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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24권, 순조 21년 7월 27일 을해 1번째기사 1821년 청 도광(道光) 1년

이응준은 엄형을 가하여 자복을 받은 후 사형을 감하여 외딴섬에 정배하게 하다

형조에서 이응준(李膺峻)의 옥사를 다시 좌의정 남공철과 우의정 임한호에게 문의하자, 그들이 말하기를,

"신들은 본래 법에 익숙하지 않아 억지로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만, 대체로 정해진 법이 없으면 의심쩍은 것으로 돌리어 가벼운 벌을 적용하는 것이 참으로 살리기를 좋아하는 위대한 성인의 인(仁)에 부합됩니다. 영상이 이미 형신(刑訊)하여 섬으로 귀양보내자는 의논이 있었는데, 그의 법 적용이 실로 경중을 절충하는 방법에 부합됩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이 일은 참으로 변괴 중에서도 가장 큰 변괴이다. 이 비문(碑文)이 매우 소중한 것인데도 어려움 없이 손을 댔으니, 그의 안중에 국가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장지(葬地)를 어느 곳에다 정해도 불가할 것이 없는데 꼭 이곳에다가 이런 변괴를 저지른단 말인가? 솥도 귀가 있는데 그래도 감히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법(漢法)에 준해 볼 때 과연 불경(不敬)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대신들의 의논은 모두 가벼운 벌을 주장하니, 이응준은 엄형을 가하여 자복을 받은 후 사형을 감하여 외딴섬에 정배하라. 이른바 지사(地師)란 자도 그 죄가 이응준보다 더 심하지만 단지 주객의 구별이 있으니, 그도 엄형을 가하여 자복을 받은 후에 외딴섬에 정배하고 사면의 은전을 입지 못하도록 하라. 그리고 파괴된 비석은 건국 초기에 명한 것인데 오늘에 와서 보존하지 못하였으니, 매우 송구스럽다. 경기 감영에 분부하여 다시 세우도록 하라. 그리고 지방의 관장(官長)이 몰라도 잘못인데 알고도 금하지 않았으니, 그 죄 어떠하겠는가? 그대로 놔두고 묻지 않을 수 없으니, 그 지방관을 출두시켜 공초를 받아들이고 나서 해부(該府)로 하여금 잡아들여 처리하도록 하라. 조정에서 이렇게 처분을 내린 것은 어찌 불교를 위해서 그런 것이겠는가? 하나는 건국 초기에 소중히 여기던 물건을 위해서이고 하나는 국가의 기강을 위해서이니, 이 뜻을 잘 알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24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181면
  • 【분류】
    왕실(王室) / 사법-행형(行刑)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乙亥/刑曹以李膺峻獄事, 更爲詢問于左議政南公轍, 右議政林漢浩, 則以爲, "臣等素不嫺律, 有難强對, 而大抵法無定文, 則付之於疑, 求之於輕, 實合大聖人好生之仁。 而領相旣有刑訊島配之議, 其所擬律, 實合於折衷輕重之道云矣。" 敎曰: "此事誠亦變怪之大者。 此碑文字, 所重何如? 則無難犯手, 其可曰眼有國家? 而葬地何處不可, 必於此處, 作此變怪乎? 鼎鐺有耳, 其敢曰不知乎? 律以法, 果非不敬乎? 然大臣之議, 皆主從輕, 李膺峻嚴刑取服後, 減死絶島定配。 所謂地師, 其罪殆甚於膺峻, 但有主客之別, 亦爲嚴刑取服後, 絶島定配, 竝勿揀赦典。 至於所碎之碑, 國初所命, 至今日而不能保存者, 亦甚怵然而悚然。 分付畿營, 更爲竪建事。 在地方, 爲官長者, 不知固罪知而不禁, 又當如何? 不可置而勿問, 當該地方官, 捧現告, 令該府拿處, 朝家之如是處分, 豈爲釋敎而然? 一則爲國初所重也, 一則爲國綱也, 以此知悉。"


  • 【태백산사고본】 24책 24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181면
  • 【분류】
    왕실(王室) / 사법-행형(行刑)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