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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24권, 순조 21년 7월 23일 신미 1번째기사 1821년 청 도광(道光) 1년

형조에서 회암사의 부도 등을 파괴한 이응준에 대한 법의 적용을 대신들에게 묻다

광주(廣州)의 유학(幼學) 이응준(李膺峻)이 양주(楊州)의 회암사(檜巖寺)부도(浮圖)116) 와 비석을 파괴하고 사리를 훔친 후 그곳에다가 자신의 아버지를 묻었다. 지공(指空)·나옹(懶翁)·무학(無學)117) 세 선사(禪師)의 부도(浮圖)와 사적비(事蹟碑)가 회암사 북쪽 산비탈에 있었는데, 무학의 비석은 곧 태종(太宗)의 분부를 받아 글을 지어 세운 것이다. 경기의 관찰사가 이 사실을 장계로 아뢰자, 형조에서 법의 적용 여부에 대해 대신들에게 물었다. 영의정 한용귀는 말하기를,

"이응준은 매우 악한 범죄를 저질렀으므로 중죄에 처해야 합당하겠습니다만, 그 형량을 참고할 만한 법이 없으니, 그냥 그대로 심리를 해야 합니다. 만일 그가 사리를 훔친 짓에 대하여 논한다면 관(棺)을 열어 시신을 본 죄에 비길 만하고, 그 비석을 파괴한 죄에 대하여 논한다면 임금이 지은 글을 훼손한 죄에 해당되므로, 모두 사형(死刑)을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어찌 그를 살려줄 수 있겠습니까? 옛날부터 그 죄가 사형에 관계되면 다만 그 법에 의하여 처단하였지 엇비슷한 다른 법을 적용한 사례가 없었습니다. 이 예를 한번 터놓으면 그 후환이 말할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구구한 저의 소견을 말씀드린다면 그에게는 특별히 사형을 감하여 엄중한 형장을 가하고 외딴섬으로 유배하되, 대사면령이 반포되기 전에는 용서하지 않는 것이 실로 공평한 의의에 부합될 것입니다."

하고, 좌의정 남공철과 우의정 임한호가 말하기를,

"형조에서 그를 중죄에 처하든 살려주든간에 하나의 율을 정하는 것이 실로 사리에 맞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죄안(罪案)에 관한 의논을 묘당(廟堂)에까지 의논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법관이 처리해야 한다.’는 의의로 볼 때 이와 같이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해당 당상관을 먼저 추고(推考)하소서."

하니, 하교하기를,

"국가의 큰일 중에서 사형보다 더 중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형관(刑官)이 의심난 일이 있으면 대신들에게 묻기를 청하고, 임금이 의심난 일이 있으면 대신들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이는 살리고 죽이는 권한이 오직 임금과 대신들에게 있기 때문이니, 고금에 공통된 의의이다. 그런데 이번에 좌상과 우상은 가부를 논하지 않고 대신에게 물어보라고 한 형관을 질책하였으니,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죄수를 관대하게 처결하거나 복계(覆啓)할 때에 대신들이 꼭 참여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또한 죄수를 죽이든 살리든간에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을 셈인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영상은 이미 자기의 의견을 말하였으니, 영상 이외에 좌상과 우상에게는 다시 한 가지를 지적하여 의논을 거두어 오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24권 1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181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풍속-예속(禮俗) / 사상-불교(佛敎)

  • [註 116]
    부도(浮圖) : 불탑.
  • [註 117]
    지공(指空)·나옹(懶翁)·무학(無學) : 지공은 인도의 스님으로 법명은 제납박타(提納薄陀)라고 하고, 나옹은 고려 공민왕 때의 승려 혜근(惠勤)의 법호이며, 무학은 고려말 조선초의 승려인 자초(自超)의 법호임.

○辛未/廣州幼學李膺峻, 碎破楊州檜巖寺浮圖及石碑, 偸竊舍利, 仍葬其親於其地。 蓋指空懶翁無學三禪師浮圖及事蹟碑, 在於寺之北厓, 而無學碑, 卽太宗朝奉敎撰立者也。 因畿伯狀聞, 刑曹以勘律當否, 詢問于大臣。 領議政韓用龜以爲, "李膺峻情犯之絶悖, 合置重辟, 而律無可稽, 在所審克。 若論其竊去舍利之罪, 則可以比附於開棺見尸, 若論其破碎碑石之罪, 則可以傍照於毁棄制書, 俱係一律。 豈有傅生之道? 而第自古以來, 罪關一律, 則惟當以本律勘斷而已。 未嘗有比附他律之例。 此例一開, 後慮難言。 區區愚見, 特貸一律, 嚴加刑訊, 施以絶島定配之典, 勿揀赦前, 實合平允之義矣。" 左議政南公轍, 右議政林漢浩以爲, "令秋曹, 置辟與傅生間, 指一定律, 實合事宜。 似此議讞, 何可推及於廟堂? 揆以廷尉當之義, 不當如是, 請當該堂上, 爲先推考。" 敎曰: "國之大事, 莫重於大辟。 刑官有疑, 則請詢大臣, 自上有疑, 則下詢大臣。 以其生殺之柄, 惟在君相故也。 此古今之通誼也。 今此左右相, 無所可否, 只以詢大臣, 詆責刑官, 殊未可曉也。 然則疏決與覆啓大臣, 何爲必參? 亦將不可發一言於生殺之間乎? 勿論如何, 領相則旣陳意見, 領相外左右相處, 更爲指一收議以來。"


  • 【태백산사고본】 24책 24권 1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181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사법-탄핵(彈劾) / 풍속-예속(禮俗)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