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대왕 애책문(哀冊文)
애책문(哀冊文)
경신년 6월 임자삭(壬子朔) 28일 기묘일에 정종(正宗) 문성 무열 성인 장효 대왕이 창경궁(昌慶宮) 정침(正寢)에서 훙어하시고, 그해 겨울 11월 기묘삭 6일 갑신일에 건릉(健陵)으로 영원히 옮겨모시게 되었는데 예에 의한 것이다.
관의 굄틀이 열리고 상여도 동시에 채비가 되어 이 좋은 날을 택하여 저 현궁(玄宮)으로 가시는 것이다. 사람도 영령들도 다 흐느껴 울고 하늘도 땅도 빛을 잃었다. 이 넓고 화려한 궁궐을 떠나 어두운 저 세상으로 떠나시려고 한다. 이때 주상 전하께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시고 하직하는 상엿줄에 아픔이 서리었다. 구름 타고 가시는 길 붙들려 해도 붙들 수가 없고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복받쳐 목이 메는 것이다. 하루에 세 번 문안할 길이 영원히 막혔으며 어느덧 5개월이 지나 장례치를 날이 되었다. 그리하여 하신(下臣)에게 말씀을 내려 이 애책을 쓰도록 하셨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 복희(伏羲)·신농(神農)으로부터 성탕(成湯)·문왕(文王)에 이르기까지는 성(聖)과 성(聖)이 계승하여 제왕(帝王)의 문호를 이루었으나 공자(孔子)는 지위를 얻지 못해 사도(斯道)가 아래 있기 시작했고 한(漢)과 당(唐)을 지나면서 세상은 기나긴 밤이었습니다. 한번 가면 다시 오는 법이기에 우리 성군께서 그 시기에 맞추었으니 천운으로도 다시 빛날 때였으며 타고난 상지(上知)의 바탕이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합문[閤]을 나와 영준(英俊)으로 뽑히시고 성조(聖祖)께서는 효성스럽다 하시면서 은인(銀印)을 내리셨습니다. 정무를 총감하시면서는 천지의 질서가 다시 정돈되고 밝은 태양이 내리비쳐 쌓였던 음(陰)들이 무너져나갔습니다. 즉위 벽두의 하교가 인륜을 세우자는 것이었으니 뉘라서 그 기강을 범하여 베임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겠습니까. 성내지 않아도 다 무서워하고 나라 전체가 심복을 했습니다. 너희 조상을 생각지 않느냐고 교목 세신들을 타이르시고 이 세상 모든 일이 오직 의리뿐이라시면서 내가 사도(師道)를 맡은 것은 마지못해 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유정 유일(惟精惟一)의 심법(心法)은 물려받으신 전통이며 저울추같이 저울대같이 구차함이 추호도 없으셨습니다. 도를 따르면 길하고 어기면 패덕(悖德)이 되나니 둘로도 말고 셋으로도 말고 순(順)과 역(逆)을 살피라고, 20여 년에 걸친 정치의 강령(綱領)이 바로 그것이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하늘의 법도에 순응하는 것은 요(堯)를 본받으시고 선왕을 못잊어 사모하기는 순(舜)과 같이 하셨으며, 일각이라도 아껴 부지런히 공부하시고 중도(中道)를 세움에 법도에 맞게 하셨으며, 원대한 규모와 거룩하신 공렬로 집대성을 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그 명성 그 밝음이 넘쳐흘렀습니다. 사석에서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상제를 대하듯 지성스러웠으며 종묘에 들어서는 오직 경건과 진실을 생각하고 궁원(宮園)에 있어서는 규모를 모두 알맞게 정하셨습니다. 가고 안 계신 어버이 생각에 때로 단에 올라 분향을 하였으나 물은 흘러 꼭 동으로 가듯 왕실의 정통만은 그대로 지켰으며 밤낮으로 피로도 잊은 채 경사(經史)에서 도를 찾고, 가을 겨울 즈음에 농사일이 대강 끝나면 과거를 보여 인재를 선발하면서 그 평점을 엄밀히 하고 모든 평점의 기준은 오직 주자학에다 두셨습니다. 상자를 메운 수많은 책들이 은하수가 돌아 비치듯 법식이 되고 교훈이 되어 자손을 돕는 길이었으며, 성균관에서 훌륭한 선비를 길러내고, 표기(豹旂)·조장(鳥章)을 세우고는 군대 조련도 하셨습니다. 낮은 집에 검소한 생활과 화색(貨色)을 멀리했던 엄한 규모는 사관이 이루 다 쓸 수 없을 만큼 백왕(百王)의 모범이었으니 해와 달처럼 밝아 비치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흐르는 강과 바다 같아 만물이 다 무젖었습니다. 맑고 평이한 길을 걸으시고 아무 하는 일 없이 팔짱 끼고 보위를 지키신 것 같았는데도 때 맞추어 이슬 내리고 바람이 불어 하늘의 사랑이 내리도록 하셨으니 지난 역사를 다 들추어도 이보다 더 큰 공로를 남긴 이는 없었습니다.
정통은 삼황(三皇)·오제(五帝)의 정통이요, 학문은 주자(周子)·정자(程子)를 겸하신 학문으로 그 군자(君子) 만년토록 복록이 진진하고 떠오르는 태양처럼 차오르는 달빛처럼 끝이 없으리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늘이 재앙을 내리고 풍상(馮相)008) 이 갑자기 요기를 아뢰자 자연의 조화 따라 하늘로 오르시고 궁궐을 비운 채 임어하지 않으셨으니, 아, 슬픕니다. 용수염이 턱에서 빠지고009) 상여가 떠날 채비를 차렸으며 새벽 파루가 시간을 알리고 운아삽이 앞길을 알리고 있습니다. 훨훨 타는 화톳불은 빛나신 덕이 아닌가 싶고 뜰에 진열된 장식들은 장엄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온누리를 덮으신 은혜 아득하기만 하여 하늘과 땅을 보고 울어도 따를 길이 없으니, 아, 슬픕니다.
떠오르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하는 조화의 기틀은 미묘하여 알 도리가 없기에 성인(聖人)이 하는 일은 그 몸에 도(道)를 쌓는 것입니다. 효성은 신명을 감동시켰고 사랑은 우주를 감싸셨습니다. 그는 신에게 제사 모시는 일로도 나타났으며 문장과 덕행으로도 나타나 삼고(三古)에 비해보아도 뛰어나 유감될 것이 없었으며 육위(六位)010) 가 각기 때 맞추어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였습니다. 수많은 시냇물이 흘러 한 곳에 모이듯이 백성을 교화하시고 효도를 표방하여 백성들이 느끼고 따르도록 하셨는데, 왜 그 뜻을 못다 펴시고 뭇 백성에게 원통함을 안겨주셨습니까. 아아, 슬픕니다. 태양은 빛을 잃고 하늘이 궤도를 이탈했습니다. 성교(聲敎)가 아직도 부족한데 휴운(休運)이 중간에 막혀 님께서는 이미 멀리 떠나시고 앞으로 험한 길이 많을 것인데 《춘추》를 읽고자 한들 어디에서 읽을 것이며, 준수한 선비들은 누구를 본받을 것이냐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거리를 누가 있어 밝혀주며 거센 물결은 누가 있어 막아줍니까. 다만 백성들 생활이 족하고 안정되었기에 그 덕을 잊지 않고 받들어 주선할 뿐입니다. 아, 슬픕니다.
정사를 대신 살피시는 성모의 모습도 처참하고 상중에 계신 어린 왕의 얼굴 또한 너무 가엽습니다. 자리에 계신 지가 어제와도 같은데 지금 어느 곳에서 만사를 잊고 노시는 것입니까. 긴긴 밤은 새지 않고 시간만 자꾸 흘러, 가고 또 가는데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슬픔이 이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영결할 때가 되었습니다. 고요하고 아늑한 궁궐을 버리시고 저 험준한 산으로 가신단 말입니까. 술을 부어 옮겨가는 것을 고하옵고 상여끈을 늘여 조도(祖途)로 나가고 있습니다. 쌓이고 쌓인 그리움에 터지는 통곡소리 아, 어느새 천고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아, 슬픕니다.
남쪽에 선원(仙園)과 이웃하고 있는 산릉은, 세상 끝까지 미쁨을 받으셨기에 땅에도 좋은 기운이 맺혀 백호가 정기를 날리고 청룡도 그와 맞먹게 좋으며 샘물 연연히 흐르고 선대의 능도 가까이 있습니다. 수려한 기운이 한 줄기 산자락에 모여있고 천봉의 아름다운 정기가 거기 집결되었으니 유명(幽明)이 정녕 다름이 없을진대 영혼인들 무슨 간격이 있겠습니까. 아아, 슬픕니다.
세상에 장차 도가 흥하려고 우리 임금되시고 스승되셨더니, 백성들이 복이 없어 우리 부모를 여의었구려. 한번 가신 길 다시 못 돌아오셔도 지극한 은택은 여기 남아있습니다. 형범(型範)은 금석(金石)과 함께 영원히 존재할 것이며 예악(禮樂)은 우로(雨露)가 되어 우리를 풍요롭게 할 것이니 그 크신 덕을 무어라 이름할 수 있겠습니까. 그 빛난 업적 이루 다 쓸 수가 없습니다. 하늘에 계시며 날마다 밝게 비추어 보셔서 사왕(嗣王)이 광명하시고 현신들이 잘 보필하도록 길을 열어주소서. 남이 다 아는 사실만을 푸른 옥돌에 새겨 만분의 일이나마 그 덕을 나타내보려고 한 것이니, 아, 슬픕니다." 【영의정 심환지(沈煥之)가 제술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5책 1권 4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290면
- 【분류】왕실(王室) / 역사(歷史) / 어문학(語文學)
- [註 008]풍상(馮相) : 주(周)나라 때 관직 이름. 천문(天文)에 관계된 일을 맡아보았음. 《주례(周禮)》 춘관(春官).
- [註 009]
용수염이 턱에서 빠지고 : 임금의 승하를 이른 것. 황제(黃帝)가 형산(荊山) 아래서 솥을 주조하여 그 솥이 완성되자 용이 긴 수염을 늘어뜨려 황제를 맞아 올렸는데, 함께 용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70여 명의 측근 외에 미처 못 따라간 소신들이 모두 용수염을 잡고 늘어져 용의 수염이 빠졌다고 한다 《사기(史記)》 권28 봉선서(封禪書).- [註 010]
육위(六位) : 건괘 단사(彖辭)에 "종시에 훤하면 육위가 각기 제때를 맞추어 이루어진다.[大明終始 六位時成]" 하였음. 《주역(周易)》 건괘(乾卦).○哀冊文。 維歲次庚申六月壬子朔二十八日己卯, 正宗文成武烈聖仁莊孝大王, 薨于昌慶宮之正寢, 是年冬十一月己卯朔初六日甲申, 永遷于健陵, 禮也。 龍輁纔啓, 蜃衛旣同, 簡此元辰, 卽彼玄宮。 人靈浩其於悒, 天地爲之慘(淡)〔惔〕 。 離楓宸之赫弘, 指柏城之幽闇。 于時主上殿下, 哀結崩天, 痛纏辭紼。 攀雲馭而莫逮, 緬風樹而增咽。 廓三朝之永違, 倐五朔之斯遄。 降雍言於下臣, 託休光於瑤鐫, 其詞曰: "粤自羲、農, 曁于湯、文, 聖聖繼統, 帝王之門, 孔未得位, 斯道在下, 歷漢越唐, 世入長夜。 無往不復, 我后膺期, 運撫重熙, 姿挺上知。 髫齡出閤, 妙選英俊, 聖祖曰孝, 錫以銀印。 比總監務, 重整乾坤, 离明煥臨, 積陰崩奔。 初元之敎, 立我人極, 誰其干紀, 以誅以殛? 不怒而威, 薄海率服。 無念爾祖, 咨乃喬木, 天下萬事, 惟義與理, 任以師道, 予非獲已。 精一心法, 矧有所受, 金秤玉衡, 毫芒不苟。 惠迪則吉, 違曰悖德, 勿貳勿參, 審哉順逆, 二紀之治, 此其綱領, 愼終如始, 壹是以正。 欽昊法勛, 見墻儀華, 惜寸孜工, 建中視柯, 丕謨丕烈, 爰集大成, 天覆地載, 洋溢聲明。 燕不露寢, 對越潛誠, 穆穆淸廟, 洞屬其思, 有侐宮園, 隆殺咸宜。 風泉之感, 壇香時升, 萬折必東, 符于寧陵, 宵旰忘疲, 經史凝道, 曰秋冬交, 民事粗了, 經選手圈, 儼乎朱黃, 集粹會衷, 宗我紫陽。 百編在箱, 雲漢昭回, 爲典爲訓, 燕翼後來, 乃造吉髦, 泮水洋洋, 乃詰戎兵, 豹旂鳥章。 儉崇卑菲, 戒嚴貨色, 史不勝書, 百王所則, 日月有明, 容光無遺, 江河流澤, 庶物咸滋。 皇道淸夷, 寶扆垂拱, 調露時風, 導揚天寵, 歷選往牒, 功莫與京。 統接三五, 學兼周、程, 君子萬年, 茀祿穰穰, 如升如恒, 方期無彊。 胡皇天之降割, 怱馮相之告祲, 循大化而陟方, 閟宸景而厭臨, 嗚呼? 哀哉。 龍髯脫胡, 鷖輅上靷, 晨漏警節, 畫翣告引。 門燎怳其德輝, 廞衛儼其威容。 恩覆燾而已邈, 淚穹壤而無從, 嗚呼! 哀哉。 化機升沈, 眇不可窮, 聖人之作, 道積厥躬。 孝感神明, 仁包寰宇。 集于禮神之囿, 純于文德之圃, 軼三古而無憾, 御六位而時成。 紛川流而敦化, 撫孝理而感亨, 何志事之未卒, 抱至冤於群生? 嗚呼! 哀哉。 虞日淪精, 杞天傾軌。 聲敎未訖, 休運中否, 帝鄕已遠, 黃道多巇, 麟經無可讀之地, 髦士抱安倣之悲。 昏衢迷兮莫燭, 橫流倒兮孰障? 惟關和之則有, 奉周旋而不忘。 嗚呼! 哀哉。 聖母攝政, 簾儀悽惻, 沖王在疚, 戚容深墨。 黼座如昨, 眞遊何處? 脩夜不暘, 靈辰斯遽, 去復去兮安適? 悲莫悲兮永訣。 違閶闔之靚穆, 卽岡坂之嵽嵲? 㪺斗黃流而告遷, 纚素紼而就祖。 齎孺慕而一慟, 遂奄成於千古。 嗚呼! 哀哉。 惟南有岡, 隣于仙園, 感孚終天, 氣結厚坤, 白虎騰精, 靑烏叶吉, 泉源綿聯, 松梓邇密。 蘊靈秀於一麓, 結佳氣於千嶂, 諒無間於幽明, 豈有隔於精爽? 嗚呼! 哀哉。 道之將興, 兼我君師, 民之無祿, 喪我考妣。 仙輧不返, 至澤空留。 型範與金石不泐, 禮樂幷雨露同流, 蕩乎大德之難名? 煥乎至業之莫述。 冀於昭之日監, 牖緝熙與肩怫。 徵顯謨於翠珉, 庶彷像其萬一, 嗚呼! 哀哉。 【領議政沈煥之製。】
- 【태백산사고본】 55책 1권 4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290면
- 【분류】왕실(王室) / 역사(歷史) / 어문학(語文學)
- [註 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