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를 책봉하는 죽책문·교명문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왕세자를 책봉하였는데, 【임금은 면복(冕服)을 갖추어 입고 자리에 오르고, 도감(都監)과 도제조(都提調) 이하는 계단 위로 나가 서쪽을 향해 선다. 전교관(傳敎官)이 꿇어앉아 전교를 아뢰고, 집사자(執事者)가 교명(敎命)과 책인안(冊印案)을 마주 들고 정문(正門)을 거쳐 나간다. 전교관이 동계(東階)에서 내려와 사자(使者)에게 나아가 동북쪽에 서향하여 서고 집사자가 책인안을 들고 정계(正階)에서 내려와 전교관의 남쪽에 서면 도감 도제조 이하가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간다. 집사관(執事官)이 교명함(敎命函)을 받들고 전교관 앞으로 나아가면 전교관이 교명함을 받아 정사(正使)에게 주고 정사는 북향하여 꿇어앉아 받아서 교명함을 상에다 올려 두는데, 상을 드는 자가 마주서서 들어 준다. 책함(冊函)과 인수(印綬) 역시 모두 위의 의식대로 한다. 임금이 안으로 들어가면 왕세자가 책(冊)을 희정당(熙政堂)에서 받고 쌍동계(雙童髻)와 공정책(空頂幘)과 칠장복(七章服) 차림으로 나온다. 교명(敎命)과 책인(冊印)을 배봉(陪奉)할 때의 지영(祗迎)은 정사가 교명과 책인을 안(案)에 두면 사서(司書)가 왕세자를 인도하여 배위(拜位)로 나가서 예를 행하고 책위(冊位)로 올라가 꿇어앉는다. 정사가 교명함을 가져다가 왕세자에게 주면 보덕(輔德)이 꿇어앉아 대신 받고, 정사가 책함(冊函)을 가져다가 왕세자에게 주면 사서(司書)가 꿇어앉아 대신 받으며, 정사가 인수(印綬)를 가져다가 왕세자에게 주면 익찬(翊贊)이 꿇어앉아 대신 받고, 사서가 왕세자를 인도하여 내려가 다시 배위(拜位)에서 예를 마치고 안으로 돌아간다.】 죽책문(竹冊文)에 이르기를,
"저사(儲嗣)165) 를 세우는 것은 종묘(宗廟)의 중함을 잇는 것이고 위호(位號)를 바르게 정하는 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매어 놓는 것이니, 이는 바로 고금의 공통된 법도이며 또한 우리 나라 조종(祖宗)의 구전(舊典)이므로, 비로소 드러난 책례(冊禮)를 선양하여 크게 이장(彛章)166) 을 거행한다. 아! 원자(元子)의 의포[日表]가 영명(英明)하고 타고난 성품은 어질고 효성스러워, 말을 하자 문자(文字)를 식별할 줄 알았고 솔선하는 행위는 빈사(賓師)를 번거롭게 하지 않았다. 깊은 사려와 준수한 자태가 의젓하여 가르치지 않아도 깨달았으며, 시청(視聽)하고 동작하는 즈음에 이미 대인(大人)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에 기도(器度)가 숙성(夙成)하고 또 체구가 날로 성장함을 보겠다. 주(周)나라에 자손을 내려 준 것은 모두 인(仁)을 쌓아 온 덕이며, 한(漢)나라에서 태자(太子)의 이름을 정한 것은 모두 일찍 세우기를 원하였던 것이었으니, 우리 나라의 예(禮)에도 진실로 부합되고 여러 사람의 의논도 같았다. 길(吉)한 상서(祥瑞)가 다 이르니 성조(聖祖)167) 께서 나라를 처음 여신 해를 만나게 되었고, 의문(儀文)을 간략히 하니 지난날 영원하기를 기원한 마음을 본받는다. 이에 너를 명하여 왕세자로 삼으니, 너는 위의(威儀)를 힘써 닦고 계명(戒命)을 공손히 지켜야 한다. 강학(講學)이 아니면 이치를 밝힐 수 없고, 덕(德)이 향상되려면 몸을 성실히 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항상 간사한 자를 멀리하여 미연(未然)에 방지할 것이며, 빨리 좋아하는 놀이를 떨쳐 버리어 무엇이 해롭겠느냐고 말하지 말라. 위미 정일(危微精一)168) 의 가르침에 조심하고, 예악 서수(禮樂書數)의 공부에 부지런하라. 효도는 모든 행실의 근본이 되니 일마다 문왕 세자(文王世子)169) 를 따르고 배워서 상성(上聖)의 영역에 이르러 반드시 ‘순제(舜帝)는 어떤 사람인가?〈 나도 순제가 될 수 있다.〉’고 하라. 환관(宦官)과 시첩(侍妾)을 가깝게 하는 때를 적게 하고 현사(賢士)를 가깝게 하는 때를 많게 하면 반드시 측근에 모두 바른 사람을 기대할 수 있고, 거북점을 쳐서 따르고 서인(庶人)에게 물어보아도 길(吉)하다고 해야만 역시 수(壽)와 녹(菉)이 끝이 없게 됨을 증험하게 될 것이다. 오늘 귀에 대고 일러둔 말을 잘 생각하여 온 나라가 목을 길게 빼고 몹시 기다리는 바에 부응하라." 【홍문관 제학(弘文館提學) 남공철(南公轍)이 지었다.】
하였다. 교명문(敎命文)에 이르기를,
"적자(嫡子)를 세우고 이름을 바르게 정하는 것은 바로 만세의 정상적인 도리이며, 일찍이 유시하여 미리 세자를 세우는 것 역시 삼대(三代)170) 의 정치가 장구했던 지략이었다. 이에 이장(彛章)을 거행하여 철명(哲命)171) 을 부여한다. 아! 너 원자(元子)는 모습이 준수하고 자질이 영명하였다. 큰 경사로 인해서 태어났음을 진실로 알겠으니 아름다운 상서가 여러 차례 드러났고, 사물을 대하는 가르침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도 지혜가 스스로 열렸다. 우뚝함이 거인(巨人)같아 엄연한 의표(儀表)가 본받을 만하고 위엄은 두려워 할 만하며, 천성(天性)에 타고난 것은 온화하게 어른을 공경하고 어버이를 사랑할 줄 알았다. 유선(諭善)과 속료(屬僚)의 관원들은 선조(先朝) 때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을 잘 따를 것이고, 옷을 단정히 입고 나와서 절하는 모습에서 오늘날 백성들의 칭찬하는 노래가 〈원자에게로〉 돌아감을 기쁘게 여긴다. 몸은 비록 손을 이끌고 다니는 아이이지만 바탕이 사실 종사(宗社)를 공고히 하게 되어, 처지가 이미 책봉한 것이나 다름이 없으므로 성대한 전례(典禮)를 우선 늦추려 하였는데, 이해에 와서 사람과 천도(天道)가 같이 길한 데 맞으므로 유사(有司)가 굳이 청하게 되었다. 나라의 계통을 잇는 의리를 깊이 생각하여 이에 목을 길게 빼고 몹시 기다리는 정성에 답하기로 하였다. 이에 너를 명하여 왕세자로 삼으니, 너는 어릴 때의 그 마음을 보존하고 《효경(孝經)》의 뜻을 통달하라. 비록 옛날 태어날 때부터 아는 자질일지라도 반드시 학문의 공에서 힘을 입었었는데, 더군다나 몽양(蒙養)172) 하는 단서에는 마땅히 의방(義方)의 훈계를 향해야 한다. 정성 온정(定省溫凊)173) 하는 아들의 직분을 다른 데에서 구할 것이 아니며, 인외 엄공(寅畏嚴恭)174) 하여 가법(家法)을 서로 이로써 전하도록 하라. 기이한 노리개를 좌우에 가까이 하지 말아서 지기(志氣)가 더욱 새롭게 하고, 평상시에 현사(賢士)를 늘 접하면 간사한 자들이 저절로 멀어지게 된다. 구용(九容)175) 과 사물(四勿)176) 의 경계에서부터 시작하여 습관이 천성처럼 되면, 마침내 이제 삼왕(二帝三王)의 다스림도 마음으로 터득하여 몸소 실천하게 된다. 아!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리에 들기까지 혹시라도 이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일취 월장(日就月將)하여 거의 영원히 현덕(顯德)에 오르게 될 것이다. 이에 교시(敎示)하노니, 마땅히 잘 알아야 할 것이다." 【 영돈녕(領敦寧) 김조순(金祖淳)이 지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30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어문학-문학(文學)
- [註 165]저사(儲嗣) : 왕세자.
- [註 166]
이장(彛章) : 상전(常典).- [註 167]
성조(聖祖) : 태조.- [註 168]
위미 정일(危微精一) :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 나오는 말로,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은미(隱微)하니, 오직 정일(精一)하게 하여 중정(中正)을 잡아야 한다."고 하였음.- [註 169]
문왕 세자(文王世子) : 《예기(禮記)》의 편명.- [註 170]
삼대(三代) : 하·은·주(夏殷周).- [註 171]
철명(哲命) : 현명한 가르침.- [註 172]
몽양(蒙養) : 어린이를 교육함.- [註 173]
정성 온정(定省溫凊) : 부모를 모시는 사람이 아침 저녁으로 문안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서늘하게 하는 일.- [註 174]
인외 엄공(寅畏嚴恭) : 공경하고 두려워함.- [註 175]
구용(九容) : 《예기(禮記)》 옥조편(玉藻篇)에 나오는 말로, 수신(修身)과 처세(處世)하는 데 응당 가져야 할 아홉 가지 태도. 즉 발걸음은 정중하게, 손은 공손하게, 눈은 단정하게, 입은 조용하게, 소리는 고요하게, 머리는 곧게, 기색은 엄숙하게, 설 때는 덕스럽게, 안색은 장엄하게 갖는 일.- [註 176]
사물(四勿) :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말로, 예(禮)에 어긋나면 보지 말고, 예에 어긋나면 듣지 말고, 예에 어긋나면 말하지 말고, 예에 어긋하면 행동하지 말라는 네 가지 경계임.○丙子/御仁政殿, 冊王世子。 【上具冕服陞座, 都監都提調以下就階上西向立。 傳敎官跪啓傳敎, 執事者對擧敎命冊印案由正門出。 傳敎官降自東階詣, 使者東北西向立, 執事者擧案降自正階, 立於傳敎官之南, 都監都提調以下降復位。 執事官奉敎命函, 進傳敎官前, 傳敎官取敎命函授正使, 正使北向跪受, 置敎命函于案, 擧案者對擧冊函印綬皆如上儀。 上還內, 王世子受冊于熙政堂, 具雙童䯻空頂幘七章服以出。 敎命冊印陪奉時祇迎, 正使以敎命冊印置于案, 司書引王世子就拜位行禮, 陞就受冊位跪。 正使取敎命函授王世子, 輔德跪代受, 正使取冊函授王世子, 司書跪代受, 正使取印綬授王世子, 翊贊跪代受, 司書引王世子降, 復拜位禮畢還內。】
竹冊文:
建儲嗣, 所以承宗廟之重, 正位號, 所以繫億兆之心, 斯乃古今之通規, 亦我祖宗之舊典, 載揚顯冊, 誕擧彝章。 咨爾! 元子日表英明, 天稟仁孝, 能言而先辨文字, 率行則不煩賓師。 覃訏岐嶷之姿, 儼若不敎而喩, 視聽動作之際, 已具大人之儀。 乃玆器度之夙成, 又見衣尺之日長。 周家錫胤, 皆由積累之仁, 漢儲定名, 擧切早建之願, 在邦禮而允叶, 亦僉議之大同。 吉祥咸臻, 値聖祖開創之歲, 儀文節約, 體昔日祈永之心。 玆命爾爲王世子。 爾其勉修威儀, 祗服命戒。 非講學無以明理, 惟進德莫如誠身。 常遠柔佞而禁於未然, 亟祛玩好而毋謂何害。 兢兢乎危微精一之訓, 孜孜於禮樂書數之文。 孝者爲百行之源, 動遵文王世子, 學而至上聖之域, 必曰 ‘大舜何人?’ 親宦妾時少, 親賢士時多, 必須左右之皆正, 謀龜筮而從, 謀庶人而吉, 亦驗壽祿之無疆。 克念今日提耳之言, 庸副擧國延頸之望。 【弘文提學南公轍製。】
敎命文:
樹適正名, 乃萬世經常之道, 早諭豫建, 亦三代治長之謨。 爰擧彝章, 載貽哲命, 咨爾元子, 姿表秀異, 稟質英明, 固知篤慶而生, 休祥屢著, 不煩遇物之誨, 智思自開。 屹如巨人, 儼乎儀可象而威可畏, 根於天性, 藹以敬惟長而愛惟親。 諭善僚屬之官, 遵先朝寡藐是敎, 勝衣趨拜之狀, 喜今日謳歌攸歸。 身雖在於孩提, 基實鞏於宗社, 處地無間於已冊, 擬盛典之姑徐, 人天叶吉於是年, 致有司之固請。 深軫繼體之義, 庸答延頸之忱。 玆命爾爲王世子, 爾其保赤子之心, 通《孝經》之旨。 雖昔生知之質, 必資學問之功, 矧玆蒙養之端, 宜服義方之訓。 定省溫凊, 子職不求於他, 寅畏嚴恭, 家法相傳以是。 奇玩毋近於左右, 志氣彌新, 賢士常接於宴閑, 便侫自遠。 始乎九容四勿之戒, 習與性成, 終焉二帝三王之治, 躬行心得。 於戲! 夙興夜寐, 罔或墜於誨言, 日就月將, 庶永躋於顯德。 故玆敎示, 想宜知悉。 【領敦寧金祖淳製。】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30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어문학-문학(文學)
- [註 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