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두 이규남 등을 불러 3현을 동시에 배향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하다
소두(疏頭) 이규남 등을 불러보고 이르기를,
"김문정의 도학(道學)의 진정함과 독실함은 내가 평소 높여 숭상하던 바로서, 그 실행을 먼저 하고 앎을 뒤로 하는 것과 안은 곧게 하고 밖은 반듯하게 했던 공으로 말한다면 실로 우리 동방의 첫번째 사람이니, 문장이나 절의는 오히려 그 다음 일에 속한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대신들을 면대했을 때 이미 언급한 바가 있었다. 대체로 스승이 있는 바에 도가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군사(君師)의 지위에 처해 있으니 스승과 도에 대한 책임이 실로 나에게 있다. 사문(斯文)을 천명하고 세교(世敎)를 부식하는 것에 대해 일찍이 깨우쳐 주고 교도함에 부지런히 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습속이 점점 어그러지고 선비들의 기풍이 옛스럽지 못하여 크게 변화되어 도를 따르는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개탄스럽지 않겠는가. 내가 원하는 바는 공자를 배우는 것이다. 돌아보건대 지금 도를 닦고 가르침을 세우는 방도로서 덕을 높이고 유교를 숭상하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으니, 문정이 종향하기에 진실로 합당하다는 것을 어찌 그대들의 말을 듣고서야 알았겠는가.
지난번의 비답과 오늘의 상소한 말에 딱 들어맞는 바가 있으니 진실로 가상하다. 지난번 유생들의 상소에 처음에는 두 선정만을 거론하였다가 비답을 받들고 나서야 비로소 문정을 첨가해 넣어 마치 지시를 받아 그렇게 하는 것처럼 하였다. 이 이후로 한 번 상소하고 두 번 상소함에 베껴서 전달한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 성실치 못함이 무엇이 이보다 더 심하겠는가. 끝에 가서야 김무순(金懋淳)이 상소하여 문정만을 거론하였는데 상소의 말이 엉성하고 문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다만 선정에게 수치를 끼치고 사림에게 부끄러움을 더할 뿐이었다. 그후 유생의 상소에 대하여 단지 ‘물러나 학업이나 닦으라.’는 말로 비답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 선비들에게 부끄러움이 아닐 수 있겠는가. 그대들의 상소는 과연 뭇사람들을 따라 구차히 동조하지 않았고 문장 또한 잘 되었으니, 배양한 바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해도 되겠다.
아조(我朝)의 유현과 도학의 성대함에 있어서는 먼저 오현(五賢)을 칭하는데, 종향의 논의에 있어서는 이문성(李文成)이 조문정(趙文正)과 이문순(李文純)을 놓고 진실로 올려 배향하기에 합당하다고 하였으나 삼현(三賢)에 대해서는 서로 평가가 어긋나는 논의가 없지 않았다. 비록 아래에 있는 문성으로서도 오히려 이와 같이 말했는데 더구나 지금 사문의 대일통(大一統)의 도가 나 한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어찌 종향하는 중요한 전례에 대하여 참작하여 재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두 선정에 대하여 진실로 높여 숭상하는 바가 있으나 문경 부자를 아울러 배향하는 것은 전례에 있어서도 상고할 데가 없다. 뿐만 아니라 성무(聖廡)와 사원(祠院)은 체제가 자연 다른 것이니, 파산 서원(坡山書院)의 아울러 배향한 예는 끌어다 의거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정중히 하고 어렵게 여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665면
- 【분류】정론(政論) / 사상(思想)
○召見疏頭李奎南等, 謂曰: "金文靖道學之眞正篤實, 予之素所尊尙。 若言其先行後知, 直內方外之工, 則實爲我東第一人, 而文章也、節義也, 猶屬第二件事。 向對大臣, 已有所言及。 大抵師之所在, 道之所存, 今予處君師之位, 師道之責, 實在於予。 闡明斯文, 扶植世敎, 未嘗不孶孶於牖迷敎導之功, 而俗習漸乖, 士風不古, 未見有丕變率敎之效, 豈不慨然乎? 予之所願, 學孔子也。 顧今修道立敎之方, 莫先於尊德崇儒, 而至於文靖之允合從享, 豈待爾等之言而知之乎? 向日批答, 與今日疏語, 有(沕)〔吻〕 然相合者, 良用嘉尙。 前者儒疏, 初則擧兩先正, 及其承批, 而始乃添入文靖, 有若指敎而爲之者然。 自是之後, 一疏再疏, 無異謄傳, 其爲不誠, 孰甚於此? 末乃有金懋淳之疏, 單擧文靖, 而疏語草草, 文不成說, 適足以貽羞先正, 增恥士林矣。 其後儒疏, 只以退修學業四字賜批者, 得非多士之愧乎? 爾疏, 則果非隨衆苟同, 文亦善成, 雖謂之不負培養可也。 我朝儒賢道學之盛, 先稱五賢, 而至若從享之論, 李文成, 以趙文正、李文純, 謂之允合躋配, 而於三賢, 則不無參差之論。 雖以在下之文成, 猶且如是爲說, 況今斯文大一統之道, 在予一人, 則豈不斟酌裁量於從享重典乎? 予於兩先正, 固所尊尙, 而文敬之父子竝侑, 非但於典無稽。 聖廡與祠院, 體段自異, 如坡山書院竝享之例, 不可引據。 予所以鄭重難愼者此也。"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46책 665면
- 【분류】정론(政論) / 사상(思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