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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11권, 영조 44년 7월 6일 신묘 2번째기사 1768년 청 건륭(乾隆) 33년

황해도 유생 양응중 등이 박세채의 일등에 대해 상소를 올리다

황해도 유생 양응중(梁應重)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신 등은 초야(草野)에 엎드려서 뒤늦게 들었는데, 김약행(金若行)이 흉소(凶疏)를 올려서 선정신(先正臣) 문순공(文純公) 박세채(朴世采)를 무욕(誣辱)함이 더할 수 없다고 하니, 신 등의 분함이 격동하여 마음이 싸늘하고 뼈가 떨립니다. 서로 이끌어 발을 싸매고 와서 같은 소리로 성토(聲討)하게 되었는데, 비록 때늦은 한탄이 있습니다만 가만히 신포(申暴)하는 의(義)를 붙였으니, 삼가 성명(聖明)께서는 굽어살피소서.

선정신 문순공은 도학(道學)의 순정(醇正)함과 사공(事功)의 높고 우뚝함이 살아서는 한 세대의 사표(師表)가 되고 죽어서는 백세(百世)를 기다려도 의혹되지 아니함을 성상께서 이미 밝게 아셨었고 나라 사람이 모두 공송(公頌)하였으니, 어리석고 무지한 신 등과 같은 사람이 거듭 말하는 것을 기다릴 것이 없었는데, 뜻밖에 모독하는 말이 장주(章奏)에 오르는 데에까지 이르렀으니, 아! 통분(痛憤)합니다. 말에 이르기를, ‘사람을 살필 때는 반드시 그 윤(倫)190) 으로 한다.’고 하니 선정(先正)의 언어(言語)와 행사(行事)가 방책(方冊)에 밝게 실려 있어서 사람의 귀와 눈에 밝게 비치는데, 어찌 일찍이 조금이라도 그들이 말하는 바 ‘소변(蘇卞)의 유(類)’에 영향(影響)을 미치겠습니까? 그도 눈이 있고 귀가 있으니, 만약 보통 사람이라면 결코 가깝지 않음을 모르지 않을 것인데, 이에 사사로운 꾀를 이룩하기에 급하여 시작과 끝이 없고 순서와 조리가 없는 단서를 갑자기 일으켜서 거짓으로 말을 만들어 선정(先正)의 칭호를 마음대로 버리면서 ‘아! 저 박상(朴相)’이라고 말하는 것은 진실로 3백 년 동안 듣지 못한 일입니다. 진실로 그 근원을 살피면 황극(皇極)을 도운 한 가지 일에 불만을 품고서 감히 선정(先正)을 해독(害毒)하는 주둥이를 놀리는 것입니다. 그도 우리 성상의 40년 동안의 교화를 받은 한 미물(微物)인데, 감히 ‘진실로 전하의 황극(皇極)의 도(道)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선정(先正)을 무함하는 것만이 아니라, 바로 ‘황극(皇極)의 대도(大道)’를 비난하고 모욕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렇지만 귀매(鬼魅)의 정상(情狀)이 하늘의 태양 밑에서 도망할 수 없으므로 처분이 엄정(嚴正)하고 국법이 용서하지 아니하였으니, 신 등이 먼 외방에서 듣고는 백 번 절하고 공경히 외면서 대성인(大聖人)의 하시는 일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심이 있음을 우러러보며, 방벽(放闢)191) 의 공이 추성(鄒聖)192) 의 밑에 있지 않으니, 무릇 보고 들음에 있어서 누가 흠탄(欽歎)하지 않겠습니까?

신 등은 김약행(金若行)의 무리와 더불어 우리 성상께서 토죄(討罪)하신 뒤에 입을 더럽히면서 다투어 변명하지만, 다만 삼가 생각하건대 선정(先正)은 세상에 드문 영특(英特)한 자질(資質)로서 그 자신이 사우(師友)의 중임(重任)을 맡았는데, 나면서 불행한 때를 만나 붕당(朋黨)의 나누어짐을 눈으로 보고는 후일에 세상의 화(禍)의 시초가 될 것을 밝게 알고 문을 닫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장차 ‘머리를 풀어헤친 채 갓끈을 매고서 불에 타는 사람을 구제하고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는 것.’과 같이 하여 그 위를 힘쓰게 하고 아래를 꾸짖어 지극한 정성으로 보합(保合)하는 뜻은 귀신이 증명할 만하며, 옳고 그름을 분별함은 거울처럼 밝고 저울처럼 공평하여 홀로 소광(昭曠)의 경지에 서서 조금도 사사로움에 치우치는 것이 없었으니, 그 이치를 보는 밝음과 일을 생각하는 먼 식견은 천고(千古)에 높이 뛰어났는데, 세상 운수에 관계되어 비록 당시에는 그 효과를 보지 못하였으나 당시 사람들이 또한 그 마음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하거나 그 말이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고서 거의 모두가 믿기를 시귀(蓍龜)193) 처럼 하고 우러러보기를 태산(泰山)·북두(北斗)와 같이 하였으니, 지금 제가(諸家)에서 간행한 유고(遺稿)와 문경공(文敬公) 박필주(朴弼周)가 지은 선정신(先正臣)의 묘표(墓表)를 한번 보면 밝게 알 것인데,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세급(世級)이 한번 떨어지자 노성(老成)의 논의는 점점 멀어져 황구(黃口)194) 가 덕행이 있는 사람을 존경하는 풍속이 없고 청금(靑衿)195) 이 선현(先賢)을 본받는 버릇이 희박하여, 선정신의 도덕과 사공(事功)에는 완전히 어둡고 여러 유언(儒彦)196) 을 흠복(欽服)·추장(推奬)할 것은 생각하지 않으면서, 망령스럽게 서로 더욱 의혹하고 점점 괴격(乖激)하여 조제(調劑)197) 하는 시론(時論)에 유감을 가지고 대공(大公)의 법문(法門)에 의심을 두었습니다. 심지어 행동이 이미 추하고 패려(悖戾)하여 사류(士類)에게 버림을 당한 김약행과 같은 자는 방자한 뜻으로 침해하고 꾸짖으며 반성하여 삼가는 것이 없어서 반드시 모호하고 뒤섞인 말로써 더하니, 어찌하여 그릇되고 어긋남이 여기까지 이르렀습니까? 억지로 제목(題目)을 만들어 말할 것을 은밀히 약정하여 마땅한지의 여부는 계교하지 않고 오직 더럽게 욕하는 것만 주로 삼으니, 아! 어진이를 모욕하고 바른 사람을 해독(害毒)하는 것을 그는 어찌 즐거이 하고 있습니까? 인정(人情)으로 헤아려보더라도 반드시 이런 이치는 없습니다. 그리고 선정(先正)이 이미 성상을 아침저녁으로 만나시는 은혜를 입어 송(宋)나라가 이미 행한 법을 모방하고 넓은 세상에 드물게 있는 의식(儀式)을 거행하여, 거의 인심이 안정되고 선비의 추향(趨向)이 일치되었었는데, 일종(一種)의 꺼리고 해치는 무리가 이에 감히 선정에게 노(怒)함을 옮겨서 시기하고 헐뜯으매 빌붙은 무리가 많게 되었으니, 식자(識者)의 한심스러워함이 진실로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이제 김약행이 더럽게 욕하는 것은 진실로 사론(邪論)에 의탁하여 공을 세워 출세를 하려는 계책에서 나온 것이니, 그의 계획적인 마음을 차마 똑바로 볼 수 없습니다. 현관(賢關)198) 에 이르러서는 많은 선비가 장수(藏修)하는 곳이며 청재(淸裁)를 주장하는 곳이니, 언론(言論)과 풍지(風旨)가 마땅히 멸렬(滅裂)에 이르지 않아야 할 것인데, 종사(從祀)하는 선정(先正)이 근거없이 무함을 당하였은즉, 한 번 신포(伸暴)하는 것이 일의 체면에 당연한데도 여러 달을 엿들었으나 아직 들은 것이 없으니, 성상이 배양(培養)하신 공이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풍습이 괴려(乖戾)한 날에 김약행 한 사람의 말은 진실로 그 사이에서 경중(輕重)할 것이 못되나, 화(禍)를 즐거워하고 일을 좋아하는 무리가 얼굴을 숨기고 혀를 번득이며 연달아 일어날 것이 참으로 두렵습니다. 또 장차 몇 명의 김약행이 다시 어떤 모양의 말을 만들어 낼지 걱정입니다. 우리 전하를 일찍이 시험하였으나 또 어떤 격돌이 어느 지경에까지 이를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늠연(凛然)하여 마음을 놀라게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이는 신 등이 피눈물을 머금고서 흉금을 터놓고 글을 드러내어 우러러 구혼(九閽)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굽어 밝게 살피심을 내려 더욱 성상의 결단을 발휘하시어 망령되고 해괴한 무리로 하여금 다시는 함부로 날뜀을 일삼지 못하게 하여, 치우치고 거짓된 말을 영구히 막고 부리를 끊어서 사문(斯文)199) 을 붙들고 세도(世道)를 편안하게 하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답하기를,

"말세(末世)에 초야(草野)에서 헌근(獻芹)200) 하는 글을 듣지 못하여 마음으로 애석함이 간절하더니, 너희들이 선정(先正)의 무고(誣告)를 분별하기 위하여 도보로 먼 길을 와서 고요히 조섭(調攝)하는 가운데 글을 올리니, 그 정성이 매우 가상하다. 요즈음 비록 공도(公道)는 듣지 못하여 침침한 긴 밤과 같을지라도 이미 성무(聖廡)201) 에 종향(從享)하여 조두 석채(俎豆釋菜)202) 하고 있으니, 지금 성균관에서 유관(儒冠)을 쓰고 유복(儒服)을 입은 자 가운데 누가 감히 이의(異議)하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해괴한 상소가 이미 올라오자 처분이 엄정하였으니, 어찌 날을 넘기지 않았을 뿐이겠는가? 때를 넘기지 않았다고 말할 만하다. 이와 같이 한 뒤에 성균관의 많은 선비가 어찌 필두(筆頭)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 무고를 분별하는 너희들은 초야(草野)에 있으면서 단지 풍전(風傳)만 듣고 허둥지둥 이 거사(擧事)를 하였으니, 그 형세가 진실로 그러하다. 도깨비[魍魎]의 말을 어찌 다시 제기할 것이 있겠는가? 김약행은 지금 흑산도(黑山島)의 한 도깨비가 되었으니, 비록 귀신이 되고 물여우가 되려고 할지라도 그가 어찌 감히 하겠는가? 그가 어찌 감히 하겠는가? 이제 비답(批答)에 환하게 유시하노니, 너희들이 만약 선정(先正)을 위한다면 더욱 마음을 닦고 가서 학업을 닦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5책 111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292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註 190]
    윤(倫) : 동류(同類).
  • [註 191]
    방벽(放闢) : 당파를 물리침.
  • [註 192]
    추성(鄒聖) : 맹자.
  • [註 193]
    시귀(蓍龜) : 점칠 때 쓰는 시초와 거북.
  • [註 194]
    황구(黃口) : 어린 아이.
  • [註 195]
    청금(靑衿) : 유생(儒生).
  • [註 196]
    유언(儒彦) : 유학자.
  • [註 197]
    조제(調劑) : 조정하여 화합함.
  • [註 198]
    현관(賢關) : 성균관.
  • [註 199]
    사문(斯文) : 유교.
  • [註 200]
    헌근(獻芹) : 변변치 못하나 순박한 정성에서 나온 뜻.
  • [註 201]
    성무(聖廡) : 대성전 동서무(大成殿東西廡).
  • [註 202]
    조두 석채(俎豆釋菜) : 제사함.

黃海道儒生梁應重等上疏, 略曰: "臣等跧伏草野, 晩後得聞, 金若行投進凶疏, 誣辱先正臣文純公 朴世采罔有紀極, 愚憤所激, 心寒骨顫。 相率裹足, 同聲致討, 雖有後時之歎, 而竊附申暴之義, 伏惟聖明垂察焉。 先正臣文純公道學之醇正, 事功之巍卓, 生而爲一世師表, 沒而俟百世不惑者, 聖上業已洞悉之, 國人擧皆公頌之, 不待愚淺如臣等之更爲覶縷, 而不意汚衊之說, 至登於章奏, 噫嘻痛矣。 語曰 ‘擬人必於倫’, 先正言語行事, 昭載方冊, 照人耳目, 何嘗分毫影響於渠所謂蘇卞之類耶? 渠亦有目有耳, 若是常人, 則決非不知其爲不襯近, 而乃急於私計之濟, 闖起沒頭尾無倫脊之端, 閃弄爲說, 任去先正之稱, 而噫彼相云者, 此固三百年所未聞之事也。 苟究其源, 則不滿於贊皇極一着, 而敢逞其毒正之喙也。 渠亦我聖上四十年涵濡陶鎔之一微物, 則乃敢曰, 實異於殿下皇極之道乎? 此非特誣先正也, 乃所以譏侮皇極之大道也。 雖然鬼魅情狀, 莫逃於中天之太陽, 處分嚴正, 王章不饒, 臣等遠外承聞, 百拜莊誦, 有以仰大聖人作爲, 出尋常萬萬, 而放闢之功, 不在於鄒聖之下矣, 凡在瞻聆, 孰不欽歎也哉? 臣等不欲與若行輩, 汚口爭卞於我聖上討罪之後, 而第伏念先正間世英姿, 身任師友之重, 而生値不幸, 目見朋黨之分, 則明知爲後日世禍之權輿, 不惟不爲閉門而已, 若將披髮纓冠, 救焚拯溺其所上勉下責, 至誠保合之意, 可質神鬼, 卞別是非, 鑑空衡平, 獨立於昭曠之域, 而無一毫偏係之私, 其見理之明, 慮事之遠, 逈出千古, 而係闕世運, 雖不能食效於當時, 當時諸人, 亦未嘗以其心爲不公, 其言爲無稽也, 擧皆信之如蓍龜, 仰之如山斗, 今於諸家刊行之遺稿, 及文敬公 朴弼周所撰先正臣墓表, 可一按而燭照矣, 焉可誣也? 世級一降, 老成之論寖遠, 黃口蔑尊德之風, 靑衿薄象賢之習, 全昧先正臣道德事功, 不念諸儒彦欽服推奬, 妄相滋惑, 輾轉乖激, 懷憾於調劑之時論, 蓄疑於大公之法門。 至如行已醜悖, 見棄士類之若行者, 恣意侵詆, 無所顧忌, 必加之以糢糊混淆之說, 何其謬戾之至此也? 勒成題目, 隱約爲說, 不較當否, 惟醜辱爲主, 噫! 侮賢毒正, 渠豈樂爲? 揆以人情, 必無是理。 而先正旣蒙 聖上朝暮之遇, 倣朝已行之典, 擧曠世稀有之儀, 庶幾人心定士趨一, 而一種忌忮之類, 乃敢移怒於先正, 媢嫉而齮齕, 附麗之徒寔繁, 識者之寒心, 固已久矣。 今此若行之醜詆, 實出於附托邪論, 欲爲立功進身之計, 其爲設心, 誠不忍正視也。 至於賢關多士之所藏修, 淸裁之所主張, 言論風旨, 宜不至滅製, 而從祀先正, 白地被誣, 則一番伸暴, 事面當然, 而側聽累月, 尙未有聞, 我聖上培養之功, 果安在哉? 風習乖戾之日, 一若行之言, 固不足輕重於其間, 而誠懼樂禍喜事之徒, 匿形閃舌, 接跡而起。 又將釀出幾箇若行, 復以何樣說。 嘗試我殿下, 而且未知何等磯激, 至於何地。 思之至此。 不覺澟然而驚心者矣。 此臣等之沫血飮涕, 披肝露章, 仰扣九閽者也。 伏願殿下, 俯賜鑑燭, 益揮聖斷, 毋使妄駭輩, 更事跳踉, 永爲杜詖淫而絶根株, 以扶斯文, 以靖世道, 千萬幸甚。" 答曰: "末世草野獻芹之章莫聞, 心切嗟惜, 爾等其能爲先正辨誣, 裹足而來, 抗章於靜攝之中, 深嘉其誠。 近者雖不聞公道, 沈沈長夜, 旣躋聖廡, 俎豆釋菜, 於今賢關, 冠儒冠服儒服者, 孰敢異議? 雖然駭章旣登, 處分嚴正, 豈特不踰日? 可謂不踰時。 若此之後, 賢關多士, 豈可汚諸筆頭? 辨誣爾等, 在於草野, 只聞風傳, 錯愕爲此擧, 其勢固然。 魍魎之說, 何足復提? 若行今爲黑山島一魑魅, 雖欲爲鬼爲蜮, 渠何敢也? 渠何敢也? 今批洞諭, 爾等若爲先正, 益修其心, 往修學業。"


  • 【태백산사고본】 75책 111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292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