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 27권, 정조 13년 윤5월 11일 병신 1번째기사
1789년 청 건륭(乾隆) 54년
우의정 채제공이 내성군 정기원의 증시와 이기에 대한 은전을 청하다
차대하였다. 우의정 채제공이 아뢰기를,
"내성군(萊城君) 정기원(鄭期遠)이 임진란 초기에 명나라 조정에 울면서 호소한 공로가 실로 많습니다. 명나라 장수 양원(楊元)과 함께 남원(南原)을 지키다가 성이 함락되자 양원은 도망하였으나 기원은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선조(宣祖)께서 이미 증작(贈爵)을 명하시고 또 정려(旌閭)를 명하셨으며, 또 남원사(南原祠)에 모셔지고,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도 실렸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들이 시골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시호가 내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고 판서 이기(李墍)도 선조(宣祖) 때의 명신으로 임진·계사년 사이에 나라를 위해 공로를 세워 벼슬이 이조 판서에 이르렀는데, 자신을 단속함이 청렴하고 엄숙하여 청백리(淸白吏) 선발에도 들었습니다. 이 사람에게도 절혜(節惠)의 은전을 내리는 것이 합당합니다."
하니, 모두에게 시호를 주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27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46책 37면
- 【분류】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