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관찰사 박기정이 태조가 말을 달렸던 길에 대해 치계하다
황해도 관찰사 박기정(朴基正)이 곡산부(谷山府)의 태조가 말을 달렸던 길을 살펴본 내용으로 치계하기를,
"신은 말을 달려 곡산부에서 북쪽으로 1백 50리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가람산(岢嵐山)에 이르러 치마도(馳馬道)139) 옛터를 삼가 살펴보았습니다. 대체로 장백산(長白山) 한 능선이 서남쪽으로 6, 7백 리를 뻗어내려 오다가 곡산 북쪽에 이르러 가람산을 이루었는데 혹은 하남산(河南山)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배후는 양덕(陽德) 땅인데 북쪽으로는 안변(安邊)·덕원(德源)·문천(文川)·고원(高原) 등 땅과 잇닿았고, 동쪽으로는 이천(伊川)·안협(安峽)을 틀어쥐고, 서쪽으로는 성천(成川)·삼등(三登)을 끼고 남쪽은 곡산 땅입니다. 조물주가 특별히 만든 높은 산이 만 길이나 깎아지른듯 솟아 있는데 그 웅건한 기세와 기묘하고 장엄하게 배치된 모습은 해서지방 여러 산들의 으뜸이 될 뿐만 아니라 바로 경기·강원과 서북 지역을 포함한 5개 도의 요충지인 것입니다.
산줄기가 좌우로 나래를 펴 주위를 껴안아 감싸고 있고 그 중앙에 한 줄기 큰 능선이 뻗어나와 그 길이는 두세 리(里) 정도에 이르고 너비는 1백 50, 60보 정도 되는데, 평탄하고 곧게 깔린 형태가 마치 숫돌과 화살 같았습니다. 그것이 비록 조물주의 조화라고는 하지만 인간이 다듬어놓은 땅과 흡사하였습니다. 그 근본 형체를 따져보면 해좌 사향(亥坐巳向)140) 으로서 세속에서 전하는 성조(聖祖)의 치마도가 곧 이곳이었습니다. 앞쪽과 뒤쪽에 다 칠성대(七星臺)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돌을 쌓아올려 대를 만들었던 터가 뚜렷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동쪽으로 10여 리 지점에 있는 능선은 곧 상유령(上踰嶺)인데 항간에 전하는 말은 성조께서 일찍이 이곳을 지나갔기 때문에 그와 같이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상유령에서 남쪽으로 15리 지점에 성조성(聖祖城)이 있는데 그곳은 하남리(河南里)의 마을 입구였습니다. 평지의 중앙에 산봉우리 하나가 높이 솟아있고 그 꼭대기에 작은 성이 있는데 돌을 포개 쌓아올린 것으로서 둘레는 31보이고 높이는 18척이었습니다. 동쪽·서쪽·북쪽 3면은 높이 서 있고 남쪽은 허물어졌으며 그 중앙의 토대[土墩]는 사면에 쌓은 돌과 그 높이가 같았습니다.
그 성에서 동쪽으로 3리쯤 되는 지점의 골짜기 사이에는 샘물이 바위 밑에서 만곡원(萬斛源)141) 처럼 솟아오르는데 속칭 수라천(水剌泉)이라 하고 또 돌 틈에서 흘러나오는 샘이 있는데 속칭 성조랑(聖祖浪)이라 합니다. 옛날 전설에 의하면 이 두 줄기의 샘은 일찍이 성조의 끼니를 짓는 데에 이바지하였으므로 그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동(槽洞)·안치(鞍峙)·전동(箭洞)·노동(弩洞)·창암(鎗巖)·검암(劍巖)·주암(胄巖)·종암(鍾巖)·용가봉(龍駕峰) 등의 명칭이 하나의 산속에 깔려있으며 또 시냇물이 바위 골짜기에서 흘러나와 문성강(文城江)에 이른 뒤에 당저(堂底)·용연(龍淵)의 물과 합류하여 대동강(大同江)으로 들어갑니다.
이상의 상황으로 미루어보면 상유령은 북관(北關)142) 으로부터 송경(松京)143) 으로 통하는 곧은 길이고 치마도와 성조성·용연 등지는 다 성조께서 풍패(豊沛)144) 로부터 왕래하시던 길이었다는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조동·안치·용가봉 등 칭호들도 모두 근거가 있는 것들입니다. 신은 또 원근에 있는 노인들에게 여러가지로 알아보았더니, 모두들 이 산은 성조께서 임하셨던 곳이라고 옛날부터 전해 내려와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이목에 자자하다고 하나같이 말하였습니다. 삼가 그림 한 벌을 그려 예조로 올려보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52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204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과학-지학(地學)
- [註 139]치마도(馳馬道) : 이 태조가 말을 달리며 무술을 익혔던 길.
- [註 140]
해좌 사향(亥坐巳向) : 남동향.- [註 141]
만곡원(萬斛源) :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샘물.- [註 142]
○黃海道觀察使朴基正, 以谷山府馳馬道奉審事, 馳啓曰: "臣馳到谷山府北距一百五十里岢嵐山, 奉審馳馬道舊址。 大抵長白山一麓, 西南馳六七百里, 至谷山之北, 爲岢嵐山, 或稱河南山。 背爲陽德地, 而北接安邊、德源、文川、高原等地, 東扼伊川、安峽, 西挾成川、三登, 南爲谷山地。 天作高山, 壁立萬仞, 其氣勢之雄健, 排鋪之奇壯, 不獨爲海西諸山之祖而已, 直當畿原西北五道要衝之地。 左右開張, 環抱拱衛, 中抽一大幹, 長可爲數里, 廣爲一百五六十步, 而坦易平衍, 如砥如矢。 雖是造化之工, 宛似修治之地。 論其原體, 坐亥向巳, 俗傳聖祖馳馬道卽是耳。 前後俱有七星臺稱名者, 纍石爲臺, 基址宛然。 其東麓十餘里許, 卽是上踰嶺, 而諺傳聖祖所嘗過此, 故以爲名。 嶺之南十五里許, 有聖祖城, 卽河南里洞口也。 當中一峰聳竦突起, 峰頭有小城, 矗石爲築, 周爲三十一步, 高爲十八尺。 東、西、北三面削立, 南面頹圯, 其中土墩與四面築石, 平均相齊。 城東三里許山谷間有飛泉, 踊出於巖底, 如萬斛源, 而俗稱水剌泉, 城底路傍, 又有石間流泉, 俗稱聖祖浪。 自古傳說以爲, 兩泉嘗供聖祖御廚, 故有是名。 又有槽洞、鞍峙、箭洞、弩洞、鎗巖、劒巖、胄巖、鍾巖、龍駕峰等稱號, 羅列於一山之內, 又有溪水石谷流出, 至文城江, 與堂底、龍淵之水合流, 而入于大同江。 以此推之, 則上踰嶺, 似是自北關通松京之直路, 而馳馬道及聖祖城、龍淵等處, 皆爲聖祖自豐沛往來之路者, 的然無疑, 至於槽洞、(鞍峰)〔鞍峙〕 、龍駕峰等諸號, 俱有所據。 臣又多般搜訪於遠近故老, 則皆以此山之爲聖祖所臨, 自古流傳, 至于今塗人耳目, 同然一辭。 謹以圖畫一本, 上送于禮曹。"
- 【태백산사고본】 52책 52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204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과학-지학(地學)
- [註 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