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랑 전극항의 마을에 정문을 세우라고 명하다
고 정랑 전극항(全克恒)의 마을에 정문을 세우라고 명하였다. 상주의 유생 전시옥(全始玉)이 반교에서 임금을 뵈일 때에 그의 선조 전극항이 국난에 순절한 일을 아뢰자, 동성균(同成均) 서유린(徐有隣)에게 조사하여 아뢰라고 명하였다. 서유린이 아뢰기를,
"그의 행록(行錄)을 가져다 상고해 보니, 전극항은 인조갑자년013) 에 과거에 합격하여 예문관 검열을 거쳤습니다. 병자 호란에 그의 아버지 증(贈) 좌의정(左議政) 전식(全湜)은 전 부제학으로 시골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전극항은 예조 정랑으로 어가를 수행하여 남한 산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때 유사(留司)의 명을 내렸으므로 사람마다 위험하게 여겼으나, 전극항은 어가를 재촉하여 나가게 하고 성안에 수십여 일을 머물러 있었는데, 적이 다시 크게 도발하는 바람에 전극항이 드디어 죽었습니다. 난리가 안정된 뒤에 특별히 그에게 도승지를 증직하였습니다. 그 뒤에 온 고을의 선비들이 누차 도백과 어사에게 호소하여 정문의 은전을 시행해 줄 것을 청하였는데, 아직 장계를 올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이 과연 이러하다면 나라를 위해 순절한 충성은 흠모할 만합니다만, 그의 자손이 말한 것을 가지고 경솔하게 시행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도백으로 하여금 사실을 탐문하여 보고하게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이미 포상의 증직이 있었으니, 사실을 탐문할 필요가 없다. 특별히 정문을 세우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552면
- 【분류】윤리-강상(綱常) / 군사(軍事) / 인사(人事)
- [註 013]갑자년 : 1624 인조 2년.
○命旌故正郞全克恒之閭。 尙州儒生全始玉, 於泮橋進見也, 以其先祖克恒死難事陳之。 命同成均徐有隣査奏。 有隣啓言: "取考其行錄, 則克恒以仁廟甲子登科, 歷藝文館檢閱。 丙子亂, 其父贈左議政湜, 以前副學, 在鄕倡義。 克恒以禮曹正郞, 扈駕入南漢。 時有留司之命, 人皆危之, 克恒趣駕而出, 留城中數十日, 賊復大肆搶掠, 克恒遂死之。 亂定後, 特贈都承旨。 伊後一鄕多士, 屢訴於道臣及御史, 請施(棹)〔綽〕 楔之典, 而姑不狀聞云。 事實果如此, 則爲國殉忠, 有足欽歎, 而不可以其子孫之言, 輕易許施。 請令道臣, 採訪登聞。" 批曰: "旣有褒贈, 不必採訪。 特爲旌閭。"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552면
- 【분류】윤리-강상(綱常) / 군사(軍事) / 인사(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