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 대왕 애책문(哀冊文)
애책문(哀冊文)은 다음과 같다.
"유세차(維歲次) 갑오년016) 11월 임술삭(壬戌朔) 13일 갑술(甲戌)에 황조 순종 연덕 현도 경인 순희 문안 무정 헌경 성효 대왕(皇祖純宗淵德顯道景仁純禧文安武靖憲敬成孝大王)께서 경희궁(慶熙宮)의 정침(正寢)에서 승하(昇遐)하였습니다. 다음해 을미년017) 4월 경인삭(庚寅朔) 19일 무신(戊申)에 영구히 인릉(仁陵)으로 천장(遷葬)하였으니 예절(禮節)인 것입니다. 보삽(黼翣)이 이미 진열되니 우보(羽葆)가 출발하려 하고, 상거(祥車)는 문에 대기하고 있는데 흠마(廞馬)는 뜰아래 있습니다. 이때에 구름도 슬픔을 머금었고 하늘과 땅도 그 빛이 침통하였으며 울부짖는 바람도 온 세상을 휩쓸면서 슬픈 소리로 흐느낍니다. 신거(宸居)를 떠나는 행렬 맑고도 엄숙한데 조도(祖道)로 나아가는 걸음 더디기만 합니다. 상여줄 받들어 잡은 백관들의 눈물은 비처럼 흐르는데 상여를 호위하는 신장(神將)들은 별[星]처럼 달려갑니다. 우리 주상 전하(主上殿下)께서는 연모(燕謨)018) 가 영원히 끊이게 됨을 애통히 여기고 신의(蜃儀)019) 가 문득 닥침을 슬퍼하시어 하신(下臣)에게 부탁하여 진사(陳辭)하여 애책(哀冊)에 새겨 드러내어 선양하게 하였는데,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정종(正宗)께서는 중년(中年)에 이르도록 진위(震位)020) 가 오래도록 비어 있었는데, 경술년021) 에 성자(聖子)가 탄강하였으므로 드디어 저사(儲嗣)로 정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종묘(宗廟)·사직(社稷)이 태산 반석처럼 튼튼하여졌고 사중(四重)022) 의 영예(令譽)가 드날리게 되었습니다. 몸소 사물을 통하여 가르침을 베풀었고 삼가 의방(義方)을 따랐으며, 학문에 있어서는 시민(時敏)에 전심하였으므로 공(功)은 날로 진보되었습니다. 왕위(王位)에 오른 나이는 오히려 주(周)나라 성왕(成王)보다도 어렸으며, 상사(喪事)를 당하여 곡읍(哭泣)하는 것을 법도에 맞게 하였고, 전궁(殿宮)에 대해서는 효성을 극진히 하였습니다. 하늘을 공경하고 조종(祖宗)의 성법(成法)을 본받았으며 어진이를 친근히 하고 백성을 사랑하였습니다.
매사(每事)를 가법(家法)에 맞게 하니 하늘이 내린 인자함이요, 하루 세 번 강독(講讀)에 상하의 토론하는 소리가 전당(殿堂)에 가득하였습니다. 문장(文章)은 익히지 않아도 저절로 훌륭하여졌고 저술(著述)하는 것은 여사(餘事)로 여겼습니다. 현기(玄機)를 묵묵히 운용(運用)하니 교화의 근원이 저절로 맑아졌고, 계술(繼述)하여 전열(前烈)을 빛내니 대의(大義)가 천명(闡明)되었습니다. 양술(洋術)023) 이 윤서(倫序)를 더럽히고 서추(西醜)024) 가 반란을 일으키자, 노하지 않고도 위엄이 드날려 어려운 기운이 깨끗이 평정되었습니다. 조고(祖考)가 환히 내림(來臨)하니 체사(禘祀)를 지낸 것이 매우 경건하였고, 혹 때로 섭행(攝行)을 명할 적에는 향·축(香祝)을 몸소 전하였습니다. 이에 화성(華城)에 장사지냈다가 현륭원(顯隆園) 오른쪽으로 이장(移葬)하였으며, 정성을 극진히 하여 길지(吉地)를 얻으니 하늘이 고산(高山)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대신(大臣)은 공경하여 예(禮)로 부렸으며 구경(九經)025) 의 훈계를 몸소 실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조섭(調攝)하는 때일지라도 의관(衣冠)을 갖추지 않고서는 접견하지 않았으며, 바른말은 흔연히 받아들여 시행하고 간언(諫言)을 따르는 것은 물이 흐르듯이 순종하였습니다. 사문(四門)을 활짝 열어놓고 숨겨진 억울함을 모두 아뢰게 하였고, 깊은 궁궐에서 두려워 조심하였으므로 은혜로운 혜택이 궁벽한 곳의 가난한 백성에게까지 미쳤으며, 선두안(宣頭案)을 불살라 백성의 고질적인 폐단을 제거하였습니다. 장마가 들 적에는 해골(骸骨)을 거두어 묻어주도록 계칙시켰고 혹독한 추위에는 떠도는 걸인(乞人)을 걱정하였으며, 흉년을 당할 적마다 공물(供物)을 견감하고 세금을 면제하게 하였으며, 자신이 거꾸로 매어달린 것 같은 아픔을 느껴 항상 얇은 얼음을 밟듯이 조심하였습니다. 이런 좋은 덕이 하늘에까지 알려지니 하늘의 마음에 미더움을 받아 40의 나이 전에 훌륭한 손자(孫子)를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옛날의 명철한 임금이라 할지라도 나라를 다스린 것이 40여 년에 가깝게 되면 희로(喜怒)가 치우치고 유전(遊畋)과 사치(奢侈)가 간혹 비평할 점이 있던 것은 전사(前史)에 나타나 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임금님께서는 한결같이 천리(天理)를 따르시어 인의(仁義)에 의거 행동하면서 남면(南面)하여 공손한 몸가짐을 지녔으니, 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백세(百世)의 공론을 기다려보면 알 것입니다. 경인년026) 에 전성(前星)027) 이 갑자기 떨어지니, 지극한 슬픔이 마음을 얽어매어 천안(天顔)이 이미 손상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뜻밖의 병이 발생하여 온갖 약이 아무런 효험을 보이지 않게 되니, 안석[几]에 기대어 유언을 남기신 채 갑자기 나라를 버리고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아! 애통합니다. 법전(法殿)은 주인을 잃은 채 텅 비어 있고 말없는 영유(靈帷)만이 적막하게 쳐져 있을 뿐입니다. 궁검(弓劒)을 어루만질 수 없으니 궤석(几舃)만 남아 있을 뿐이요, 황연(怳然)히 옥음(玉音)이 들리는 것만 같은데도 어렴풋이 광명(光明)은 볼 수가 없습니다. 평일(平日)의 조의(朝儀)와는 달리 상복(喪服)을 입은 사람들만 뜰에 가득히 있습니다. 아! 지금 사왕(嗣王)께서 새로 천명을 받아 즉위하였는데 문왕(文王)의 현덕(顯德)을 무왕(武王)이 계승하듯이 성인(聖人)으로서 성인을 계승하였습니다. 태모(太母)께서 수렴 청정(垂簾聽政)하면서 상궁(上躬)을 보호하여 주시니 옛날 송(宋)나라의 선인 황후(宣仁皇后)처럼 그 덕이 여중 요순(女中堯舜)이라고 할 만합니다. 인애(仁愛)하는 하늘이 송(宋)나라에 복을 내린 것과 같이 결국 우리 나라에 대해서도 화(禍)를 내린 것을 뉘우쳐 좋은 일이 있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아! 슬픕니다. 울창한 저 하산(河山)에 가성(佳城)028) 을 점지하였는데 이름난 지사(地師)가 일찍이 도왔고 용과 봉이 날아오르는 형용이어서 의관(衣冠)을 간수하여 만년토록 편안함을 누릴 것입니다. 이야말로 하늘이 아껴두고 땅이 숨겼던 곳으로 진실로 신령스런 공효가 있는 영(靈)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슬픕니다. 수명의 길고 짧음은 운수에 달려 있는 것이어서 성인(聖人)이나 범인(凡人)이나 모두 떠나가게 되어 있는 것으로 구령(九齡)029) 의 꿈이 효험이 없으니 깊은 밤은 까마득히 새벽이 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순덕(純德)과 인심(仁心)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공을 이루었습니다. 만년토록 칠묘(七廟)에 모시게 되었으므로 완염(琬琰)에 새기고 생용(笙鏞)에 올립니다. 아! 슬픕니다." 【봉조하(奉朝賀) 남공철(南公轍)이 지었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1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420면
- 【분류】왕실(王室) / 어문학(語文學)
- [註 016]갑오년 : 1834 헌종 즉위년.
- [註 017]
을미년 : 1835 헌종 원년.- [註 018]
연모(燕謨) : 후손을 위한 모유(謨猷).- [註 019]
신의(蜃儀) : 장사지내는 의식.- [註 020]
진위(震位) : 세자(世子).- [註 021]
경술년 : 1790 정조 14년.- [註 022]
사중(四重) : 법도가 있는 신중한 말, 덕이 있는 신중한 행동, 위엄이 있는 무게 있는 외모(外貌), 볼만한 점이 있는 장중(壯重)한 기호(嗜好)를 말함.- [註 023]
양술(洋術) : 천주교(天主敎).- [註 024]
서추(西醜) : 홍경래(洪景來).- [註 025]
구경(九經) : 천하를 통치하는 아홉 가지 대도(大道). 곧 수신(修身)·존현(尊賢)·친친(親親)·경대신(敬大臣)·체군신(體群臣)·자서민(子庶民)·내백공(來百工)·유원인(柔遠人)·회제후(懷諸侯)를 말함.- [註 026]
경인년 : 1830 순조 30년.- [註 027]
전성(前星) : 왕세자(王世子).- [註 028]
가성(佳城) : 능침(陵寢).- [註 029]
구령(九齡) : 무왕(武王)이 문왕(文王)에게 "어제 저녁 천제(天帝)가 나에게 구령(九齡)을 주는 꿈을 꾸었습니다."하니, 문왕이 "나는 1백 살을 살고 너는 90살을 살겠는데 내가 너에게 세 살을 주겠다." 하였는데, 과연 문왕은 97살을 살고 무왕은 93세를 살았다고 함. 장수(長壽)를 가리키는 말임.○哀冊文:
維歲次甲午十一月壬戌朔十三日甲戌, 皇祖純宗 淵德顯道景仁純禧文安武靖憲敬成孝大王, 昇遐于慶熙宮之正寢。 越明年乙未四月庚寅朔十九日戊申, 永遷于 仁陵, 禮也。 黼翣旣列, 羽葆將啓, 祥車在門, 廞馬在陛。 于時雲凄兮, 兩儀色慘, 風號兮萬井聲悲。 離宸居之肅穆, 就祖道之逶迤。 千官奉紼而雨泣, 百神護輴而星馳。 惟我主上殿下, 慟燕謨之永違, 哀蜃儀之奄成。 屬下臣而陳辭, 鐫顯冊而揚聲, 其詞曰, 正廟中晩, 震位久虛, 庚戌降聖, 遂命定儲。 宗社泰磐, 四重令譽。 身敎物誨, 恭遵義方, 學惟時敏, 功則日將。 負扆之歲, 尙少成王, 滕廬哭泣, 孝于姒姜。 敬天法祖, 親賢愛民。 得於家法, 天畀之仁, 三晝講讀, 一堂兪咈。 不習自工, 餘事著述。 玄機默運, 化源自淸, 繼述光前, 大義闡明。 洋術瀆倫, 西醜弄兵, 不怒而威, 氛翳掃平。 昭假祖考, 禘祀孔虔, 或時命攝, 香祝躬傳。 廼觀于華, 廼遷于灤, 至誠得吉, 天作高山。 敬禮太臣, 體九經訓。 雖値靜攝, 不冠不見, 翕受敷施, 如流從諫。 四門洞闢, 幽枉畢聞, 細氈寅畏, 窮蔀子惠, 宣頭燒案, 祛民痼弊。 潦飭掩骸, 寒軫流丐, 每遇歲歉, 減供寬稅, 恫若解懸, 澟乎履薄。 馨香升聞, 天心孚格, 君子抱孫, 前於不惑。 雖古哲辟, 治近四紀, 喜怒偏私, 遊畋奢侈, 或有可議, 見於前史。 恭惟我后, 一出天理, 由仁義行, 南面恭己, 有如不信, 百世以俟。 歲行在寅, 前星忽墜, 至慟纏心, 天顔已顇。 旡妄一疾, 罔效藥試, 凭几道揚, 一國奄棄。 嗚呼! 哀哉。 法殿兮空虛, 靈帷兮寂寞。 莫攀弓劍, 徒遺几舃。 怳玉音之若聆, 僾耿光之莫覲。 異平日之朝儀, 紛盈庭之衰絶。 猗! 今嗣王, 新服厥命, 文顯武承, 以聖繼聖。 太母垂簾, 保佑上躬, 與昔宣仁, 德侔女中。 庶仁天之祚宋, 終悔禍於我東。 嗚呼! 哀哉。 鬱彼河山, 聿卜佳城, 名師夙贊, 龍鳳騰形。 衣冠攸藏, 萬年妥寧。 寔天慳而地秘, 信有待於效靈。 嗚呼! 哀哉。 脩短有數, 聖凡皆化, 夢九齡之無驗, 邈難晨於厚夜。 然純德與仁心, 無能名而有成功。 亘萬禩而觀七廟, 刻琬琰而被笙鏞。 嗚呼! 哀哉。 【奉朝賀南公轍製。】
- 【태백산사고본】 35책 1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420면
- 【분류】왕실(王室) / 어문학(語文學)
- [註 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