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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11권, 정조 5년 윤5월 26일 무진 5번째기사 1781년 청 건륭(乾隆) 46년

홍수·가뭄·도적으로 인한 민정의 상황을 보고케 하고 백성들을 구휼케 하다

하교하기를,

"나라의 걱정은 홍수·가뭄의 재앙과 도적의 경계에 있는 것이니, 이는 진실로 백성들의 질고(疾苦) 가운데 가장 극심한 것이어서 위에 아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윗사람이 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니고 감히 정도에 벗어나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도 또한 오로지 여기에 있는 것이니, 좋도다. 이문정(李文靖)314) 의 말은 천고 흥망의 기미를 밝혀 준 것으로 내가 깊이 음미하였다. 그런데 근래에는 기휘(忌諱)하는 것이 풍속을 이루어 유사(有司)가 이런 등등의 일을 등문(登聞)하지 않고 있으니, 어찌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아! 온 나라안 백성들은 모두 나의 적자(赤子)들이지만 도성(都城) 백성들의 안락과 근심 걱정은 관계되는 것이 더욱 중하다. 똑같이 사랑하는 은택에는 멀고 가까운 것이 없지만, 사경(四境)의 다스림은 의당 기보(畿輔)가 우선인 것이다. 가까이 도성 안에서 혹 걱정에 찌든 탄식이 있는데도 내가 이를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면, 이것이 어찌 원후(元后)315) 의 뜻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외방 각 고을에서 무릇 홍수·가뭄과 도둑이 있어서 혹 손상입은 지경에 이르렀을 경우에는 오히려 모두 그 즉시 등문(登聞)되고 있는데, 서울의 한성부의 각부(各部)에 이르러서는 전혀 이런 일이 없으니, 어찌하여 외방에는 있는 법규가 유독 서울 한성부에는 없단 말인가? 아마도 유사(有司)가 잘 수거(修擧)하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모름지기 눈앞의 일을 가지고 말하여 보더라도 장마로 인한 물이 창일하여 도랑이 터지고 들판이 물에 잠겼으니, 저 강 근처의 둑방을 의지하고 있는 마을과 시냇가에 띠풀로 엮어 지은 집이 무너지고 떠내려 가는 갖가지 걱정들은 방문을 나가지 않고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각부에서 보고하는 것이 없고 한성부에서는 아뢰지 않고 있으니, 사리에 의거하여 헤아려 보건대, 진실로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기왕의 잘못은 논책(論責)할 것이 없겠으나, 이 뒤로는 한성부의 각부에서 특별히 이정(里正)과 동임(洞任)에게 신칙하여 모든 인물(人物)의 손상과 가사(家舍)의 표몰(漂沒)이나 소실(燒失)에 대해 즉시 해부(該部)에 고하게 하고, 해부에서는 이를 한성부에 보고하게 하며, 한성부에서는 그때마다 별단(別單)으로 계문(啓聞)하게 하라. 도적에 관한 한가지 일에 이르러서는 더욱 한번 법제를 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도적을 체포하는 관사(官司)를 설치하여 오로지 규찰하여 살피는 책임을 맡긴 것은 그 법의(法意)가 본래 긴중(緊重)한 것인데도 장신(將臣)이 된 자가 이를 하찮게 여기는가 하면, 포교나 포졸이 된 자들 가운데는 대개 무뢰한들이 많은 탓으로 즙포(戢捕)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이에 도리어 덮어 감싸주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를 기르는 것은 쥐를 잡기 위한 것인데, 쥐가 있어도 잡지 않는다면, 그런 고양이를 어디에 쓰겠는가? 지금의 포도청은 실로 이와 비슷한 형국이다. 소소한 도둑은 비록 발생한대로 번번이 아뢰기는 어려운 것이지만, 지금부터 시작해서 반드시 도둑맞은 집에서는 먼저 즉시 해청(該廳)에 가서 호소하는 한편, 해청에서는 또한 반드시 당부(當部)에 가서 고발하며, 당부는 한성부에 보고하게 하라. 한성부에서는 이를 한 권의 책에다 기록하여 놓고서 수시로 해청에 공문을 발송하여 독촉해서 빼앗긴 물건을 찾아서 주인에게 돌려주게 하며 주인에게 돌려주었으면 해청에서는 또 이런 내용을 한성부에 보고하고, 한성부에서는 다시 사실 여부를 확인하여 기록된 것을 지우게 하라. 이는 허실(虛實)을 종핵(綜核)하는 정사인 것이다. 열 집에서 물건을 잃었는데도 한두 군데의 도적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잡지 못한 자취가 사람들의 눈과 귀에 환히 드러나게 되었으니, 포교와 포졸들이 혹 두려워할 줄 알게 될 것은 물론 조정에서도 또한 수시로 빙험(憑驗)하여 장신(將臣)을 재촉 면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홍수·가뭄과 도적에 관한 것을 막론하고 백성에게서 채집하여 해부(該府)에 보고하는 것은 당부(當部)의 책임인 것이다. 우선 각부(各部)에 신칙하여 숨기거나 빠뜨리는 걱정이 없게 하라. 이어 해부로 하여금 분기마다 부관(部官)의 실적을 조사하여 반드시 이런 등등에 대한 장보(狀報)의 근만(勤慢)으로 전최(殿最)를 매김으로써 권장하고 징토하는 뜻을 나타내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82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243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註 314]
    이문정(李文靖) : 송(宋)나라 진종(眞宗) 때의 명상(名相) 이항(李沆). 문정은 시호임. 그는 항상 진종에게 수재(水災)·한재(旱災)·도적을 경계해야 된다는 말을 올렸음.
  • [註 315]
    원후(元后) : 임금.

○敎曰: "有國之憂, 在於水旱之災、盜賊之警。 是固生民疾苦之最也。 所不可不聞于上者, 而上之人所以恒存戒懼, 不敢作泰侈之念, 亦惟在是。 善乎! 李文靖之說, 可謂燭千古興亡之幾, 予嘗深味之也。 近來忌諱成俗, 有司未嘗以此等事登聞, 寧不慨然? 噫! 匝域蒼生, 皆吾赤子, 而都民休戚, 所係尤重。 一視之澤, 雖無遐邇, 四境之治, 宜先畿輔。 近在城闉之中, 或有愁困之歎, 而予乃莫聞莫知, 是豈作元后之意也? 然而外方列邑, 凡有水旱ㆍ盜賊, 或至被傷之境, 則猶皆登時登聞, 至於京兆各部, 絶無是焉, 豈外方之規, 獨京兆無之歟? 殆有司之不能修擧也。 雖以目下事言之, 潦水漲溢, 決溝浸野, 惟彼近江依岸之村。 旁川結茅之舍, 墊沒胥溺, 種種爲患, 不出戶而可知也。 各部無所報, 京兆不以聞, 揆以事理, 良足寒心。 旣往之失, 雖不論責, 此後自各部, 叨飭里正、洞任, 諸凡人物之傷損, 家舍之漂燒, 卽告該部, 部報京兆, 輒以別單啓聞。 至若盜賊一事, 尤不可不一番定制。 設置捕盜之司, 專任紏詗之責, 法意本自緊重, 而爲將臣者, 看作弁髦, 爲校卒者, 率多無賴, 不惟不能戢捕, 乃反爲之掩覆。 養猫, 所以捕鼠。 有鼠不捕, 焉用彼猫? 今之捕廳, 實類於是。 小小偸竊, 雖難隨發輒聞, 始自今, 必令見盜之家, 先卽往訴, 該廳亦須來告當部, 當部報于京兆。 錄置一冊時, 或移文該廳, 督使捉贓還主。 還主則該廳又移文京兆, 京兆更考信否, 就所錄中爻周。 此槪綜核虛實之政也。 十家見失, 不能捉其一二, 而不捉之跡, 昭人耳目, 則校卒輩庶或知懼, 朝家亦將無時憑驗, 有以責勵將臣焉。 無論水旱、盜賊, 其採于民而報于府, 當部之任也。 爲先申飭各部, 俾無隱匿遺漏之患。 仍令該府, 每等部官考績, 必以此等狀報之勤慢, 爲殿最, 以寓勸懲之意。"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82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243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