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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12권, 영조 45년 3월 10일 계사 1번째기사 1769년 청 건륭(乾隆) 34년

이우보가 이정렬의상소로인해박세채의무고함을변명하는소장을올리다

임금이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고, 상소한 유생 이우보(李雨普)를 불러서 하문하였다. 이때 이우보이정렬(李鼎烈)의 상소로 인해 박세채(朴世采)를 위해 무함을 변명하였는데, 그 소장에 이르기를,

"예로부터 현자(賢者)로서 바른 사람에게 해독을 끼치는 무리에게 오멸(汚衊)을 받은 것이 어찌 선정신 박세채가 받은 것만함이 있었겠습니까? 세상이 갈수록 명철(明哲)함이 쇠미해져 덕(德)을 아는 자가 드물어짐에 따라 어리석고 무식한 이정렬에게서 백지에 무함을 받게 되었는데, 그 말의 윤기(倫紀)가 없음이 지난번 김약행(金若行)의 소장보다 몇 갑절이 되었으니, 이것은 사문(斯文)의 큰 액회(厄會)이고 세도(世道)의 지극한 변괴(變怪)이었습니다. 당초에 철향(腏享)한 거조는 성대한 성상의 상덕(象德)으로 송(宋)나라 조정에서 이미 행한 전례(典禮)를 본받은 것이었으니, 누군들 성상께서 널리 감동하신 성의(盛意)를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한번 종향(從享)한 이후로 세속(世俗)의 추향(趨向)이 갑자기 이상해져 추이(推移)했다느니 미봉(彌縫)했다느니 하는 등의 지목은 이미 극도로 사리에 어긋났으며, 왕안석(王安石)을 인용하기에 이르러서는 더욱 극도로 해괴하고 요망스러웠는데, 신도 또한 그 까닭을 알 수 없으니, 신은 그윽이 의혹됩니다. 신의 할아비 고(故) 지사(知事) 신 이세환(李世瑍)은 어릴 때부터 선정의 문하(門下)에서 수업(受業)하여 가정(家庭) 사이의 일에 대해 조금 들어서 남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선배들이 죽은 후 선정의 본말(本末)을 아는 자로서 신만한 사람이 없을 듯한데, 신도 또한 시의(時議)를 두려워하여 말하지 않는다면, 진실로 구천지하(九泉之下)에 돌아가서 신의 할아비를 볼 면목이 없을 것이므로 이에 감히 급한 목소리로 슬피 호소하는 바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선정이 받은 무함을 통렬하게 분변(分辨)해 주소서."

하였다. 소장이 들어가자 임금이 이우보를 불러 묻기를,

"너는 누구의 족속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당저(當宁)의 사부(師傅)였던 고 지사 이세환의 손자이며, 전 한림 이극생(李克生)의 종숙(從叔)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너의 할아비가 선정을 흠앙(欽仰)하였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아비와 다름없이 여겼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네가 바로 네 할아비의 손자이니, 선정의 무함을 변명하여 너의 할아비 마음을 밝히는 것이 옳다."

하니, 대답하기를,

"선정은 대개 황극(皇極)을 주장하여 세도(世道)를 조정하고자 하였으나, 과연 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옳다. 내가 선정을 대우하는 까닭은 황극 때문이고, 세상에서 선정을 질시(嫉視)하는 것도 또한 황극 때문이다. 선정의 뜻을 네가 마땅히 알 것이고, 너의 할아비가 황극을 조술(祖述)한 것도 또한 마땅히 알 것이니, 모두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옳겠다."

하였는데, 이우보(李雨普)가 대답하지 못하자, 임금이 비답을 내리기를,

"아! 선정이 도덕을 수립한 것에 대해 진실로 내가 흠모(欽慕)하였는데, 그 가운데 건극(建極)은 선정이 고심(苦心)하던 것으로서 백대(百代)에 귀감(龜鑑)이 되는 것이었다. 더욱이 내가 부덕(否德)함으로써 이러한 존호(尊號)를 받았으니, 마음에 항상 부끄러웠다. 나와 뜻이 같은 자는 오직 선정뿐이었으므로 뭇사람들의 의논을 물리치고 특별히 종향(從享)하도록 명하여 국시(國是)가 크게 정해졌다. 그런데 이정렬·김약행환퇴(桓魋)037) 와 다름없었으니, 선정에게 어찌 누가 되겠는가? 지난번 신경(申暻)의 거조는 어찌 단지 그 할아비를 잊을 뿐이겠는가? 진실로 그 임금을 잊은 것이다. 아! 건곤(乾坤)이 비록 혼돈(混沌)하다 하더라도 선정을 종향한 것에 대해 누가 감히 이의(異議)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지금 너의 소장을 보건대, 곧 나의 옛날 스승이었던 이 세환의 손자인데 더욱이 신축년038) 겨울에 계방(桂坊)039) 의 관원으로서 성정각(誠正閣)에 입시했던 것이 아련히 마치 어제와 같다. 아! 사설(邪說)은 뜬구름과 같아 저절로 소멸되고, 도덕은 천년 후에 명성을 전할 것이니, 나는 유감이 없다. 너도 또한 무슨 원한이 있겠는가?"

하고, 이어서 물러가도록 명하고, 하교하기를,

"그 사람은 알기가 어렵다. 공(公)을 위한 것인가, 사(私)를 위한 것인가? 내가 속은 것이 많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6책 112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321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상-유학(儒學) / 역사-고사(故事)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註 037]
    환퇴(桓魋) : 공자(孔子)를 해치려했던 송신(宋臣).
  • [註 038]
    신축년 : 1721 경종 원년.
  • [註 039]
    계방(桂坊) : 세자 익위사(世子翊衛司).

○癸巳/上引見大臣備堂, 召問疏儒李雨普。 時雨普李鼎烈疏, 爲朴世采陳疏辨誣, 其疏曰:

"從古賢者之汚衊於毒正之輩, 豈有如先正臣朴世采之所遭乎? 世降哲萎, 知德者鮮, 白地遘誣於蒙獃蔑識之李鼎烈, 而其言之無倫, 不啻倍蓰於向時金若行之疏, 此斯文之大厄會, 世道之至變怪也。 當初腏享之擧, 以聖上象德之盛, 倣朝已行之典, 孰不仰聖上曠感之盛意? 而一自從享以後, 俗趨頓異, 推移宛轉之目, 已極謬戾, 至於引用王安石, 尤極駭妄, 臣亦莫知其所以, 臣竊惑焉。 臣祖故知事臣世瑍, 自少受業於先正之門, 家庭之間, 粗聞緖餘。 及今前輩淪亡之後, 知先正本末者, 恐無如臣, 而臣亦怵時議而不言, 則實無歸見臣祖於九地之顔, 玆敢疾聲哀籲。 伏乞聖明, 痛辨先正之受誣。" 疏入, 上召問雨普曰: "爾誰之族?" 對曰: "當宁師傅故知事世瑍之孫, 前翰林克生之從叔也。" 上曰: "爾祖〔欽〕 仰先正乎?" 對曰: "無異於父矣。" 上曰: "爾是爾祖之孫, 辨先正之誣, 明爾祖之心可也。" 對曰: "先正蓋欲主張皇極, 調停世道, 未果而歿矣。" 上曰: "是矣。 予所以待先正者皇極也, 世所以嫉先正者亦皇極也。 先正之意, 爾當知之, 爾祖所以祖述皇極者, 亦宜知之, 皆明言之可也。" 雨普不能對, 上賜批曰: "嗚呼! 先正道德樹立, 寔予欽慕, 其中建極, 先正苦心, 百代龜鑑。 況予涼德, 受此號, 心常恧焉。 與我同志者, 其惟先正, 排群議特命從享, 國是大定。 而李鼎烈金若行, 無異桓魋, 於先正何累哉? 頃者申暻之擧, 豈特忘其祖? 誠忘其君。 噫! 乾坤雖混沌, 先正從享, 孰敢異議? 今覽爾章, 卽予甘盤故舊李世瑍之孫也, 況辛丑冬, 以桂坊入侍誠正閣, 怳若昨日。 嗚呼! 邪說自消於浮雲, 道德垂名於千載, 予無憾焉。 爾亦何憾?" 仍命退出, 敎曰: "其人難知也。 爲公乎爲私乎? 予見欺多矣。"


  • 【태백산사고본】 76책 112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321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상-유학(儒學) / 역사-고사(故事)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