焉、賢者更禮、不肖者議之乎? 臣留連京師, 酌宜京鄕人心, 則輒不可以不知沒覺, 歸之於蚩蚩之中, 而徒欲遽行之也。 何則人心之維持爲國者, 猶朽索之御六馬, 古今有國家之切戒也。 而古之人, 雖或有厚生利民之道, 不由舊制, 創出己意, 庶可濟事者, 未敢率爾變更者, 爲是國係於民, 而民一動擾離騷, 則其爲利者, 將不知其成功, 而爲禍者, 是存亡所關故也。 今者上不信度, 下無法守, 民散久矣。 蓋民情常係字牧之如何, 而自八道首伯至三百六十州之守宰, 都不告善治仁政之所在, 惟以不奪不厭之苟政, 徒欲交征於民人, 則一國蒼生, 盡入於水火之中。 是日曷喪及予偕亡之語, 猶在歇后, 其困憔無告之情, 不可忍言。 而自數年以來, 火賊黨起, 嘯聚山谷, 水盜群集, 裝載兵器, 白晝大道, 禦人奪金, 甚至於稅錢軍木, 往往見失。 或至數十百人, 或至七八百人, 其餘市井閭巷間出沒餘黨, 不可勝記, 而都城之內, 屢有盜警火怪。 此誠有深憂遠慮者當緩彼急此也。 若于斯之際, 有一夫猖獗, 張拳鬨動, 則關西以北、嶺·湖以南, 非我有也。 當此方蹶之時, 惟泄泄然不知爲慮, 臣徒吟‘夜上戌樓看太白’之詩, 而淚不可禁也。 仰天而太息, 長風颼飀, 望洋而張目, 怒膽弸裂。 臣第乃降心低徊, 就諸實地而商量, 則方今國步日艱, 民心日離, 外倭請港, 盜賊竝起, 士氣沮喪, 妄訕朝廷, 文恬武嬉, 奔競軒冕, 上下扞格, 載胥溺焉, 其前頭之禍, 不啻若子胥之‘抉吾目掛東門’, 而此近‘禍起蕭牆無用防胡者。’ 不其然乎? 今竊料之, 兵政有五, 擇將一也; 習陣二也; 儲食三也; 兵卒四也; 淸野五也。 若將帥苟得其人, 則埑萬機之權於掌上, 運千里之目於心中, 制勝妙用決於未戰之前。 而使外寇內盜狼顧狐疑, 莫敢生心於其間, 則此所謂上兵代謀也。 如陣法熟鍊, 則奇正有法, 天地無方, 雖當猝伏强弩, 旗隊行伍, 便成泰山之勢, 撼動無計。 鼓進赴湯蹈火, 錚止棄金遺玉, 何師不濟, 何寇不平乎? 如士卒强壯, 筋氣膂力, 堅忍勁悍, 則此所謂荊楚六郡, 良家子弟奇材劍客也。 制之有道, 養之有義, 則可以爲子弟之衛父母, 手足之捍頭目也。 若軍糧充積, 漕運無乏, 則覘其形便, 可戰可守, 任其食飽, 此所謂以逸待勞也。 淸野者, 無使野積民穀, 籍寇之食也。 賊若眞知吾境之淸, 則恐其籧除戚施, 畏首畏尾。 不敢輕動, 亦足爲次也。 而其法井井方方, 非但《武備誌》、尹氏之《堡約》而已也。 年前今將臣申櫶, 有所草記, 布令各邑者, 亦豈非知其急先務乎? 蓋自秦、漢以來至于宋、明, 屢試屢驗, 百不一失, 其爲法也審矣。 然則五政之中擇將之法, 視今時原任諸將臣, 未試一方, 臣猥不敢輕議於其間也。 戰陣鍊熟與否, 亦未知其詳悉。 然臣年前行遊北關、湖營, 採聞於所謂兵校廳執事者, 則我國之兵書淺近者, 是《指南》一帙, 而雖旁通曲暢, 當於蒼黃行陣之間, 失手違格者, 猶爲十常八九。 況其平時鍊習, 一不介意, 全不知束伍隊伍奇正鼓金爲何件物事, 而坐作進退、放丸箭、擂木石、休番更代, 視若夢中譫語, 是可知八道郡縣營鎭無一箇兵校之軍勢行陣得其糟粕者。 若脫有不幸, 將束手待死, 如壬辰之席捲千里, 直搗京城矣。 使有識者, 豈不寒心哉? 蓋各邑所謂兵校者, 是亂時之將爲軍正者也。 揣其蒼黃之日, 或有忠義天性者, 不棄印策馬, 焦口乾唇, 呼得數十名兵卒, 所能通者, 任之以兵校之役, 不能者不入, 而任之者授以渠廳中第一要窠, 則其勢不踰年能精通者多矣。 儲食之方, 我邦不過三南船漕, 而近年之破船傷失, 歲不下三四十隻, 總計爲五六萬石。 而雖有徵民責出, 終歸於靡費而止也。 臣生長海邑, 頗知其漕運之生弊。 蓋京江船主與倉船篙師, 貪其船價利條之多餘, 本自造船, 巨創浩大, 載卜少不下二千餘石。 且或有添卜之米, 則欲於事半價倍之利, 信其行險僥倖之心, 輒加添卜, 其重斤恰與泰山相齊。 風帆波濤數十日程, 有狂浪惡颷, 則納之海濤之上, 非但暴殄天物也, 國步軍糧之受困, 亦多矣。 嚴關各道稅運之船載卜, 略不過千石許, 則其傷敗必少矣。 兵卒, 今各邑運總, 徒擁虛簿, 束伍、牙兵、舟師、旗手, 都是虛名也。 簿籍之名號, 盡是塚中枯骨, 操鍊額數, 太半懷中兒子。 蒼黃有事之日, 驅出此類, 以之禦蓄銳之鋒, 豈制勝之道乎? 勢家墓村鄕校校生, 嚴立課條, 入之兵籍, 每月朔望訓鍊以各邑兵校廳所學, 則足可爲精兵。 但嚴禁其奸鄕猾吏之受賂圖脫也。 然則設有淸野之法, 非士卒, 不能保其勝也; 雖有士卒, 非儲糧, 不能保其勝也; 雖有儲糧, 非陣法, 不能保其勝也; 雖有陣法, 非將帥則必不能保其勝也。 是故, 人存政擧, 人亡政廢。 丞相之柏, 水鶴來巢, 忠武之墓, 石獜凄涼, 豈殿下之今日撫躬長吁者其在此乎? 然則今日之勢, 不可不先守後戰。 先守之道, 莫如民堡。 其法也, 上可以爲國禦敵, 下可以安民定産, 簡易而天下之理得矣。 其餘兵之要領、事之機變, 有不能以筆端可記。 臣不勝愚慮之至, 獻此淺近之策。 惟殿下勿以人賊其言, 言可用, 采之; 不可用, 治臣以妄言之罪, 以謝國人焉。
洪時中疏略:
臣一赳赳武夫, 何敢與聞於國家大計? 然倭夷之爲患於東土久矣, 至若壬辰之變, 尙忍言哉? 挽近美俗漸渝, 良法生弊, 文恬武嬉, 駸駸然莫之收拾。 貪戀寵祿之人, 袖手傍觀, 行險僥倖之輩, 接跡而起。 邪說橫議, 能移君父之志, 潛賂奇貨, 又導君父之慾, 以至掃館厚饋、割地許港。 冠裳淪於禽獸, 足跡交於犬羊, 至於人莫爲人、國不爲國。 此輩之罪, 可勝誅哉? 此輩見欺於彼倭, 殿下見欺於此輩。 臣請以殿下之見欺者辨之。 此輩曰: ‘和倭是舊制也, 非今日創行。’ 此有大不然者。 古之和, 東萊一隅雖設關市, 防閑嚴肅, 不敢一步攔越, 是倭受制於我也。 今之和, 反是, 任擇形便, 控據要衝, 直泊畿沿, 海禁壞弛, 攔入城闉關譏莫施, 是我受制於倭也。 又曰: ‘我和是倭非洋, 無傷也。’ 此又有大不然者。 古之倭, 頑愚俗習滾汨, 其中無暇外戀變遷。 今之倭反是, 服洋制、用洋器、乘洋船、輸洋貨, 其所與通商箇箇是大洋以西各種也。 肺腑相輸, 頭面換改, 倭而洋、洋而倭, 不待智者可卞。 又曰: ‘開港設市, 稅則立規, 如(鵝)〔鴉〕 片煙、邪學書, 互相譏捕, 卽用一律, 我無患矣。 此又有大不然者。 巧術啗利, 民口邪說, 傾陷人心, 愚迷者嘗味而悅焉, 傑鷔者閱書而惑焉, 末流之弊, 人皆服鵝, 人盡染邪, 向所謂譏捕用律, 適足爲空文虛套也。’ 又曰: ‘和倭諸國卽防俄之急先務也。 且倭欲和我, 亦畏俄也。’ 此又有大不然者。 如使倭眞若畏俄而和我, 則倭之弱可知。 今欲賴弱倭之餘力以緩俄之來侵, 不亦謬乎? 又曰: ‘今之兵器, 愈出愈奇。 彼有此無, 勝負已判, 不可不往各國學造。 然後可以應變。’ 此又有大不然者。 軒轅以後, 談兵之家, 不可殫記, 而第其至精神妙不測一款, 捲藏於人君之心一字上而已。 君以此一心任將, 將以此一心御衆, 衆以此一心向上, 則三軍之制勝, 不待接刃可決也。 今欲禦敵於外, 而學兵於敵之耳目覩記處, 而能取勝。 使愚者, 不許其筭矣。 今不幸和倭, 冠蓋相望於水陸, 耳目已洩於虛實, 今若一朝嚴斥, 是使倭得構釁之資也。 爲今之計, 莫若別立條規以十年一信使我往, 明年彼來, 其九年間事務, 皆自萊府隨啓隨決。 我使往彼, 留館無過十日, 又毋得出館遊衍, 彼使來, 亦如之。 使行隨員, 定以十人, 彼此如數。 所謂國書, 非其主新立, 勿施使行船具, 以彼船等待責以港地之報代。 港口三處, 不幸已許施, 雖不能索還其一處, 尤係我咽喉也, 其鎖鑰之方, 不得不講定的確。 畫地設柵, 嚴束防閑, 陞仁川爲水營, 富平爲兵營, 統重兵守禦, 又設數鎭於柵外, 極擇有武略者居之。 別設一烽於港口, 彼船來泊, 專管照燧, 彼來商舶, 多不得帶二三隻。 設市, 以亥示爲定, 一月兩次交易, 交易之物, 凡經洋夷手者, 竝嚴禁, 潛商現發, 依邪學律, 卽施梟警。 非日本所産, 不許買賣, 買賣之法, 非公文屬公, 米穀布木等物, 三港皆不許貿, 且以物易物, 不許銅貨幣。 本國商賈稅, 以十之五爲式, 使我人少利而罕往, 使彼倭稀販而罕來。 不幾年, 港弊庶祛矣。 所謂《中西聞見》、《萬國公法》、《公史地球》、《瀛環申報》、《興亞會雜事詩》、《續今日抄工業六學》等書、黃遵憲 《策略》等許多文字, 請一一搜出鍾街上付火。 渙發德音, 俾陳旣往之悔, 用布斥邪之義, 俾萬姓明聽敬服, 衆和消災, 衆心成城, 何患乎倭、洋、俄之强哉? 伏願勿以人賤其言, 言可用, 采之; 不可用, 治臣誣罔之罪。
- 【원본】 22책 18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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