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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1권, 정조 즉위년 5월 23일 계사 1번째기사 1776년 청 건륭(乾隆) 41년

홍억이 정후겸의 죄를 조목조목 밝히며 엄벌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니 비답하다

대사간 홍억(洪檍)이 상소하기를,

"아! 저 정후겸(鄭厚謙)의 죄를 아직도 진장(眞贓)을 안찰해 내어 증거를 만들어 단안(斷案)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래도 ‘그 역적질한 것을 밝혀 내어 역적이 이에 자복하였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날 때부터 요물로서 비천한 데에서 태어나 귀근(貴近)의 자리에 들어가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근본은 바닷가 구석의 초목(樵牧)이었는데도 스스로 귀한 곳에서 출생한 것처럼 여기고, 그의 출신은 심원(沁園)170) 의 양아들인데도 자처하기를 혈속인 것처럼 하였습니다. 이에 감히 멋대로 하고 기탄하는 마음이 없어 조정에서는 뜻에 따라 위협하여 억누리는 짓을 하고 사대부들을 오로지 능멸하기를 일삼았습니다. 위세와 기염이 날로 치열해지고 성세(聲勢)가 심히 확장되어, 장상(將相)과 전형(銓衡)의 사람들이 그의 우익(羽翼)과 조아(爪牙)가 되지 않는 자가 없어 오로지 받들어 지키는 데에만 뜻을 두어 오히려 혹시라도 뒤지게 될까 두려워하며 단지 정후겸이 있음만 알고 조가(朝家)가 있음은 알지 못하였고, 비록 친근한 척완(戚畹)과 존귀한 대신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또한 혼인을 의탁하여 명맥이 유지되기를 바랐었으니, 그가 위엄과 권세를 농간하여 죽이고 살리는 것을 오직 뜻대로 한 것을 이로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있어서 그의 간사한 마음이 점점 자라나고 교만한 기운이 더욱 방자해져서 심지어는 눈앞에 저군(儲君)도 없게 되어 마음대로 분수를 범하는 짓을 하였으니, 이는 온 나라 사람들이 다같이 분개하게 여기고 있는 바입니다.

우리 전하께서 춘궁(春宮)에서 덕을 기르고 계실 적에 무릇 생명을 지닌 무리라면 누군들 추대하고 싶은 심정이 없었겠습니까마는, 오직 저 정후겸은 유독 무슨 심장을 지녔기에 감히 시기하고 의심하는 마음을 쌓고 몰래 위협하고 핍박하려는 흉계를 품은 것이겠습니까? 지난 해 겨울에 선대왕께서 종사를 위하여 지성스럽고 측달하게 내리신 하교는 신명(神明)에게 질정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정후겸은 그만 감히 요망한 말을 주창하며 그의 도당들을 속이고 현혹하여 반드시 저해하고야 말려고 하였습니다. 서명선(徐命善)의 상소가 나온 뒤에는 한 상신(相臣)에게 글을 보내기를, ‘조태구(趙泰耉)유봉휘(柳鳳輝)가 다시 나온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아! 중신(重臣)의 이 상소는 진실로 단단하고 충성스러운 적심(赤心)에서 나온 것인데, 어찌 일찍이 조금이라도 조태구유봉휘와 비슷한 것이 있겠습니까? 현저하게 공격하여 배척하는 말을 하기를 전연 돌아보거나 꺼리지 않았고, 몰래 요얼(妖孼)들을 사주하여 흉악한 상소를 꾸며 내었으니, 그것은 동궁(東宮)의 관료를 저해하려고 도모하여 곧 저위(儲位)를 위태롭게 하려한 것입니다. 심상운(沈翔雲)을 추국(推鞫)하는 날에 이르러서는 또한 감히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팔을 걷어붙이며 큰 소리로 말하기를, ‘언제 저군(儲君)이 죄인을 남간(南間)171) 에 가두도록 한 일이 있었는가?’라고 하기까지 했었으니, 그의 장심(將心)과 역절이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고금 천하에 어찌 이와 같이 교활하고 간특한 역적이 있었겠습니까? 이 역적이 평생 저지른 범죄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마는, 그 중에도 큰 것을 모아 본다면 위복(威福)을 농간한 것, 저군(儲君)을 위협하고 핍박한 것, 대리 청정(代理聽政)을 불만스럽게 여긴 것인데, 이 중에 한 가지 것만 있더라도 저자에서 주륙당하는 것을 면할 수 없는 법인데, 하물며 이 세 가지 죄안을 겸하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이런데도 베지 않고 천지 사이에서 숨을 쉬며 살도록 한다면, 난신 적자(亂臣賊子)가 징계 될 수 없고 인륜이 이로부터 없어지게 될 것이니, 삼가 바라건대 확연(廓然)하게 건단(乾斷)을 발휘하고 통쾌하게 윤음(倫音)을 내리시어 다소라도 신과 인간들의 분개가 풀리게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삼사(三司)에서 전후에 차자와 계사로 정후겸의 죄를 성토했었지만 그 진장(眞贓)을 드러내어 단안을 만든 것을 볼 수 없으니 내가 개탄스럽게 여기는 바였다. 너의 상소 가운데 ‘그가 역적질 한 것을 밝혀 내야 한다.’라고 한 말은, 이는 바로 오늘날 내가 정치를 해 가는 본뜻이다. 이것이 내가 너의 상소가 긴요한 증거를 잡아냈음을 가상하게 여기는 이유이다. ‘조태구유봉휘가 다시 나왔다.’라는 말이나, ‘죄인을 남간(南間)에 가두게 했다.’라는 말도 방자하고 기탄없는 정후겸으로는, 이러한 심술이나 이러한 말씨가 진실로 이상한 일이 아니지마는, 요망한 심상운을 사주하여 흉악한 상소를 꾸며 낸 것에 있어서는 정상을 구명해 보면 길거리의 사람들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매양 한번 생각이 이에 미치게 되면 더욱 정신이 늠연(凛然)해지며 마음이 써늘해진다. 아! 그때에 그 무리가 허다한 뜬 소문을 만들어 내어 들어와서는 안에서 선동하고 나가서는 밖에서 떠들어댔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그 무리들의 사이에서 익히 들은 것이다마는, 그의 무리로 하여금 그의 무리를 증거하게 한다면 비록 변명하려고 하더라도 될 수 있겠는가? 상소 가운데 열거하여 분석해 놓은, 저해하려고 도모하고 위태롭게 하려고 도모한 흉계에 있어서는, 지극히 간사하고 지극히 흉악한 음모를 간파해 놓은 것이다마는, 공론이 있는 것인데 내가 어찌 반드시 중복해서 말할 것이 있겠는가? 삼사에게 윤허를 아끼고 있는 것도 뜻이 있어서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44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582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

  • [註 170]
    심원(沁園) : 공주의 정원(庭園)을 말함. 후한(後漢) 때에 명제(明帝)의 딸인 심수 공주(沁水公主)에게 정원이 있었는데, 두헌(竇憲)에게 빼앗겼음. 이 뒤로 공주의 정원을 심원이라 하였는데, 여기서는 정후겸의 양모인 화완 옹주(和緩翁主)를 뜻함.
  • [註 171]
    남간(南間) : 의금부 남쪽에 있던 옥으로 사형수를 수갑하던 곳임.

○癸巳/大司諫洪檍上疏曰:

噫! 彼厚謙之罪, 猶不能按發眞贓, 證成斷案, 則尙可謂: "明其爲賊, 賊乃可服。"者乎? 渠以天生妖物, 出自卑微, 入屬貴近。 其本則海曲之樵牧也, 而自視如生貴, 其身則沁園之螟蛉也, 而自處若血屬。 乃敢肆然無忌, 朝廷則隨意脅制, 士夫則全事淩蔑。 威焰日熾, 聲勢甚張, 將相銓衡, 莫不爲其羽翼爪牙, 而專意承奉, 猶恐或後, 只知有厚謙, 不知有朝家。 雖以戚畹之親, 大臣之貴, 猶且托婚而丐命, 則其竊弄威柄, 惟意殺活, 推此可知。 於是乎邪心漸長, 驕氣益肆, 甚至眼無儲君, 恣意犯分, 此國人之所共憤。 而我殿下養德春宮, 凡在含生之倫, 孰無願戴之情? 而惟彼厚謙獨何心腸, 敢蓄猜疑之心, 潛懷危逼之計? 昨冬先大王爲宗社至誠惻怛之敎, 可質神明, 而厚謙乃敢唱出妖言, 誑惑其徒黨, 必欲沮戲而後已。 及夫徐命善疏出後, 貽書一相臣, 以爲復出。’ 噫! 重臣此疏, 實出於斷斷忠赤, 則何嘗一毫彷彿於? 而顯言攻斥, 全不顧忌, 潛嗾妖孽, 粧出凶疏, 其所以圖害宮僚, 乃所以圖危儲位也。 至於翔雲推鞫之日, 敢又攘臂大言於稠人之中, 至曰: "焉有儲君, 囚人南間之事乎?" 其將心逆節, 彰露無餘。 古今天下, 寧有如此巧慝之賊乎? 此賊之平生負犯, 有不勝言, 而撮其大者, 則竊弄威福也, 危逼儲君也, 不滿代聽也, 有一於此, 難逭肆市之戮, 況兼有此三大案乎? 此而不誅, 一向容息於覆載之間, 則亂賊無以懲矣, 人彝從此泯矣。 伏願廓揮乾斷, 夬降兪音, 小洩神人之憤焉。

批曰: "三司之前後箚啓, 聲罪厚謙也, 未見其發眞贓而成斷案者, 予所慨歎。 爾疏中明其爲賊云者, 政是予今日做治之本意。 此所以嘉乃疏之把得緊證也。 復出之說, 囚人南間之說, 以厚謙放恣無忌, 似此心術, 似此口氣, 固非異事, 而至於嗾囑妖, 粧出凶疏, 則究厥情狀, 路人所知。 每一念及, 尙爲之澟然而心寒。 噫嘻! 伊時渠輩, 做出許多浮言, 入而煽動于內, 出而譸張于外。 此皆予飫聞於渠輩之間者, 以渠輩證渠輩, 雖欲發明,得乎? 疏中所列剖析圖害圖危之計, 覷破至姦至凶之謀, 公議所在, 予何必疊諭? 靳允三司, 意有在焉。"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44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582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