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 105권, 영조 41년 3월 10일 을유 3번째기사
1765년 청 건륭(乾隆) 30년
고 상신 최흥원에게 충정으로 사시하다
임금이 대신(大臣)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비로소 전라도 청암역(靑巖驛)과 충청도 연원역(連原驛)의 두 찰방(察訪)을 6품(六品)의 자리로 승격시키어 문신 참상(文臣參上)을 소체(疏滯)하도록 하라고 명하였으니,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청을 따른 것이었다. 홍봉한이 또 아뢰기를,
"고(故) 상신(相臣) 최흥원(崔興源)은 목릉(穆陵)123) 의 제우(際遇)를 받아 공로가 두드러지고, 청백리(淸白吏)로 피선(被選)되어, 고 상신 이준경(李浚慶)과 더불어 나란히 일컬었으니, 그의 청렴과 지조를 알 만합니다. 같은 시대의 명인(名人)·석사(碩士)들이 홀로 표방(標榜)에서 뛰어났다고 허여(許與)하였으니, 그가 조정에 선 본말(本末)이 또 그 공평한 점을 알 만합니다. 그런데 자손이 영체(零替)하여 지금에 와서 비로소 청시(請諡)를 하고자 하니, 마땅히 홍문관으로 하여금 거행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는데, 뒤에 충정(忠貞)으로 사시(賜諡)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1책 105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195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교통-육운(陸運)
- [註 123]목릉(穆陵) : 선조(宣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