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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40권, 정조 18년 7월 21일 병오 6번째기사 1794년 청 건륭(乾隆) 59년

구언에 응답한 비변사의 상소문

비변사가 아뢰기를,

"우리 전하는 10여 일을 조섭하는 가운데 달포가 넘는 모진 가물의 재변을 만나 걱정스러운 생각이 밤낮으로 안정되지 않아 폐백으로 여러 곳에 기우제를 지내며 하늘을 공경하는 정성을 더욱 도탑게 하고 수라상에는 특별히 반찬 수를 감하며 계속 덕을 닦고 자기를 반성하는 전교를 내렸습니다.

이 때문에 병세가 악화되었으나 진찰하는 자리도 규례를 갖추지 않으시고 재해를 막는 계책을 묘당에까지 물으시니 신들은 머리를 모아 받들어 읽고 감격하였습니다. 하찮은 사람에게도 물으라는 교서가 내림에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어 삼가 몇 가지의 조항을 가지고 우러러 아룁니다.

첫째는 명분과 의리를 내세우는 일입니다.

근래 명분과 의리가 완전히 없어짐에 따라 흉악한 역적들이 횡행하고 있으니 삼강(三綱)은 무너지고 구법(九法)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가 어떻게 나라 구실을 하며 사람이 어떻게 사람 구실을 하겠습니까. 이렇게 풍속이 잘못 굴러 수습할 수 없게 된 마당에 전하께서 명분과 의리를 부각시켜 온 세상 사람들을 연마시킨다 해도 오히려 갑자기 바른 풍속으로 돌이키기가 어려울 터인데 도리어 역적을 토벌하는 데 관계된 말이면 꺾어버리고 입을 다물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점점 기개를 위축시키고 사라지게 하며 실오라기 같이 겨우 끊어지지는 않는 의리를 더욱더 어두워지게 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말을 해야 할 것인데도 말을 하지 않아 처음에는 부끄러움이 있는 듯하였으나 죄를 면하여 구차하게 용납되기만 하면 끝에는 편안하여 일이 없는 사람처럼 됩니다. 거기서 흐르는 폐단은 심지어 염치를 내어버리고 의리를 팽개쳐 세상에 명분과 의리란 말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풍속은 박해져서 날로 더욱 심하고 조정의 관료들은 우유부단한 데 빠져 더럽고 속된 일만을 숭상하며 학교에서는 방종을 즐기고 단속하는 일을 천하게 여깁니다. 전하께서는 비록 궐 안에서 염려하고 계시겠지만 퇴폐 풍조는 바람 앞에 풀이 쓰러지듯 진작시키지 못하니 눈앞의 가장 걱정스럽고 급한 일로 이보다 더한 것은 없습니다.

만일 바로잡아 구제할 방도를 논한다면 숨김없이 바른 말을 하게 문을 열고 절의를 숭상하는 사람을 등용하는 데 있으니, 그 말이 명분과 의리에 관계된다면 혹 과격할지라도 반드시 용서하여 용납하고 그 자취가 비위나 맞추는 데로 돌아가면 혹 미봉한 것이라도 시비를 밝게 분변하여 통렬히 배척해서 곧은 사람을 맞아주고 굽은 사람을 버려 착한 사람을 좋아하고 악한 사람을 싫어함을 분명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착한 일을 권하고 악한 일을 징계하는 방법을 알 것이며 세상에는 못된 버릇이 없어져서 명분과 의리의 장려함을 기다리지 않고도 세상 인심은 저절로 크게 변할 것입니다.

둘째는 기강을 진작시키고 가다듬는 일입니다.

근래에는 기강이 해이해져서 마루와 섬돌의 한계가 엄격하지 못합니다. 정식 경연에서도 엄숙하고 공경스러운 행동을 볼 수 없고 동료 관리들 사이에도 잡스러운 일이 많으니 이것이 한심합니다. 옷의 문양과 색깔은 귀천을 표시하는 것인데 참람하고 분수에 넘어도 절제가 없으며 명분은 상하를 구별하는 것인데 등급이 무너짐이 날로 심해집니다.

법이란 지키기를 엄히 하여야 하는 것인데 법을 맡은 유사들도 예사롭게 버리며, 삼상·육경[槐棘]은 관리 중에 중요한 위치인데도 일반 관리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멸시하며, 조정은 사방의 표준이 되는데도 조정에서 보낸 감사를 수령들이 무시하고 아전들은 수령을 마구 침범합니다. 사대부들은 일반 백성들의 모범인데도 천민들이 양반을 헐뜯고 욕하며 젊은 사람들이 어른이나 노인을 경멸하는 일까지 있습니다. 전후에 경계시킨 전교는 지극히 간곡하였는데도 처음에는 두려워하고 삼가는 듯하다가 끝에 가서는 머뭇거리면서 구습을 버리지 않으니 품계에 따른 위엄은 날로 저하되고 금지령은 날로 해이해지니 이것이 어찌 나라의 소소한 근심이겠습니까.

오늘날 이렇게 된 이유를 논하면 신들이 바르게 통솔하지 못한 죄에서 온 것입니다. 이제부터 특별히 서울과 지방의 법을 맡은 관리를 단속시켜서 이와 같이 분수를 모르고 범절을 무시하는 풍습과 임금의 명령이나 금지령을 어기는 사람들은 발견 즉시 엄하게 다스리고 동요 없이 법을 지켜서 온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깨우쳐 조심하고 두려워할 줄을 알게 하여 감히 나라의 법도를 벗어나거나 어기게 하지 않으면 기강이 잡히고 가다듬어지기를 기약하지 않더라도 나쁜 폐단은 저절로 엄히 고쳐질 것입니다.

셋째는 염치를 장려하고 탐욕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근래에 청렴을 권장하고 탐욕을 징계함이 없어서 백성들이 날로 곤궁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오늘날 감사나 수사 또는 수령이 된 자는 얼핏 외면으로 보기에는 큰 불법적인 행동이나 잘못은 없는 듯하지만 그 실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나라의 곡식을 유용하여 묘한 계책을 만들어서 모아들이는 못된 짓을 마음대로 암암리에 행하며 큰 도의 수령들은 체직된 뒤에도 국가의 채무는 남겨두고 있지만 잔약한 군이나 현에서는 규정 이외의 조세를 마구 거두어들이는 일이 많습니다.

좋은 토지를 많이 점령한 자는 재주가 있다고 하여 해마다 벼슬이 제수되거나 좋은 자리로 옮기나, 벼슬한 자로서 청렴하여 주머니가 씻은 듯이 깨끗한 사람은 무능하다고 비난하고 끝내 배척하여 다시 등용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탐욕을 징계하는 법은 엄하지만 요행으로 벗어나는 일이 많고 염치를 장려하는 전교는 부지런히 내리지만 선발됨은 더디게 되어 암행 어사들의 조사는 한결같이 실상이 없으며 가난한 백성들의 원성은 구중 궁궐에까지 전해지기 어려우니 이러고서 사람들이 어찌 법을 두려워하겠으며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만일 이것을 바로잡는 방도를 논한다면 염치를 권장하고 탐욕을 징계하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으니 이후에는 감사나 수사·수령들을 막론하고 탐오의 자취가 나타나는 자가 있으면 조금도 용서하지 말고 아 대부(阿大夫)를 삶아 죽이는 법을 시행할 것이며 청렴한 사람에게는 전에 내린 명령에 의하여 물어서 찾아가 특별히 장려하고 등용하면 청렴하고 탐욕스러운 일은 장려나 징계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백성들은 저절로 편안히 살게 될 것입니다.

넷째는 옥사를 다스리고 형벌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근래에 옥사에 대한 심리를 여러 번 행하여 억울하고 잘못된 판결이 없는 것 같지만 중대한 옥사와 신문고를 두드린 것 외에 어찌 죄수들의 판결에 잘못되고 지체되는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형옥을 관대하게 처리하라는 명령은 비록 지극한 은혜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서울과 지방에서 거기에 부응하여 실시하는 데는 그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번 죄수들의 문안이 작성되면 다시는 따져보지도 않기 때문에 함께 모여 심리한다는 일은 한갖 형식적인 문서로 돌아가고 간추린 내용의 요긴한 말은 옥사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의혹됨이 많아 의논하는 마당에 혹 그 실정과 맞지 않는 일도 있으니 이것이 어찌 법을 맡은 신하들이 옥사를 취급하는 체통이겠습니까. 심지어 개인적인 유감을 품고 분풀이를 자행하여 지나치게 매를 때려 목숨을 잃게 하는 자도 있으며 죄명을 억지로 씌워 거짓으로 감사에게 보고하여 끝내는 범죄의 자취를 날조하려고 꾀하는 자도 있으니 이같이 하고서야 함부로 죽인 자에 대한 법령을 어느 곳에 시행하며 억울한 내용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뜻을 펼 수 있겠습니까.

만일 이것을 바로잡는 방도를 논한다면 심리를 공정하게 하는 것을 먼저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중앙의 형조와 지방의 여러 도에 특별히 엄하게 경계시켜 전날의 투식을 답습하지 말고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지 말며 문안은 상세히 갖추어 실정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스러운 바가 없게 하여야 합니다. 형장을 치는 데 대하여는 그 범죄를 잘 헤아려서 감히 법을 어기거나 넘치게 하는 일이 없으면 형벌이나 옥사는 자연 공정하게 다스려질 것이며 죄수들은 자연 원망을 품게 되는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다섯째는 벼슬자리를 신중히 하고 아끼는 일입니다.

근래에 벼슬을 외람되게 마구 주기 때문에 인사 행정에서 추천하는 일이 혼잡하게 되었습니다. 문무 관리의 추천과 선발에 있어서는 이미 과거 시험에 합격한 첫 단계부터 무너지고 이조와 병조의 추천은 6품에 오른 뒤에까지도 외람되게 하고 있으므로 벼슬을 주는 자도 스스로 어려움이 없고 받는 자도 영광으로 여기지 않으며, 심지어 뇌물을 바치는 수령이 계속 이어지며 무과 급제자나 잡과로 벼슬에 오른 자들을 임기가 차면 문득 자리를 옮겨주니 인사 행정의 문란함이 여기에 이르러 더욱 할 말이 없습니다.

만일 바로잡는 방도를 논한다면 인재의 선발을 신중히 하고 잡스러운 벼슬자리는 도태시키는 것보다 좋은 방도가 없습니다. 이조와 병조의 신료들을 엄히 경계시켜 속히 올바른 인사 행정을 행하소서. 그러므로 후보자를 추천하는 벼슬에 대하여는 한결같이 공론을 따르고 사정을 쓰게 하지 말며 잡과로 벼슬에 오른 사람은 임기가 차더라도 절대로 제멋대로 옮겨가지 말게 하고 벼슬자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적발하여 도태시키면 벼슬자리를 아끼거나 신중을 기하지 않더라도 벼슬길은 절로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런 한재(旱災)를 만나 덕을 닦고 두려워하는 날에 몇 가지의 하찮은 조항은 높고 낮은 관리들이 서로 덕을 함양하는 방도가 되기는 부족하지만 만일 성실한 마음을 가지고 실속 있는 정사를 시행하여 백성과 나라에 유익함이 있게 한다면 혹 재변을 돌려 상서로운 일이 되게 하는 데 한 가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서울과 지방의 여러 신하에게 엄하게 경계시켜 착실하게 거행하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병중에 가슴이 답답하고 갈증이 심하였지만 저녁 내내 눈이 빠지도록 앉아 기다린 것은 이 초기(草記) 한 장이었으니 앞으로 목과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청량산(淸凉散)으로 삼으려고 한다. 진술한 다섯 가지 조항을 보니 평범한 말 같지만 역시 일리가 있다. 빈 말만 써 놓은 것보다는 모든 행사에서 절실함이 잘 나타나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매우 부덕하여 다섯 가지 조항을 잘 닦아 처리하지 못하였고 전날에도 그런 일이 많아 오늘날의 한재를 초래하였다. 경들이 나를 멀리하지도 않고 낮추어 보지도 않으며 깨우쳐주고 이끌어주어 나로 하여금 그 허물과 부족한 점을 깨닫게 한 것은 바로 이 다섯 가지 조항에 이같이 하면 병이 되고 이같이 하지 않으면 약이 되는 요점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올린 말이 과연 합당하여 혹 몸을 기울여 덕을 닦고 행하는 데 도움이 되겠는가. 묻지 않았다면 모르겠거니와 이미 물었는데 다만 규정에 따라 비답만 주고 말면 이것을 과연 성의가 있는 처사라고 하겠는가. 바라건대 다섯 가지의 조목을 자기고 오늘 이전에 잘 수행하지 못한 이유와 오늘 이후에는 잘 수행할 방도를 다시 경들에게 물으니 경들은 차자나 상소를 올려 나를 위하여 말을 해 달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0책 40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486면
  • 【분류】
    정론(政論)

    ○備邊司啓曰: "我聖上乃於浹旬靜攝之中, 値此跨月亢旱之災, 憧憧一念, 夙宵兢惕。 圭璧遍擧, 益篤對越之誠; 常膳特減, 連下修省之敎。 症候由是越添, 而診筵亦不備例, 消弭之策, 詢及廟堂。 臣等聚首奉讀, 不勝感激, 詢芻之下, 不敢泯默, 謹以數條仰陳。 一曰扶植名義。 近因名義之掃地, 以致凶逆之陷天, 三綱隳矣, 九法斁矣, 國何以爲國, 人何以爲人乎? 以此風氣之駸駸然莫可收拾, 殿下雖扶之植之, 砥礪一世, 尙患其猝難轉回。 乃反言涉懲討, 則必摧折之, 箝制之, 使此氣節之漸就委靡者, 益復消磨, 義理之不絶如綫者, 益復堙晦。 當言而不言, 則始焉若有羞愧, 免罪而苟容, 則末乃恬然無事。 其流之弊, 甚至於倣倒廉隅, 弁髦義理, 不識世間有名義二字。 習俗澆漓, 日甚一日, 朝著之上, 沒模稜而尙鄙俚, 庠序之間, 樂放縱而賤拘檢。 聖念縱勤於中朝, 頹風莫振於尙草, 目下之最可憂、最急務, 莫過於此。 若論矯救之道, 則惟在於廣開不諱之門, 奬用尙節之人。 如其言之涉於名義, 則雖或過激, 必假借而優容; 如其跡之歸於容悅, 則雖或彌縫, 必明卞而痛斥。 存直措枉, 昭示好惡, 則人知勸懲之方, 世無骫骳之習, 名義不期扶植, 而世道自底丕變矣。 二曰振勵紀綱。 近因紀綱之解紐, 以致堂陛之不嚴, 法筵之上, 未見肅敬之儀, 班聯之間, 率多雜沓之事, 此已寒心矣。 文章所以表貴賤, 而衣服之僭踰無節; 名分所以別上下, 而等級之隳乖日甚。 金石、關和之嚴, 而有司無難廢格; 槐棘、卿月之重, 而庶僚容易侵侮。 朝廷爲四方之標準, 則守宰之凌踏方伯, 胥屬之侵犯長吏者有之矣; 士夫爲下民之模範, 則常賤之詬罵班族, 幼少之慢蔑長老者有之矣。 前後飭敎, 不啻諄複, 而初若惕勵, 終又因循, 等威以之而日卑, 法禁以之而日弛, 此豈國家之細憂也哉? 若論今日之致此, 則莫非臣等不能董率之罪。 繼自今, 另飭京外掌法之臣, 似此蔑分凌節之習, 違令冒禁之類, 隨現痛繩, 守法不撓, 俾一世之人, 皆知警畏, 不敢踰越典章, 則紀綱不期振勵, 而流弊自底痛革矣。 三曰奬廉懲貪。 近因廉貪之無所勸懲, 以致民生之日就困悴。 凡今日處營閫而爲守宰者, 驟觀外面, 雖無大不法、大無良, 細考其實, 未必皆然。 攛挪公穀, 便成妙計; 掊剋毒手, 恣行暗地。 雄藩腴閫, 尙留歸後之公債; 薄郡殘縣, 率多科外之徵歛。 良田之廣占者, 謂之有才, 而乃反年除歲遷; 宦橐之如洗者, 譏其無能, 而終歸一斥不復。 懲貪之典雖嚴, 而倖免居多; 奬廉之敎雖勤, 而掄選尙稽。 繡斧之按廉, 一例無實; 蔀屋之怨咨, 九重難徹。 如是而人何以畏法, 民何以聊生乎? 若論矯捄之道, 則莫如勸懲之爲先。 此後毋論營閫守宰, 如有貪墨之現發者, 不少饒貸, 快施烹之典, 至於廉白之人, 則依前成命, 亟加採訪, 別般奬用, 則廉貪不期勸懲, 而民生自底安堵矣。 四曰理獄請刑。 近因審理之屢行, 宜無冤枉之可言, 而重獄登聞之外, 豈無他囚之瘐滯者乎? 恤刑之絲綸, 雖出至恩, 京外之對揚, 未盡其道。 一番成案, 不復閱實, 而會推徒歸於文具。 單抄要語, 獄理多眩, 而議讞或失其情節, 是豈掌法之臣按獄之體乎? 至於挾私逞憤、濫杖傷命者, 勒構罪名, 瞞報道臣, 以爲畢竟掩迹之計者, 間或有之。 如是而濫殺之律, 將何所施, 抱冤之類, 何以得伸乎? 若論矯捄之道, 則莫如淸理之爲先。 內而秋曹, 外而諸道, 另加嚴飭, 毋泥前套, 毋主己見, 文案務從詳備, 情實無少疑晦, 刑杖量其罪犯, 典則無敢違越, 則刑獄不期淸理, 而罪囚自無幽冤之弊矣。 五曰愼惜名器。 近因名器之褻越, 以致政注之淆雜。 文武薦選, 已壞於登第之初; 兩銓通擬, 又濫於陞六之後。 與者本自無難, 受者不以爲榮, 而至於納粟勸分之佩符相續, 武魁雜岐之報瓜輒移, 官方之紊亂, 到此而尤無可言。 若論矯捄之道, 則莫如愼遴選而汰冗雜。 嚴飭兩銓之臣, 亟行激揚之政。 凡係通擬之職, 一遵公議, 毋敢容私, 雜岐滿瓜, 切勿擅移, 在職不勝, 摘發刊汰, 則名器不期愼惜, 而仕路自底澄淸矣。 當此遇災恐懼之日, 數條陳腐, 不足爲上下交修之道, 而若能以實心行實政, 俾有益於民國, 則亦或爲轉災爲祥之一助。 請嚴飭京外諸臣, 使之着實擧行。" 敎曰: "病中煩渴忒甚, 竟夕坐, 待望眼欲穿者, 此草記一張, 將爲爽喉沃肺之淸涼散。 及見所陳五條, 雖似常談, 亦自有理。 然載之空言, 不若見諸行事之深切著明。 予甚否德, 五條之不能修明, 昔非不足, 致有今日之旱災, 則卿等之不遐予、不卑我, 提警撕察, 俾予自覺其愆尤闕遺者, 政在於右五條。 如是爲病, 不如是爲藥之肯綮, 而今其爲說, 能不爲無當, 而抑或有裨於側身修行乎? 不問則已, 旣問之, 只賜例批而止, 是誠誠乎否乎? 願以五條, 今日以前不能修明之由, 今日以後何以修明之方, 更問於卿等。 卿等須以若箚若疏, 爲予極言之。"


    • 【태백산사고본】 40책 40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486면
    • 【분류】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