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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실록 13권, 고종 13년 1월 25일 정사 4번째기사 1876년 조선 개국(開國) 485년

의정부에서 접견 대관을 통하여 서술 책자를 일본 판리 대신에게 보내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접견 대관(接見大官)을 통하여 서술 책자(敍述冊子)를 일본 판리 대신(日本辦理大臣)에게 보냈다. 서술 책자에,

"두 나라는 화목하게 지낸 지 300년이나 됩니다. 정분은 형제와 같으며 옛 제도를 준수하면서 각기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여 서로 다툰 적이 없었고, 서로 사신을 보내는 범절은 한계를 넘지 않았으며, 위로하거나 축하하는 인사는 서로 폐단이 없게 하였습니다. 가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오는 것이 있었고 주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보답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대마도(對馬島)에서 서신을 받아 사정을 전달하였으며 동래 왜관(東萊倭館)의 시장에서는 경계를 넘어 다니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웃 나라와의 우호를 길이 보존하는 길을 말한다면 바로 예의와 의리, 성의와 신뢰 이 네 가지뿐인데 어찌 근래에 들어 서계(書契) 문제를 갖고 두 나라가 서로 의심하고 멀리하는 단서가 되리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여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으니 두 나라의 서계는 원래 신중하고 엄격하여 한 글자라도 격식에 맞지 않으면 꼬치꼬치 따져 밝혀내는 것이 두 나라의 옛 규례였습니다. 동래 수신(東萊守臣)과 임역(任譯)이 감히 선뜻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바로 이 규례에 의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일찍이 정묘년(1867) 봄에 중국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이 전해져 왔는데 총리 각국 사무 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에서 천진(天津)과 상해(上海)의 통상 대신(通商大臣)이 보낸 신문(新聞)의 내용을 들면서 아뢰기를, ‘일본 객관(客館)의 야도 마사요시〔八戶順叔〕라는 사람이 보내온 신문 원고에 이르기를, 「근래에 일본국이 실제로 화륜군함 80척을 가지고 있는데 조선을 치려는 뜻이 있다.」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조선 국왕이 5년에 한 번씩 꼭 강호(江湖)에 와서 대군(大君)을 배알(拜謁)하고 공물(貢物)을 바치는 것은 옛 규례인데 조선 왕이 규례를 폐지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군사를 일으켜 그 죄를 따지려 한다.」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지금 군사를 일으켜 조선을 치려는 의도가 있으니, 그것은 조선에서 5년에 한 번씩 공물을 바치게 되어 있으나 지금 나라가 견고하다는 것을 믿고 복종하지 않아 이 규례가 오랫동안 폐지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대체로 야도 마사요시가 귀국(貴國) 사람이기 때문에 귀국의 일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거짓말을 만들어내서 ‘배알하고 조공한다.’는 욕된 말로써 서로 관계를 맺고 공경하는 나라를 무함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리고 군사를 일으켜 가서 치겠다는 말을 우호를 맺어 불화가 없는 나라 사이에 써서야 되겠습니까? 이와 같은 말을 국내외에 퍼뜨린 것은 과연 무슨 의도입니까? 우리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이 어찌 의아해하지 않겠으며 어찌 분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무진년(1868)부터 경오년(1870)까지 서계를 선뜻 접수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규식에 장애가 있어서였을 뿐 아니라 진실로 근거없는 말이 의심을 일으키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예의와 의리, 성의와 신뢰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전령(傳令)을 강요한 동래 수신은 변방의 먼 곳으로 귀양 보냈으며 사실을 숨기고 거짓말을 한 훈도(訓導)는 효수(梟首)하였습니다.

그리고 귀국의 외무성(外務省)에서 새로운 서계를 만들어가지고 온 뒤에도 예복과 정문(正門) 출입 문제로 오랫동안 의견이 대립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정부에서 동래 수신에게 소소한 의식 절차에 구애되지 말고 즉시 받아서 조정에 바치라고 관문(關文)을 띄워 신칙하였습니다. 때마침 외무성의 관리가 돌아갔으나 미처 관청 사무를 보기도 전에 도리어 귀 대신이 이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에 도착하였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 귀 대신과 우리나라 사신이 서로 문답한 것을 들으니 우리나라가 귀국의 사신을 배척하였다고 말한다는데 서계가 지연된 이유를 위에서 다 이야기하였습니다. 어찌 조금이라도 사신을 배척할 의도가 있었겠습니까? 두 나라 사이에 서로 의심하고 멀리하게 된 것이 여기에까지 이르렀으니 부끄럽고 통탄스러움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조정의 의견이 분분하여 파면과 사형이 계속되고 군사와 백성들이 무력행사를 하려고 하면 관리를 파견하여 무마하였으니 귀국의 후의(厚意)는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천만 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동래 수신을 귀양 보냈고 훈도도 효수하여 우리의 도리를 다하기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귀국에서 야도 마사요시가 속이고 욕된 일을 한 데 대하여 어떻게 처벌하였는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귀 대신은 우리나라 사신과 접견하는 데서 말씨가 성실하고 온순하며 일의 처리를 명백히 하여서 두 나라 사이의 의심을 하루아침에 모두 풀리게 하였으며, 대인 군자(大人君子)로서 평화에 전심하고 나라를 위하여 신중하는 것을 보여 주었기에 존경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서계나 예물 같은 것을 다시 의좋게 교환하는 것은 응당 300년간의 옛 규례에 근거해서 하되 큰 문제는 귀국 정부와 우리나라 정부에서 하고 작은 문제는 귀국 외무성과 우리나라의 예조에서 동등하게 주고받음으로써 영원토록 우호를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혹시 조약을 새로 정할 것이 있으면 두 나라의 이해에 각기 관계되는 것은 반드시 두 나라 사이에 다 편리하도록 강구할 것이며 만일 한쪽에만 이롭고 다른 쪽에는 해롭다거나 한쪽에만 통하고 다른 쪽에는 막히게 된다면 사리로 보아 응당 고려할 점이 있을 것이니, 원컨대 인서(仁恕)를 가지고 추론하여 충분히 의논하기 바랍니다. 조선국 의정부에서 일본국 판리 대신에게 보냅니다.

대조선국 개국(開國) 485년 병자년(1876) 정월(正月)"

하였다.


  • 【원본】 17책 13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18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외교-일본(日本) / 군사-군기(軍器) / 사법-행형(行刑)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신분-중인(中人)

政府以敍述冊子, 由接見大官, 送于日本國辨理大臣。

敍述冊子: 兩國修睦, 行且三百年矣。 情若兄弟, 遵守舊制, 各安人民, 無相爭嚇。 交聘之儀, 不越其限; 慰賀之訊, 互恤其弊。 有往必復, 有贈必酬。 馬島接信, 以達事情; 館開市, 毋踰疆界。 論其隣好之永保, 卽不出‘禮義誠信’四字耳。 豈意近年以書契事, 兩相疑阻之端? 寔有曲折。 兩國書契自謹嚴, 雖一字不中規式, 則斷斷執辨, 此爲兩國舊例然也。 東萊守臣及任譯之不敢遽受, 亦照此例而然也。 曾在丁卯春間, 中國禮部咨文專來, 據總理各國事務衙門奏天津上海通商大臣送呈新聞紙, 內云: "有日本客人名八戶順叔送來新聞原稿云: ‘近來日本國現有火輪軍艦八十艘, 有討朝鮮之志。’ 又云: ‘朝鮮國王, 每五年必至江戶, 拜謁大君獻貢, 是卽古例也。 朝鮮王廢例久, 故發兵責其罪。’ 又云: ‘現有興師往討朝鮮之志。 因朝鮮五年一朝貢, 至今負固不服, 此例久廢故也。’" 大抵八戶順叔旣是貴國之人, 則宜解貴國之事, 而做出虛罔之言, 加以衊辱之辭, 拜謁朝貢, 誣之於交隣相敬之邦可乎? 興師往討, 施之於修好無釁之地可乎? 譸張如此等語, 流布海內海外, 是誠何意也? 弊邦臣民, 安得無訝怪乎? 又安得無憤惋乎? 戊辰至庚午, 書契之不敢遽受者, 不惟規式之有礙, 諒由誣說之致疑。 然弊國之所守者, 卽禮義誠信, 故傳令拶逼之守, 竄以邊遠, 雍蔽欺罔之訓導, 施以梟殛。 而貴國外務省新書契修來之後, 聞以禮服正門許久相持, 故自弊國政府, 關飭於守, 不拘瑣細儀節, 俾卽受納于朝廷矣。 適値外務省官之還入, 未及公幹, 旋聞貴大臣辨理之行臨境矣。 今聞貴大臣與我國使臣相問答, 則以弊國擯斥貴國使臣爲辭, 而書契遲滯之由, 悉陳如右。 豈或有擯斥使臣之意哉? 兩國之互相疑阻, 以至於此, 慙愧痛歎, 有不可勝言。 朝廷之議論紛紜, 則罷戮相繼; 軍民之欲爲加兵, 則遣使鎭撫。 貴國厚意, 何可忘也? 萬萬感謝。 但弊國則旣竄守, 又誅訓導, 務盡在我之道矣。 未審貴國將八戶順叔虛罔衊辱之事, 如何以處之邪? 貴大臣與弊國使相接, 見辭氣之忠厚, 辨理之坦白, 兩國猜疑, 一朝開釋。 有以見大人君子秉心和平, 爲國勤藎, 竊不勝欽仰。 若其書契禮物, 重尋和輯, 只當遵依三百年舊規。 而大事則貴國政府與弊國政府, 小幹則貴國外務省與弊國禮曹, 比等往復, 永以爲好。 或有約條之新定者, 則其在痛癢相關之地, 必究兩相便宜。 倘有彼利而此害, 此通而彼窒, 則事理之在所當念, 惟願推以仁恕, 爛加商略焉。 朝鮮國議政府照會日本國辨理大臣。 大朝鮮開國四百八十五年丙子正月。


  • 【원본】 17책 13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18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외교-일본(日本) / 군사-군기(軍器) / 사법-행형(行刑)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신분-중인(中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