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한치응이 역적 집안의 자손과 혼인을 한 정상훈을 처벌할 것을 청했으나 불허하다
집의 한치응(韓致應)이 논계하기를,
"선릉 참봉(宣陵參奉) 정상훈(鄭尙勳)은 이상로(李商輅)가 법에 의해 처단된 뒤에 그의 집안과 혼사를 맺어 역적은 모든 사람이 원수로 여겨야 하는 의리를 망각하였습니다. 속히 그를 벼슬에서 내쫓아 국가의 큰 예법을 엄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윤허하지 않았다. 좌의정 이병모(李秉模)가 아뢰기를,
"역적 집안의 자손은 장가들지 못한다는 것은 성인께서 내리신 명백한 가르침이 있는데, 시집가는 것은 장가드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역모가 드러나기 전에 혼사를 맺었다면 진실로 미리 파악하지 못했다고 책하기 어렵겠지만 역적질을 한 뒤에 혼사를 맺는 것은 패륜의 죄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대간의 논계를 윤허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자, 전교하기를,
"그가 비록 미관 말직이기는 하나 분명히 밝히기 어려운 죄과에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다. 해조에서 그 사실을 조사하여 아뢰라. 대간의 논계에 대해서는 윤허한다."
하였다. 이조가 정상훈에게 캐물으니, 정상훈이 말하기를
"저의 동생 정세훈(鄭世勳)이 동네 사람에게 속아 이기철(李起哲)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이미 장가든 뒤에야 비로소 이기철이 바로 역적 이상로의 아들 이복일(李復一)이 변성명한 자라는 것을 알았다. 몹시 분통스럽기는 하였으나 실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고 하였다. 이런 내용으로 아뢰니, 전교하기를,
"일찍이 정상훈의 사람됨을 보건대 비록 서천 부원군(西川府院君)526) 의 후손이라고는 하나 시골에서 근근이 양반의 명색만 지니고 있는 꽉 막힌 자에 불과하였다. 역적의 자손에게 장가들지 말라고 가르치신 성인의 교훈을 제대로 지키기를 이런 사람에게 바라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연좌법(緣坐法)에도 적용되지 않는 방계(傍係)로서 유배중에 있지도 않은 자에게 대해서까지 혼인을 맺지 못하게 한다면, 어찌 이와 같은 왕정(王政)이 있겠는가. 더구나 딸을 시집보내기에 급하여 이름을 바꾸고서 구혼하였은즉 저 밭을 일구며 농사지으면서 살아가는 상훈과 같은 자가 알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좌의정이 경연에서 아뢸 때 알고서도 고의적으로 혼인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지금 그에 대한 사실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 그러니 죄인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의리에 있어서 의당 용서해 주어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이 일로 인하여 그가 불행하게 된다면 지난번에 내가 서천 부원군 집에 대해 공훈을 기록한 일이 그의 집안에 해가 되고 누가 되기에 족할 것이다. 가령 서천 부원군의 영혼이 이 사실을 안다면 황천에서 억울해 하지 않겠는가. 특별히 사헌부의 논계에 대해서는 따라 주어 국가의 예법을 엄하게 하고, 이어 그것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융통성을 보이는 것은, 바로 공을 세운 집안을 생각해 주는 도리에서이다. 가령 정상훈이 직접 죄를 범하였다고 하더라도 대대로 용서해 주는 도리에 있어서는 마땅히 가벼운 죄를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더구나 이토록 애매한 일에 대해서겠는가. 선무사(宣武祠)의 수직(守直) 관원을 더 늘리라고 이미 계하하였으니 그로 하여금 선무사를 잘 지키게 하라. 그리고 선릉 참봉의 대임자는 구전(口傳)으로 뽑을 것이니 의망하여 들이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0책 50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147면
- 【분류】사법(司法) / 가족(家族) / 인사(人事) / 변란(變亂) / 풍속-예속(禮俗)
- [註 526]서천 부원군(西川府院君) : 정곤수(鄭崑壽).
○執義韓致應, 啓論: "宣陵參奉鄭尙勳, 李商輅伏法之後, 與之結婚, 忘共讎之義。 請亟汰其職, 以嚴隄防。" 上, 不允。 左議政李秉模奏曰: "逆家子不娶, 聖訓昭垂, 嫁與娶均也。 結姻於爲逆之前, 固難責其逆睹, 而結姻於爲逆之後, 無所逃於悖倫。 宜允臺啓。" 敎曰: "渠雖微官, 不可置之難明之科。 該曹問其事實以聞。 臺啓則依啓。" 吏曹問于尙勳, 尙勳言: "其弟世勳, 爲鄕人所瞞, 娶李起哲之女, 已婚而始知起哲卽逆賊商輅子復一之變名者也。 雖甚憤痛, 實無奈何。" 以其言啓, 敎曰: "嘗見鄭尙勳之人也, 雖曰西川之後裔, 特鄕曲僅保班名之椎魯者流。 聖經不娶之訓, 有難求備於此人。 且如許支屬之免應坐, 非在謫者, 錮其婚嫁, 勿與咸恒, 寧有似此王政乎? 況急於成人, 變其名而求婚, 則彼尙勳之伏在田間, 耕鑿爲生者, 無怪乎不識不知。 左相筵奏, 謂其知而故爲也, 今其事實, 與所料相左。 其在人其人之義, 合有原恕之道。 萬一因此轗軻, 向予爲西川家記錄之擧, 適足爲害爲累。 倘使西川之英靈有知, 得不齎鬱茹痛於泉塗乎? 特從臺啓, 以嚴隄防, 仍示闊狹, 卽念勳伐也。 借使尙勳有身犯, 揆以世宥, 當示從輕。 其於千萬曖昧之事乎? 宣武祠守直官員, 加設啓下, 使之謹守祠宇。 宣陵參奉之代, 口傳擬入。"
- 【태백산사고본】 50책 50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47책 147면
- 【분류】사법(司法) / 가족(家族) / 인사(人事) / 변란(變亂) / 풍속-예속(禮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