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9권, 고종 9년 7월 4일 병술 1/3 기사 / 1872년 조선 개국(開國) 481년
영혜 옹주가 졸하다
국역
전교하기를,
"영혜 옹주(永惠翁主)의 병이 심하다고 하니 어의(御醫)를 보내어 간병하고 오게 하라."
하였다. 영혜 옹주가 졸서(卒逝)하였다. 전교하기를,
"영혜 옹주의 상을 당하여 놀랍고 슬픈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몹시 사랑하던 대비전의 마음을 생각해 볼 때 장차 무슨 말로 위로를 드리겠는가? 영혜 옹주의 상사에 중사(中使)를 보내어 호상(護喪)하게 하며 치부(致賻)와 예장(禮葬)을 치르는 등의 일은 해조(該曹)에서 규례를 살펴 거행하게 하고, 성복일(成服日)에는 내시를 보내어 치조(致弔)하고 치제(致祭)하게 하며, 동원부기(東園副器) 1부(部)를 실어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또 전교하기를,
"돈 2,000냥, 초록 비단 5필, 다홍 비단 1필, 남색 비단 4필, 쌀 50석, 무명 3동(同), 베 3동을 영혜 옹주방에 실어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영의정(領議政) 김병학(金炳學), 호조 판서(戶曹判書) 김병국(金炳國), 부사과(副司果) 이재순(李載純)과 이재덕(李載悳), 전 교관(敎官) 김흥균(金興均)은 모두 대비전에 별입직(別入直)하도록 명하였다.
원문
고종 9년 (1872) 7월 4일
고종실록9권, 고종 9년 7월 4일 병술 1/3 기사 / 1872년 조선 개국(開國) 481년
영혜 옹주가 졸하다
국역
전교하기를,
"영혜 옹주(永惠翁主)의 병이 심하다고 하니 어의(御醫)를 보내어 간병하고 오게 하라."
하였다. 영혜 옹주가 졸서(卒逝)하였다. 전교하기를,
"영혜 옹주의 상을 당하여 놀랍고 슬픈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몹시 사랑하던 대비전의 마음을 생각해 볼 때 장차 무슨 말로 위로를 드리겠는가? 영혜 옹주의 상사에 중사(中使)를 보내어 호상(護喪)하게 하며 치부(致賻)와 예장(禮葬)을 치르는 등의 일은 해조(該曹)에서 규례를 살펴 거행하게 하고, 성복일(成服日)에는 내시를 보내어 치조(致弔)하고 치제(致祭)하게 하며, 동원부기(東園副器) 1부(部)를 실어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또 전교하기를,
"돈 2,000냥, 초록 비단 5필, 다홍 비단 1필, 남색 비단 4필, 쌀 50석, 무명 3동(同), 베 3동을 영혜 옹주방에 실어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영의정(領議政) 김병학(金炳學), 호조 판서(戶曹判書) 김병국(金炳國), 부사과(副司果) 이재순(李載純)과 이재덕(李載悳), 전 교관(敎官) 김흥균(金興均)은 모두 대비전에 별입직(別入直)하도록 명하였다.
원문
원본
고종 9년 (1872) 7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