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7권, 고종 7년 1월 2일 무진 3/4 기사 / 1870년 조선 개국(開國) 479년
조 귀인 묘의 제사 비용으로 50결을 제급하도록 하다
국역
전교하기를,
"제수(祭需)의 가미(價米)를 내외(內外)의 사판(祠版)마다 200결(結)을 제급(題給)하기로 하고 친진(親盡)한 뒤에는 다시 거두는 것이 바뀔 수 없는 정식(定式)이다. 요즘에 와서는 내외의 사판이거나 단위(單位)의 사판이거나 간에 일반적으로 200결을 지급하고 있는 것은 사실 정당한 법에 어그러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날 조 귀인(趙貴人)의 제수로 200결을 지급하였으니 이것도 규례에 어긋난 것이다. 그리고 이 귀인(貴人)의 묘(墓)에 대한 크고 작은 제사는 이미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의 궁에서 맡아 지내고 있으니, 단지 50결만 우선 제급하도록 하라. 이전부터 잘못 답습해오고 있는 곳은 일체 다시 바로잡도록 호조에 분부하라."
하였다.
원문
고종실록7권, 고종 7년 1월 2일 무진 3/4 기사 / 1870년 조선 개국(開國) 479년
조 귀인 묘의 제사 비용으로 50결을 제급하도록 하다
국역
전교하기를,
"제수(祭需)의 가미(價米)를 내외(內外)의 사판(祠版)마다 200결(結)을 제급(題給)하기로 하고 친진(親盡)한 뒤에는 다시 거두는 것이 바뀔 수 없는 정식(定式)이다. 요즘에 와서는 내외의 사판이거나 단위(單位)의 사판이거나 간에 일반적으로 200결을 지급하고 있는 것은 사실 정당한 법에 어그러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날 조 귀인(趙貴人)의 제수로 200결을 지급하였으니 이것도 규례에 어긋난 것이다. 그리고 이 귀인(貴人)의 묘(墓)에 대한 크고 작은 제사는 이미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의 궁에서 맡아 지내고 있으니, 단지 50결만 우선 제급하도록 하라. 이전부터 잘못 답습해오고 있는 곳은 일체 다시 바로잡도록 호조에 분부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