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대전》 등의 서얼의 등용 금지조항을 폐지하도록 김기룡이 상소하다
전 정언(正言) 김기룡(金基龍) 등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 등은 모두 죄 아닌 죄에 연루되어 씻을 수 없는 억울함을 품게 되었습니다. 몇 해 전에 전 지평(持平) 홍찬섭(洪贊燮), 권붕규(權鵬圭) 등이 연이어 상소를 올려, 특별히 관리로 등용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만 한편으로 속이 문드러지는 아픔과 뼈를 깎는 듯한 억울한 사정으로 사실 씻지 못한 것이 있으니, 지금 한번 하소연하지 않으면 전하가 명철하시더라도 또 어떻게 이 사정(私情)을 환히 알 수 있겠습니까?
아, 우리 태조(太祖) 대왕이 처음 나라의 법을 정하여 만대의 규정으로 만들었는데 벼슬길을 막는 법이 한 조목도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비로소 태종 대왕(太宗大王) 13년에 서선(徐選)의 요청으로 인하여 서얼(庶孽)을 현직(顯職)에 등용하지 말도록 하였으나 8대의 임금을 지날 때까지 시행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체로 성종 대왕 16년인 을사년(1485)에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반포하면서 강희맹(姜希孟)이 ‘자자손손(子子孫孫)’이라는 말을 주석에 첨가한 것이 그대로 영원히 금고(禁錮)의 폐단으로 되었습니다.
개국(開國)에서 94년 후에 비로소 간사한 자의 참람한 계책으로 인해 갑자기 393년 동안 바뀌지 않는 법전이 되었습니다. 하늘이 준 것은 본래 적자(嫡子)와 서얼의 차이가 없이 모두 전하의 적자(赤子)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신들의 이름이 있으면 문벌을 따지지 않고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가리지 않고 사람마다 금고하여 대대로 막아서 넘어설 수 없는 굳은 한계처럼 만들어버리니 어찌 공평하게 대해주는 교화에 결함이 되지 않겠으며 앞으로 어떻게 후인(後人)들의 의혹을 풀겠습니까?
이때문에 고 영안 부원군(故永安府院君) 김조순(金祖淳)이 의견을 내기를, ‘서얼들의 벼슬길을 막는 것은 용렬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감정을 품고 앙갚음하려는 계책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였고, 고 판서(故判書) 윤행임(尹行恁)은 아뢰기를, ‘우리나라에서 서자를 구별하는 것은 실로 옛날에는 없던 법입니다. 신이 선대 임금 때에 한탄하는 전교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고 부사(故府使) 박지원(朴趾源)이 작성한 상소에서는 ‘서자를 금고하는 것은 왕조를 세운 초기에 좀스런 신하가 기회를 타서 앙갚음한데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였고 고 정승 김이교(金履喬)는 아뢰기를, ‘우선 율령(律令)을 고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고 판서 김로응(金魯應)은 아뢰기를, ‘법률에서 그 조항을 삭제한 데 불과하다.’라고 하였으며 고 판서 김이재(金履載)는 아뢰기를, ‘법전에서 그 금지조항을 영원히 없애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것은 모두 신 등의 억울한 정상을 풀어주는 것으로써 제일 먼저 고쳐야 할 문제입니다.
바라건대 불쌍하게 여기시고 빨리《경국대전(經國大典)》과《대전통편(大典通編)》,《대전회통(大典會通)》중 이조(吏曹), 병조(兵曹), 예조(禮曹), 호조(戶曹)에 실려 있는 금고의 여러 조항을 하나하나 고쳐서 정리하여 천만 명의 끝없는 원망이 수백 년 동안 개정하지 않던 장부에서 풀리게 한다면, 어찌 다만 생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목숨을 바쳐 보답할 것을 도모하겠습니까? 도리어 눈을 감지 못한 원혼들도 사후에 미치는 은덕에 대하여 칭송할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상소의 내용은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하라."
하였다.
- 【원본】 18책 14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5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법제(法制) / 출판-서책(書冊) / 인사-선발(選拔) / 역사-고사(故事)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 신분-양반(兩班)
前正言金基龍等疏略:
臣等俱以非辜之累, 擧抱不獲之冤, 年前前持平臣洪贊燮、權鵬圭等, 相繼陳疏, 特蒙官方之許通。 而第其一端腐心之痛, 切骨之冤, 實有所未雪者。 今若不一仰籲, 雖以殿下之明達, 亦何能照燭此情私也哉? 粤我太祖大王, 創定邦憲, 爲萬世法程, 未嘗有一條錮廢之典。 始於太宗大王十三年, 因徐選之請, 庶孽勿敍顯職, 歷八朝而猶不行之。 逮夫成宗大王十六年乙巳, 頒行《大典》, 姜希孟添註子子孫孫之語, 仍爲永世禁錮之弊。 自開國九十四年之後, 始因憸人憯毒之計, 遽成三百九十三年不刊之典, 則天之所畀, 本無間於嫡庶, 而均爲殿下之赤子也。 柰之何一有臣等之名者, 不論門地, 不辨賢愚, 人人禁錮, 世世枳塞, 便同鐵限之莫可越, 則豈不有歉於平蕩之化, 而將何以解後人之惑乎? 是以故永安府院君臣金祖淳議曰: "庶類枳塞, 不過庸碌無識之人, 挾憾報復之計。" 故判書臣尹行恁奏曰: "我東之區別庶類, 實是前古所未有之法。 臣於先朝, 仰承悶歎之敎者屢矣。" 故府使臣朴趾源擬疏曰: "庶類禁錮, 不過國初宵小之臣, 乘機售憾。" 故相臣金履喬曰: "莫如先從律令而釐革。" 故判書臣金魯應曰: "不過就法律中刪改其條件。" 故判書臣金履載曰: "法典則永除其禁條。" 此皆臣等疏鬱之道, 最爲第一矯捄之方也。 乞賜矜憐, 亟取《經國大典》及《通編》、《會通》中吏、兵、禮、戶·典所載禁錮諸條, 一一刪改而釐革, 使此千萬人無窮之冤, 得伸屢百年未洗之案, 則奚特有生之倫, 期圖隕首之報? 抑亦不瞑之魂, 擧頌及骨之澤矣。
批曰: "疏辭令廟堂稟處。"
- 【원본】 18책 14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5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법제(法制) / 출판-서책(書冊) / 인사-선발(選拔) / 역사-고사(故事)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 신분-양반(兩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