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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12권, 정조 5년 8월 26일 병신 1번째기사 1781년 청 건륭(乾隆) 46년

어진 1본을 규장각에 봉안하기 위해 화사 김홍도 등에게 모사를 명하다

각신(閣臣)을 소견하였다. 하교하기를,

"내가 어진(御眞) 1본(本)을 모사(摹寫)하려 하는데, 이는 장대(張大)시키려는 의도는 아니다. 삼가 선조(先朝) 때를 상고하여 보건대, 매양 10년마다 1본씩 모사하였는데, 이것이 곧 우리 조가(朝家)의 성헌(成憲)이 되어 있다. 지금 나의 이 거조는 실로 선조께서 이미 행한 규례(規例)를 몸받아 오늘날 소술(紹述)하는 뜻을 붙이는 데에서 나온 것이다. 선조께서는 21세 되던 갑오년432) 에 1본을 모사하여 창의궁(彰義宮)에 봉안(奉安)하고 작은 것 1본은 선원전(璿源殿)에 봉안하였으며, 31세 되던 갑진년433) 에 1본을 모사하였는데, 이는 초본(草本)이었다. 40세 되던 계축년434) 에 2본을 모사하여 선원전에 봉안하고 작은 것 1본은 육상궁(毓祥宮)에 봉안하였으며, 51세 되던 갑자년435) 에 2본을 모사하여 1본은 영희전(永禧殿)에 봉안하고 1본을 만녕전(萬寧殿)에 봉안하였으며, 61세 되던 갑술년436) 에 1본을 모사하였는데, 정축년437) 에 비로소 장황(粧䌙)하여 육상궁에 봉안하고 작은 것 1본은 창의궁에 봉안하였다. 71세 되던 계미년438) 에 1본을 모사하여 선원전에 봉안하였고, 계사년439) 에 보령(寶齡)이 80세가 되자 또 1본을 모사하여 선원전에 봉안하고 작은 것 1본은 육상궁에 봉안하였다. 이렇게 반드시 10년을 기간으로 하였다는 것을 역력히 상고할 수 있다. 나는 나이 22세에 명을 받들어 1본을 그렸었으나, 참모습과 어긋나는 것을 면치 못했기 때문에 즉시 세본(洗本)하여 버렸다. 금년부터 시작하여 매양 10년마다 1본씩 모사하여 선조(先朝)께서 어진(御眞)을 모사한 뜻을 몸받도록 하겠다. 도감(都監)을 설치하는 데 이르러서는 이것이 본래 그렇게 하여 온 고례(古例)인데, 선조 계사년 이전에는 도감을 설치한 일이 없었다. 간혹 대신(大臣)과 척신(戚臣)·상방신(尙方臣)에게 명하여 감동(監蕫)하게 하였으니, 여기에서 절약하려 한 성덕(聖德)을 볼 수 있다. 나도 또한 도감을 설치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송(宋)나라의 천장각(天章閣)440) 등에 어제(御製)·어용(御容)을 봉안한 데 대한 글이 있으니, 이번에 그림을 그린 뒤에는 규장각(奎章閣)에다 봉안하면 비용이 덜릴 뿐만이 아니라, 실로 고례(古例)를 원용(援用)하는 것이 된다. 나의 의견은 이러한데, 제신(諸臣)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하니, 정민시(鄭民始) 등이 대답하기를,

"지금의 이 성교(聖敎)는 또한 겸손을 고집하고 폐단을 덜으시려는 성덕(盛德)에서 나온 것입니다만, 사체에 있어 존엄하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자, 임금이 하교하기를,

"나의 뜻은 있는 데가 있으니, 다시 말하지 말라."

하였다. 이어 화사(畵師) 한종유(韓宗裕)·신한평(申漢枰)·김홍도(金弘道)에게 각기 1본씩 모사(摸寫)하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261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예술-미술(美術)

  • [註 432]
    갑오년 : 1714 숙종 40년.
  • [註 433]
    갑진년 : 1724 영조 즉위년.
  • [註 434]
    계축년 : 1733 영조 9년.
  • [註 435]
    갑자년 : 1744 영조 20년.
  • [註 436]
    갑술년 : 1754 영조 30년.
  • [註 437]
    정축년 : 1757 영조 33년.
  • [註 438]
    계미년 : 1763 영조 39년.
  • [註 439]
    계사년 : 1773 영조 49년.
  • [註 440]
    천장각(天章閣) : 송(宋)나라 진종(眞宗)의 장서각(藏書閣)이었는데, 인종(仁宗)이 즉위하자 직학사(直學士)·대제(待制) 등의 관원을 두어 국사(國事)를 의논하게 하였음.

○丙申/召見閣臣。 敎曰: "予欲摹寫御眞一本, 非欲張大也。 謹稽先朝, 每於十年寫一本, 便成我家成憲。 今予此擧, 實出於體先朝已行之規, 寓今日紹述之意也。 先朝二十一歲甲午, 寫一本, 奉安于彰義宮, 小一本奉安于璿源殿。 三十一歲甲辰, 寫一本, 此則草本。 四十歲癸丑, 寫二本, 奉安于璿源殿, 小一本奉安于毓祥宮。 五十一歲甲子, 寫二本, 一本奉安于永禧殿, 一本奉安于萬寧殿。 六十一歲甲戌, 寫一本, 丁丑始粧䌙奉安于毓祥宮, 小一本奉安于彰義宮。 七十歲癸未, 寫一本奉安于璿源殿。 癸巳年寶齡八十又寫一本, 奉安于璿源殿, 小一本奉安于毓祥宮, 必以十年爲期, 歷歷可稽。 予年二十二歲, 承命畫一本, 而未免失眞, 故卽已洗本。 始自今年, 每於十年, 輒寫一本, 庸體先朝寫眞之意, 至於設都監, 自是古例, 而先朝癸巳以前, 無設都監之事。 或命大臣及戚臣、尙方臣監蕫, 此可見節約之聖德。 予亦欲不設都監。 且考有宋天章等閣, 有奉安御製、御容之文, 則今番摸畫後, 奉安於奎章閣, 不但省費, 實爲援古, 予意如此。 諸臣之意何如?" 鄭民始等對言: "今此聖敎, 亦出於執謙省弊之盛德。 而事體不可不尊矣。" 敎曰: "予意有在, 勿復言也。" 仍命畫師韓宗裕申漢枰金弘道, 各摸一本。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261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예술-미술(美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