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통편》을 반포하다
《대전통편(大典通編)》이 이루어졌으니, 국조(國朝)의 전장 제도(典章制度)에 관한 책이다. 태조(太祖)가 처음으로 법제(法制)를 마련할 적에 원전(原典)과 속전(續典) 두 가지가 있었다. 세종(世宗)께서 이 두 법전(法典)을 모방하여 《경제육전(經濟六典)》을 저술하였고, 세조(世祖)께서 최항(崔恒)·김국광(金國光) 등에게 명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을 편찬케 하였는데, 성종조[成廟朝]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으며, 또 이어서 《대전속록(大典續錄)》을 이루었다. 중종조[中廟祖]에 《후속록(後續錄)》이 있었고, 숙종조[肅廟朝]에 《집록통고(輯錄通考)》가 있었으며, 영조[英宗]갑자년157) 에 김재로(金在魯) 등에게 명하여 《속대전(續大典)》을 찬술(撰述)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유사(有司)가 말하기를,
"여러 책은 각각 스스로 편(編)을 나누었기 때문에 상고하고 조사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또 전하께서 즉위(卽位) 이후 수교(受敎)로서 법령(法令)이 된 것도 있으니, 마땅히 유별(類別)로 나누어 책을 편찬하여 시행에 편리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속전(續典)》은 갑자년에 이루어졌는데, 선왕(先王)의 교령(敎令)으로서 갑자년 이후의 것도 많으니 어찌 감히 가까운 것만을 내세우고 뒤의 것은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하고, 이에 봉조하(奉朝賀) 김치인(金致仁) 등에게 명하여 원전(原典)과 속전 및 지금까지의 수교(受敎)를 모아 통틀어서 한 책으로 만들고 부문(部門)과 항목(項目)을 나눔은 한결같이 원전에 따랐다. 원·속(原續)과 증·보(增補)를 표시하고 횡간(橫看)을 바꾸어 직행(直行)으로 하니, 증수(增修)된 조목(條目)은 이전(吏典)이 2백 12, 호전(戶典)이 73, 예전(禮典)이 1백 1, 병전(兵典)이 2백 65, 형전(刑典)이 60, 공전(工典)이 12로써 모두 7백 23조이다. 손수 서문(序文)을 지어 첫머리에 기재하고 인하여 교서관(校書館)에 보내어 간인(刊印)하였다. 이 책이 이루어지매 편집(編輯)에 참여한 여러 신하가 전문(箋文)을 갖추어 올리니, 임금이 인정전(仁政殿)에 나가서 몸소 받아서 전국(全國)에 반포하였다. 또 호남(湖南)·영남(嶺南)·관서(關西)의 감영(監營)에 명하여 번각(翻刻)하여 판본(板本)을 간직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539면
- 【분류】사법(司法) / 출판(出版)
- [註 157]갑자년 : 1744 영조 20년.
○《大典通編》成, 國朝掌故之書。 太祖開創, 有《原》、《續》二典。 世宗倣二典, 著《經濟六典》。 世祖命崔恒、金國光等, 編《經國大典》。 至成廟朝乃成, 又踵成《大典續錄》。 中廟朝。 有《後續錄》, 肅廟朝有《輯錄通考》, 英宗甲子, 命金在魯等, 撰《續大典》。 至是有司言: "諸書各自爲編, 艱於考檢。 且御極後, 受敎之著爲令式者, 宜分類編書, 以便施行。" 上曰: "《續典》成於甲子, 先王敎令之後於甲子者尙多, 何敢專於近, 而忽於後乎?" 乃命奉朝賀金致仁等, 取《原續二典》及舊今受敎, 通爲一書, 分門列目, 一遵原典, 而標原續與增補, 改橫看爲直行, 增條吏典二百十二, 戶典七十三, 禮典一百一, 兵典二百六十五, 刑典六十, 工典十二, 凡七百二十三條。 親製引弁之, 因付芸閤刊印。 是書成, 編輯諸臣, 具箋以進。 上御仁政殿, 親受分頒中外。 又命湖南、嶺南、關西營, 翻刻藏板。
-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539면
- 【분류】사법(司法) / 출판(出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