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의 재정 문제에 관해 영의정 남공철이 아뢰다
차대하였다. 영의정 남공철(南公轍)이 아뢰기를,
"저번에 개성 유수 김이재(金履載)의 장계로 인하여 경기 해안에 가까운 고을의 전결(田結) 1천 5백 결을 떼어 주자는 내용으로 복계(覆啓)하여 윤허를 받았는데, 추후 호조의 초기(草記)에 대한 비답에 묘당과 상의하여 처리하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당초에 전결을 떼어 주라고 한 것은 일시의 변통에서 나온 조치였으나 책임을 맡은 신하가 관례상 시행하기 어렵다고 하니, 지금 억지로 거행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송도의 피폐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나 달리 변통할 길이 없으니, 오직 고을을 떼어서 합쳐 주는 방도 밖에 없습니다. 풍덕부(豐德府)의 경계는 송도의 5리쯤에 가까이 있는데다가 지경이 들쭉날쭉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일찍이 태종조(太宗朝) 13년에 풍덕을 송도에 합병하였다가 뒤에 다시 고을을 설치하였으니, 이제 와서 수령을 혁파하고 개성부에 합치는 것은 근거가 있는 일이며, 분사(分司)의 경비는 으레 모두 본부에 비축된 군향곡(軍餉穀)에서 가져다가 썼는데 이번에 새로 떼어 줄 고을의 토지는 이미 분사에 소속되어 있으니 그 정세(正稅)는 으레 군향에 보태고 대동미(大同米)도 그대로 비축해 놓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영구히 조달할 수 있는 방도가 될 것이니, 풍덕부를 송도에 소속시키고, 수령을 없애고 지역을 합병하는 등의 일은 해당 조(曹)와 해당 도(道)에 분부하여 거행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228면
- 【분류】재정-전세(田稅) / 농업-전제(田制)
○辛卯/次對。 領議政南公轍啓言: "頃因開城留守金履載狀請, 以畿海傍近邑田結一千五百結劃給之意, 覆啓蒙允, 追因戶曹草記批旨, 有與廟堂商處之命矣。 當初劃結, 固出於權宜之擧, 而有司之臣, 以例執難, 今不必强令擧行。 第念松都破敗至此, 亦無從他變通, 則惟有劃邑合屬一條。 而豐德府界, 近在松都五里之許, 壤土相錯, 故曾在太宗朝十三年, 以豐德合屬於松都, 後復設邑, 則到今罷守而竝府, 事有可據, 分司經用, 例皆取用於本府餉穀儲置中, 今此新劃邑土地, 旣屬於分司, 則其正稅, 自當依例添餉, 大同亦爲仍留儲置。 如是則可爲永久資給之道, 豐德府許令屬之松都, 其減守令合境界等節, 分付該曹該道擧行。" 從之。
- 【태백산사고본】 26책 26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48책 228면
- 【분류】재정-전세(田稅) / 농업-전제(田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