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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47권, 정조 21년 8월 17일 계축 1번째기사 1797년 청 가경(嘉慶) 2년

안산 행궁을 출발하여 현륭원에서 작헌례를 행하고 수원 행궁에서 머물다

하교하기를,

"정안 옹주(貞安翁主)정정 옹주(貞正翁主)는 모두 장릉(章陵)164) 의 동기(同氣)인데, 정안 옹주금양위(錦陽尉)와, 정정 옹주진안위(晋安尉)와 합장하였다. 본릉(本陵)을 참배하고 또 이곳을 지나가는 일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내시를 보내어 치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교하기를,

"승평 부원군(昇平府院君) 김류(金瑬)인조 대왕을 옹립한 공과 경국제세(經國濟世)의 계책으로 성대히 중흥의 명신이 되었다. 듣건대 그 묘소가 이 고을에 있다 하니, 승지를 보내어 치제하도록 하라.

자신이 폐부(肺腑)와 같은 지친(至親)의 처지에 있으면서 성조(聖祖)165) 의 즉위 초 청명(淸明)한 치화(治化)를 주밀히 도와 걸출하게 국가의 주석(柱石)이 되었으니, 서평 부원군(西平府院君) 한준겸(韓浚謙)회산 부부인(檜山府夫人) 황씨(黃氏)의 묘소에 승지를 보내어 치제하도록 하라.

우리 나라에 본디 현명한 국구(國舅)가 많으나, 문장과 공업(功業)의 성대함으로는 신풍 부원군(新豊府院君)만한 이가 없다. 숭릉(崇陵)166) 어필(御筆) 신도비(神道碑)의 성대한 유적을 추모하니 배나 슬픈 생각이 든다. 고 부원군 장유(張維)영가 부부인(永嘉府夫人) 김씨(金氏)의 묘소에 승지를 보내어 치제하도록 하라. 그리고 고 판서 장선징(張善澂)에게도 똑같이 치유(致侑)하도록 하라."

하였다. 안산 행궁에서 출발하면서 사관(史官)을 보내어 우의정 이병모에게 유시(諭示)하기를,

"비록 국가의 체통으로 처분하였으나, 경의 본정은 고심(苦心)에서 나온 것이기에 전지(傳旨)를 특령으로 환수(還收)한다. 이제 바야흐로 원소(園所)167) 로 나아가니, 경은 들어와서 반열에 참여하라."

하였다. 어가가 수원(水原) 관문 밖 5리 지점에 이르러 길가의 부로(父老)를 불러 고통을 물어보니, 모두 묵은 환곡이 폐해가 된다고 말하였다. 상이 승지에게 명하여 위유(慰諭)하게 하기를,

"조정에서 알아서 선처할 것이니 각각 믿고서 생업에 편안히 종사하라."

하였다. 낮에 수원 구포(鷗浦)에서 쉬면서 친히 지은 제문(祭文)을 내리며 이르기를,

"용백사(龍柏祠)는 곧 제갈 무후(諸葛武侯)168)호 문정(胡文定)169) 을 주향(主享)하여 배식(配食)하는 곳인데, 충간공(忠簡公) 윤계(尹棨)가 이곳에서 살신성인(殺身成仁)했기 때문에 종향(從享)하고 있다. 시대는 달라도 의리는 똑같아 사람으로 하여금 감회를 자아내게 한다. 지방관은 【용백사는 남양(南陽) 지방에 있는데 구포(鷗浦)와 접경하고 있다.】 이미 승지를 지냈으니, 이 제문을 가지고 가서 읽고 제사를 지내도록 하라."

하고, 또 하교하기를,

"고 영의정 홍언필(洪彦弼)은 본디 사류(士類)로서 한 세상의 명신이 되었고, 그 아들 영의정 홍섬(洪暹)은 정직한 도와 아담한 인망으로 또 정승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그 대부인(大夫人)이 건강한 몸으로 장수하였으므로 ‘공손히 정경 대부인의 복록을 생각하니, 천상은 알기 어렵거니와 인간 세상에선 듣지 못했네. 순일(純一)한 덕으로 삼종지도(三從之道) 행했는데 그 모두 영상 자리 올랐고, 94살 향수하니 수성(壽星) 또한 높도다.’라는 시구가 시인의 가영(歌詠)에 들어가기까지 하여 오늘날까지 전송(傳誦)되고 있다. 두 대신의 묘소에 승지를 보내어 치제하도록 하라.

아담한 지조는 오늘날 흔히 얻기가 쉽지 않다. 고 좌의정 이복원(李福源)의 묘소에 그 아들 내각 직제학(內閣直提學) 이만수(李晩秀)를 보내어 치제하도록 하라."

하였다. 또 내시를 보내어 신빈(愼嬪)170) 의 묘소에 치제하도록 하였다. 어가가 수원 신음천(新音川)에 이르러 잠시 쉬고 화소(火巢)의 경계를 경유하여 옛 서문로(西門路)를 따라 현륭원(顯隆園)에 이르러 작헌례(酌獻禮)를 행하였다. 도승지 조진관(趙鎭寬)이 향로를 받들어야 하는데 오지 않자 집례(執禮) 이기양(李基讓)을 동부승지로 특별히 제수하여 향로를 받들게 하고 원상(園上)에 나아가서 봉심(奉審)하였다. 소차(小次)171) 에 나아가서 각신(閣臣)·승지·사관(史官)에게 밥을 내렸다. 저녁에 수원 행궁에 머물렀다.


  • 【태백산사고본】 47책 47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39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인사(人事) / 외교(外交) / 인물(人物)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과학-지학(地學) / 풍속-예속(禮俗)

  • [註 164]
    장릉(章陵) : 원종(元宗)의 능 곧 원종을 가리킴.
  • [註 165]
    성조(聖祖) : 인조를 말함.
  • [註 166]
    숭릉(崇陵) : 현종의 능 곧 현종.
  • [註 167]
    원소(園所) : 장조(莊祖)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을 말함.
  • [註 168]
    제갈 무후(諸葛武侯) : 무후(武侯)는 촉한(蜀漢) 제갈양(諸葛亮)의 시호.
  • [註 169]
    호 문정(胡文定) : 문정(文定)은 송(宋)나라 호안국(胡安國)의 시호.
  • [註 170]
    신빈(愼嬪) : 세종의 후궁 신빈 김씨(愼嬪金氏).
  • [註 171]
    소차(小次) : 잠시 머무는 곳.

○癸丑/敎曰: "貞安翁主貞正翁主, 俱是章陵同氣, 貞安錦陽, 貞正晋安同岡。 展謁本陵, 又過此地, 事若不偶。 遣內侍致祭。" 又敎曰: "昇平府院君 金瑬, 攀附之功, 經濟之策, 蔚然爲中興名臣。 聞其墓在是邑云, 遣承旨致祭。 身居肺腑之親, 密贊聖祖一初淸明之化, 傑然爲國柱石, 西平府院君 韓浚謙檜山府夫人 黃氏墓, 遣承旨致祭。 我朝固多賢國舅, 而文章功業之盛, 未有如新豐。 追惟崇陵御筆神道之盛蹟, 一倍愴想。 故府院君張維永嘉府夫人 金氏墓, 遣承旨致祭。 故判書張善澂, 一體侑之。" 自安山行宮進發, 遣史官, 諭右議政李秉模曰: "雖以國體處分, 卿之本情, 出於苦心, 傳旨特令還收。 今方進詣園所, 卿其入來參班。" 駕到官門外五里, 召路傍父老, 詢問疾苦, 皆言舊還爲弊。 上, 命承旨慰諭曰: "朝家自當善處, 其各恃而安業。" 晝停于水原 鷗浦, 下親撰祭文曰: "龍柏祠, 卽諸葛武侯胡文定主亨配食之所, 而忠簡公 尹棨, 以成仁之地, 從與享之。 異代一義, 令人激感。 地方官 【龍栢祠在南陽地, 與鷗浦接界。】 旣經承旨, 持此祭文, 宣讀行祭。" 又敎曰: "故領議政洪彦弼, 自是士類, 爲世名臣, 其子領議政洪暹, 以直道雅望, 又躋台司。 而其大夫人尙康旺, ‘恭惟貞敬大夫人, 天上難知世未聞。 一德從三上台峻, 百年除六壽星尊’ 之句, 至入詩人之詠, 尙今傳誦。 兩大臣墓, 遣承旨致祭。 雅操今日未易多得。 故左議政李福源墓, 遣其子內閣直提學李晩秀致祭。" 又命遣內侍致祭于愼嬪墓。 駕到水原 新音川少憩, 由火巢界, 取古西門路, 至顯隆園, 行酌獻禮。 都承旨趙鎭寬, 當奉爐而未至, 特除執禮李基讓同副承旨, 奉爐, 詣園上奉審。 出御小次, 宣飯于閣臣、承、史。 夕次水原行宮。


  • 【태백산사고본】 47책 47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47책 39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인사(人事) / 외교(外交) / 인물(人物)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과학-지학(地學) / 풍속-예속(禮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