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사 윤치수가 전사를 보내어 《이십일사약편》에 잘못 기록되어 있는 국계를 바로잡을 것을 청하다
지사(知事) 윤치수(尹致秀)가 상소(上疏)했는데, 대략 말하기를,
"신이 삼가 국계 변무(國系辨誣)002) 를 상고하여 보건대 개국(開國)한 처음에서부터 시작하여 선조조(宣祖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준청(準請)을 획득하여 개간(改刊)된 《회전(會典)》 판본을 선시(宣示)하였으니, 이에 우리 동방의 군신 상하(君臣上下)가 2백 년 동안 가슴속에 숨겨 온 통한이 하루아침에 비로소 신설(伸雪)되었습니다. 따라서 모두 황은(皇恩)에 감사하고 조종(祖宗)의 영령을 기쁘게 위로한 것 또한 지금까지 2백 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강희(康熙)003) 무렵에 웅사리(熊賜履)·왕홍서(王鴻緖)가 찬수한 《명사고(明史藁)》와 옹정(雍正)004) 무렵에 장정옥(張廷玉)·서건학(徐乾學)이 찬수한 《명사(明史)》에 우리 나라에서 변주(辨奏)한 글을 두루 기재하였은즉, 《회전(會典)》 초간본(初刊本)의 잘못됨은 저절로 환히 밝아졌으니, 천만세(千萬世)에 영원토록 다행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야승(野乘)이나 쇄록(瑣錄)에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보이는 것을 다 고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주인(朱璘)의 패사(悖史)가 나오게 되어 무와(誣訛)된 것이 그전과 다름이 없으므로, 드디어 사신을 보내어 변무(辨誣)하는 거조가 있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신이 마침 근일 북경(北京)에서 구입하여 가지고 온 이른바 《이십일사약편(二十一史約編)》이라는 책을 보니, 그 내용 가운데 본국 조항에 대한 종계(宗系)와 수선(受禪)은 그대로 무와된 것을 답습하여 그것이 한정이 없을 정도이므로, 가슴이 놀라 뛰고 뼈를 깎는 듯하게 통분스러워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습니다. 정사(正史)의 기록에는 전후의 변주(辨奏)를 모두 기재하였으니, 이런 황당하고 사실과 어긋난 글에 대해서는 변해(辨解)할 가치도 없는 것 같지마는, 이는 전혀 그렇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주인의 패사가 제작된 것도 사성(史宬)의 찬차(纂次)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영조 대왕(英祖大王)께서는 척연(惕然)히 깜짝 놀라 급급히 변무의 진달을 행했었으니, 이것이 어찌 오늘날 거울로 삼아 본받아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의 생각에는 전사(專使)를 보내어 갖추어 주달(奏達)하여 속히 전정(鐫正)하도록 청하는 것이 곧 조종(祖宗)께서 쌓아온 정성과 간절한 바람을 계술(繼述)하는 의리로서 온 나라 신민(臣民)들의 가슴이 무너지는 듯하게 통박(痛迫)한 심정을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먼저 신의 이 소장(疏章)을 가져다 조정에 내려 널리 묻고 의논하게 하는 바탕으로 만드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이제 경(卿)의 소장을 보건대 너무도 놀랍고 통분스러워 감히 잠시도 스스로 편안할 수가 없다. 변주(辨奏)를 청하는 것은 경의 말이 과연 절당(切當)하다. 마땅히 시임(時任)·원임(原任) 대신(大臣)들에게 하순(下詢)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15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658면
- 【분류】정론(政論) / 사법(司法)
- [註 002]국계 변무(國系辨誣) : 조선 태조(太祖)가 고려(高麗)의 권신(權臣) 이인임(李仁任)의 아들이라고 명(明)나라의 《태조실록(太祖實錄)》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잘못 기재되어 있는 것을 변해(辨解)하여 정정시킨 일. 선조(宣祖) 때에 와서 완전히 바로잡았음.
- [註 003]
강희(康熙) : 청 성조(淸聖祖)의 연호.- [註 004]
옹정(雍正) : 청 세종(淸世宗)의 연호.○乙卯/知事尹致秀, 上疏略曰:
臣謹稽國系辨誣, 粤自開國之初, 至宣祖朝, 始獲準請, 宣示《會典》刊改之本, 於是吾東方君臣上下二百年隱痛于心者, 一朝始爲伸雪。 感戴皇恩, 慰悅祖靈, 亦二百年于玆矣。 及至康熙年間, 熊賜履王鴻緖之纂修《明史藁》, 雍正年間張廷玉徐乾學之纂修《明史》, 歷載我國辨奏之文, 則《會典》初本之誣, 自歸昭㫼, 永有幸於千萬世矣。 至若野秉瑣錄之散見雜出者, 不能盡改, 故朱璘悖史出, 而誣訛依舊, 遂至有馳价辨誣之擧。 臣適見近日, 自北購來書, 有所謂《廿一史約編》者, 其言本國條, 宗系禪受之襲訛, 肆誣罔有, 其極驚心痛骨, 如不欲生。 正史所編, 俱載前後辨奏, 則似此荒謬失實之文, 疑若不足可辨, 而是有大不然者。 璘史立作, 亦未嘗出於史宬纂次, 英宗大王, 惕然震驚, 亟行陳辨, 此豈非今日所當監法者乎? 臣謂專价具奏, 亟請鐫正, 卽所以繼述祖宗積誠祈懇之義, 而可慰擧國臣民崩隕痛迫之情也。 伏願先將臣, 此章下之朝廷, 以爲廣詢博議之地焉。
批曰: "今見卿章, 驚痛之極, 有不敢晷刻自安。 辨奏之請卿言果切當。 當詢議時原任大臣矣。"
- 【태백산사고본】 8책 15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658면
- 【분류】정론(政論) / 사법(司法)
- [註 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