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들이 전주에 포보를 제외하고 돈으로 대납하는 기한을 연장해 주는 것 등을 아뢰다
차대(次對)를 행하였다. 영의정(領議政) 조두순(趙斗淳)이 아뢰기를,
"전라 감사(全羅監司) 정건조(鄭健朝)가 장계(狀啓)를 올려 청하기를, ‘전주(全州)에서 바치는 목(木)은 포보(砲保)를 제외하고는 10년 동안 전(錢)으로 대봉(代捧)하도록 지난 갑인년(1854)에 이미 특혜를 받았었는데 지금 벌써 기한이 찼습니다. 만약 다시 본색(本色)으로 바치라고 독촉하면 허오(虛伍)에서 첩징(疊徵)하여 필시 종전과 같이 소요가 일어날 것입니다. 다시 10년을 기한으로 하여 대납함으로써 백성의 힘이 펴지게 해 주도록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도신이 청한 바에는 필시 요량한 것이 있을 것이니 5년을 기한으로 아뢴 대로 시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
"정의(旌義)와 대정(大靜)은 이미 변지과(邊地窠)가 되었으니, 모두 군수(郡守)로 올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
"고(故) 상신(相臣) 김도희(金道喜)와 박종훈(朴宗薰)의 사자(嗣子)는 모두 녹용(錄用)함으로써 옛 신하를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뜻을 보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니,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
"연전에 제주(濟州) 백성들이 소란을 피운 사건은 먼 바다 밖에서 일어난 것이므로 무마하여 안정시키기가 육지에 비하여 비교적 어려웠을 것인데, 전 목사(前牧使) 정기원(鄭岐源)은 임기응변을 잘하여 탁월히 장수의 지략을 보여주었으며 뒤처리를 잘하여 훌륭한 수령(守令)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이런 특이한 인물은 응당 장려하는 뜻을 보여야 할 것이니 가자(加資)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
"계해년(1623)의 죄인들인 정인홍(鄭仁弘)과 정조(鄭造)의 후손들이 자기 조상을 위하여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역적에 대해서는 만세토록 반드시 징토해야 한다는 것이 국사(國史)와 야승(野乘)에 올라 있어 사람들의 이목(耳目)에 뚜렷합니다. 조상을 위하여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도 여러 가지이나 이런 부류는 심상히 처리하여서는 안 됩니다. 징을 친 정기덕(鄭基德)과 정익수(鄭益修)를 형조(刑曹)로 하여금 원배(遠配)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하교하기를,
"방자하게 임금한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해괴하지 않은 바가 아니나, 자기 조상을 위하여 억울하다고 신소한 것쯤은 용서해줄 수도 있다. 또 정사를 시작한 첫 시기이기도 하니 정배를 특별히 분간(分揀)하라."
하였다. 좌의정(左議政) 이유원(李裕元)이 아뢰기를,
"범죄 문건에만 이름이 올라있는 죄인이라면 용서해줄 수도 있겠지만 이 두 역적은 천고의 고약한 역적입니다. 그 후손인 자가 어떻게 감히 당돌하게 억울하다는 호소를 제기합니까? 영의정이 아뢴 것이 공명정대하니 윤허하여 주소서."
하고, 우의정(右議政) 임백경(任百經)이 아뢰기를,
"정인홍과 정조는 실로 만대의 죄인입니다. 그 후손들이 억울하다는 신소를 제기한 것만 해도 이미 지극히 해괴한 일인데,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덕을 미루어 그대로 포용해 준다면 난신적자(亂臣賊子)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중률(重律)을 시행하는 것이 사실상 당연합니다."
하니, 대왕대비가 말하기를,
"이 다음에 만일 이런 일이 있으면 응당 엄히 죄를 가하겠지만 지금은 정사를 시작한 첫 시기이니 정배를 특별히 분간하도록 하라."
하였다. 조두순이 아뢰기를,
"고 승지(承旨) 김재경(金在敬)은 일찍부터 지극한 행실이 있었고, 계모를 섬기는 데에도 그 뜻을 받들어 힘껏 했으며, 거상(居喪) 때에는 60이 넘었음에도 최질(縗絰)을 벗지 않았고 슬픔으로 몸이 상하기까지 하여 남들이 감동하였습니다. 지금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사우(士友)들 사이에서는 모두 이런 지극한 효성이 잊혀져버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대개 그는 훌륭한 천성에다 시(詩)와 예(禮)의 가르침도 잘 받아서 그렇게 두드러지게 모범이 될 만했던 것이니 그가 살던 마을과 집에 정문(旌門)을 세워 후세 사람들을 장려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니, 윤허하였다. 임백경이 아뢰기를,
"오늘날 이러저러한 일들이 많이 제기되지만 전하께서 학문에 힘쓰시는 일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정녕 성현들이 전수해온 도리도 학문이 아니면 밝힐 수 없으며 고금의 치란(治亂)의 자취도 학문이 아니면 증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종(祖宗)이 기대하는 것이나 신하와 백성들이 염원하는 것이 모두 전하의 한 몸에 달렸을 뿐이요 더구나 왕위를 계승한 첫 시기는 하늘에서 지혜를 내리고 복을 내리는 기회입니다. 아무리 전하가 훌륭한 천품을 소유하고 나면서부터 저절로 아는 자질을 지니셨다고 하더라도 세상만사를 어떻게 배우지 않고 알며 익히지 않고 능하겠습니까?
지금 강론(講論)을 진행하는 규례를 보면 몇 번 강독(講讀)하고 대략 문의(文義)를 아뢰고는 곧 물러나도록 명하는데 날마다 이런 규례를 되풀이하니 이 역시 형식이나 차리는 것일 뿐이지 어린 나이에 유익한 공부가 장차 무엇에 의지하여 계발(啓發)되겠습니까? 성심으로 바라건대 이제부터 아침과 낮으로 접견을 할 때에는 예모(禮貌)를 간소하게 하고 편안히 앉게 하며 강의(講義)가 끝나거든 이어 역대 임금과 신하의 만남이라든지 나라가 흥망한 자취라든지 심지어 민간의 고통과 힘이 드는 농사일, 백성을 사랑하고 정사에 부지런했던 일 등을 속에 있는 대로 다 아뢰라고 하고 허심탄회하게 들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대신이 진술한 내용이 아주 좋다. 마땅히 유의하겠다."
하였다.
- 【원본】 5책 1권 8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64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군사-군역(軍役)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가족-가족(家族) / 사법-재판(裁判) / 인물(人物)
次對。 領議政趙斗淳曰: "全羅監司鄭健朝狀請, ‘全州所納木, 邊砲保外, 限十年以錢代捧之意, 往在甲寅, 已蒙殊澤, 而今已準限矣。 若復責納本色, 則虛伍疊徵, 必如前騷擾矣。 更限十年代納, 俾紓民力事, 請令廟堂稟處’矣。 道臣所請, 必有斟量, 限五年依施何如?" 允之。 又曰: "旌義、大靜。 旣作邊地窠矣, 竝陞爲郡守何如?" 允之。 又曰: "故相臣金道喜、朴宗薰嗣子, 竝錄用, 以示不忘舊臣之意, 恐好。" 允之。 又曰: "年前濟州民擾, 在溟渤之外, 其所輯綏, 視內地較艱。 而前牧使鄭岐源臨機制宜, 綽有將略, 向後矯捄, 蔚爲良吏。 似此優異, 合施奬勸, 加資何如?" 允之。 又曰: "癸亥罪人仁弘及造之孫, 爲其祖訟冤矣。 此兩賊之爲萬世所必討, 國史、野乘, 塗人耳目。 爲祖伸籲, 亦有許多般, 而此不可尋常處之。 鳴金人鄭基德、鄭益修, 令秋曹遠配何如?" 敎曰: "肆然天聽, 非不可駭, 而爲其祖鳴冤, 容或可恕。 且當初元之會, 定配特爲分揀。" 左議政李裕元曰: "名在丹書之罪人, 或有可原之案, 而今此兩賊, 千古惡逆也。 爲其後裔者, 何敢唐突鳴冤乎? 領相所奏, 光明正大, 伏願允從焉。" 右議政任百經曰: "仁弘與造, 實爲萬世之罪人也。 其孫鳴冤, 已極駭惋, 而今推好生之德, 若置包容之科, 則亂臣賊子, 何所知懼乎? 施以重律, 實爲當然矣。" 大王大妃曰: "日後若有如此之事, 當嚴加其罪。 而今則一元之初也, 定配特爲分揀可也。" 斗淳曰: "故承旨金在敬, 夙有至行, 事繼母, 志養備至, 居喪在六十以後, 而不脫縗絰, 哀毁動人。 今其身後, 士友間誦說蔚興, 咸曰: ‘以此至孝, 不宜泯沒。’ 蓋其根天之性, 濟以詩禮之訓, 所以矜式者厚矣。 表厥宅里, 用勸來後, 恐好。" 允之。 百經曰: "顧今日悠悠萬事, 無過乎殿下之典學一事。 誠以聖賢傳授之道, 非學無以明之; 古今治亂之蹟, 非學無以驗之。 且祖宗之所付託, 臣民之所仰望, 皆在於殿下一身, 而況嗣服之初, 命哲命吉之會也。 殿下雖以天縱之姿, 生知之聖, 天下萬事, 何以不學而知, 不習而能乎? 今之講對之規, 幾番講讀, 略陳文義, 旋卽命退, 日以爲常, 則是亦應文備具而已。 沖齡進益之工, 將何資而啓發乎? 誠願繼自今, 凡於朝晝進接之時, 簡其禮貌, 賜之便坐, 待講義訖, 仍命縱論歷代君臣之際、國家興廢之跡, 以至閭閻疾苦、稼穡艱難、愛民勤政之事, 悉心而敷陳, 虛懷而聽納焉。" 敎曰: "大臣所陳甚好。 當體念矣。"
- 【원본】 5책 1권 8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164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군사-군역(軍役)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가족-가족(家族) / 사법-재판(裁判)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