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감사의 장계·김양택의 파직·화양정·이시중의 일 등을 논의하다
임금이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좌의정 한익모가 경기 감사 남태제(南泰齊)가 올린 장계(狀啓)로 인하여 창고에 있는 곡식 17만 석 가운데 4만 석의 가분(加分)을 청하니, 특별히 5만 석을 허락한다고 명하였다.
우의정 김상철(金尙喆)의 소청을 들어주라고 명하였는데, 병이 있다고 간곡히 말하였기 때문이었다. 군기 제조 김양택(金陽澤)을 파직하라고 명하였는데, 광진(廣津)에서 시기에 맞추어 닻을 내리지 못했다는 잘못을 스스로 말한 차자(箚子)를 올렸기 때문이었다. 그의 차자는 되돌려 주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하순(下詢)하기를,
"마장(馬場) 주변에 화양정(華陽亭)이 있는데, 무슨 뜻을 취한 것인가?"
하니, 병조 판서 이경호(李景祜)가 말하기를,
"그 정자는 사복(司僕)의 정자인데, 정자의 앞 풀밭에 해마다 말을 방목하므로 화양(華陽)에 말이 돌아간다는 의의를 사용하여 정자의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마장(馬場)이 너무 넓지 않는가?"
하니, 한익모가 말하기를,
"임금의 부유함은 말의 숫자를 들어 대답하는 것이니, 말이 꽉 차 있으면 크더라도 무슨 지장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대사간 안표(安杓), 장령 이태정(李泰鼎)이 광진(廣津)에서 닻을 제때에 내리지 못하였을 적에 즉시 벌하자고 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피(引避)하였는데, 아뢴 대로 하게 하였다.
영의정 김치인(金致仁)이 능에서 돌아와 보고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갑자년094) 에 경의 부친이 능의 역사(役事)를 감독하였는데, 올해에 경이 또 이 역사(役事)를 맡았으니, 실로 기이한 일이다."
하니, 김치인이 말하기를,
"성상께서 이렇게까지 하교하시니 그지없이 감격스럽고 황송합니다."
하였다. 김치인이 또 말하기를,
"고 정승 이유(李濡)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하신 일로 인해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상지(李商芝)가 그의 아비 일을 당한 뒤로 하늘의 해를 보지 못하고 있으니, 매우 불쌍합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충효는 본디 두 가지가 아니다. 이시중(李時中)이 설령 과연 이런 일이 있더라도, 태무(太武)는 일개 위(魏)나라 임금에 불과하지만 고윤(高允)의 말에 감동하여 직신(直臣)으로 허여하고 용서하였다095) 지금 이상지가 그 아비를 위해 이처럼 하고 그의 임금에 감동하여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하였으니, 어버이에게는 자식의 도리를 얻었으며, 임금에게는 신하의 분수를 다하였다. 아! 지난번 처분을 내릴 때에 두 아우를 위해 참작해서 하였는데, 더구나 그의 아들이겠는가? 이시중에게 내린 금고(禁錮)의 명을 특별히 취소하여 두 아우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이상지의 효성을 권장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4책 110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280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재정-국용(國用) / 재정-역(役) / 구휼(救恤) / 군사-병법(兵法) / 교통-마정(馬政)
- [註 094]갑자년 : 1744 영조 20년.
- [註 095]
고윤(高允)의 말에 감동하여 직신(直臣)으로 허여하고 용서하였다 : 고윤(高允)은 북위(北魏) 태무제(太武帝) 때의 명신(名臣), 경사(經史)·천문(天文)·술수(術數)에 통달하였으며, 일찍이 저작랑(著作郞)으로서 최호(崔浩)가 국사(國史) 사건으로 화를 당할 때, 경목 태자(景穆太子)의 "내가 경의 탈죄(脫罪)을 힘쓸 것이니, 내 말만 따르라."는 권유를 무시한 채, "자신이 최호와 함께 저작하였는데, 자신이 지은 것이 더 많다면서 죄를 청하니, 태무제가 사죄(赦罪)하였는 고사(故事). - [註 095]
○上引見大臣備堂。 左議政韓翼謩, 因京畿監司南泰齊狀啓, 請留庫穀十七萬石中, 許四萬石加分, 命特許五萬石。 右議政金尙喆命許副, 以病陳懇也。 軍器提調金陽澤命罷職, 以津砲失期, 陳箚引咎也。 箚子命還給。 上, 下詢馬場邊, 有華陽亭, 取何意? 兵曹判書李景祜曰: "亭是司僕亭子, 而亭前草場, 每年放馬, 似用華陽歸馬之義, 名其亭矣。" 上曰: "馬場無乃太廣乎?" 翼謩曰: "國君之富, 數馬以對, 馬若充牣, 大亦何妨乎?" 大司諫安杓、掌令李台鼎, 以津砲之不卽請勘引避, 依啓。 領議政金致仁自陵所復命, 上曰: "甲子年先卿監董陵役, 今年卿又當此役, 實爲異事矣。" 致仁曰: " 聖敎至此, 不勝感惶矣。" 致仁又曰: "因故相臣李濡致祭事, 敢仰達矣。 李商芝自遭其父事, 不見天日, 甚可矜矣。" 敎曰: "忠孝本無二致。 時中設令果有是事, 太武不過一魏君, 而感動高允, 許直臣而赦之。 今者商芝爲其父而若此, 感其君而自訟, 於親得子道, 於君盡臣分。 噫! 頃者處分時, 爲兩弟參酌, 況爲其子乎? 李時中特寢禁錮之命, 慰兩弟之心, 奬商芝之孝。"
- 【태백산사고본】 74책 110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280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재정-국용(國用) / 재정-역(役) / 구휼(救恤) / 군사-병법(兵法) / 교통-마정(馬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