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들이 청대하고 선화문에 나아가 아뢰다가 노여움을 사다
약방·정원·옥당·대신·재신들이 청대하고, 영의정 이종성은 시골에서 들어와 대궐 문 밖에서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임금이 선화문에 나아가 여러 신하들을 입시하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이종성을 불러 입시하라고 하였는데, 이종성이 사은 숙배하지 않고 들어오자, 임금이 큰소리로 즉시 사은 숙배하고 들어오라고 하였다. 이종성이 나가서 사은 숙배하고 들어오니 임금이 또 누누이 비상한 하교를 수천 마디나 하였는데, 전일과 똑같았다. 이종성이 여러 신하들과 같이 극력 간하자, 임금이 또 육아편(蓼莪篇)을 읽었다. 그리고 《춘방일기(春坊日記)》를 가져오게 하여 승지로 하여금 세제로 책봉하였을 때 사양하였던 상소인 사세제책봉소(辭世弟冊封疏) 세 편을 읽도록 하였는데, 밤 3경에 이르렀다. 왕세자가 팔짱을 끼고 임금의 앞에 서있었는데, 임금이 손으로 휘저으며 가도록 하고 말하기를,
"너는 무엇 하러 나왔는가?"
하고, 또 말하기를,
"내가 시를 읽을 것인데, 네가 눈물을 흘리면 효성이 있는 것이므로 내 마땅히 너를 위해 내렸던 전교를 반한(反汗)하겠다."
하고, 이어서 육아시를 읽어 끝 편에 이르자, 왕세자가 앞에 엎드려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종성이 말하기를,
"전하께서 친히 동궁에게 하교하셨는데, 동궁의 효성이 지극하였습니다. 반한하겠다고 하신 명을 식언(食言)하시면 안됩니다."
하였다. 임금이 세자에게 《소학(小學)》의 편제(篇題)를 읽으라고 명한 다음 임금이 세자에게 말하기를,
"너의 도리는 들어가라고 한 명을 들었으면 들어가면 될 뿐이다. 무엇하러 오래 앉아 있는가?"
하니, 왕세자가 안으로 들어갔다. 여러 신하가 일제히 회수한다는 전교를 빨리 쓰라고 청하니, 임금이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하기를,
"어렵다. 어렵다."
하였다. 임금이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말하기를,
"동궁이 들어간 줄로 알았는데 아직까지도 물러가지 않고 기둥 뒤에 있으면서 내가 들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여러 신하들은 잠시 물러가 나를 괴롭히지 말라."
하니, 이종성이 말하기를,
"신들이 비록 죽을지라도 전교를 도로 거두지 않으실 경우에는 감히 물러가지 못하겠습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선조(先祖) 때에 대신이 이러한 전교를 받들어 따른 것도 모두 잘못된 일이란 말인가?"
하니, 이종성이 말하기를,
"이러한 전교를 받들어 따른 것은 정말로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하니, 임금이 큰소리로 말하기를,
"이는 선조께서 하신 일을 불만스럽게 여긴 것이다."
하였다. 제조 박문수가 말하기를,
"감히 선조께서 하신 일을 불만스럽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 전교를 받들어 따르는 것을 부당하다고 여길 뿐입니다. 왜 그렇게도 지나치게 말씀하십니까?"
하니, 임금이 책상을 치며 큰소리로 말하기를,
"영성군 박문수를 제주도에 안치하라. 그가 어찌 감히 이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또 말하기를,
"옛날에 거행하였던 일을 경들은 불만스럽게 여기는 것인가? 옛날에 처분한 일을 불만스럽게 여기면 이것이 신하인가, 역적인가? 모두가 임금을 견제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니 매우 괴이하고 고약하다. 영상·좌상·우상은 해도(海島)에다 안치하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오늘 입시한 대신·경재·유신·승지를 모두 해도에다 안치하라."
하고, 남소 위장(南所衛將)을 가승지로 차출하여 전교를 쓰도록 명하였다. 전교하기를,
"특별히 문에 나와 마음을 터놓고 하교하였는데, 감동하기는 커녕 옛날에 하교한 것에 대해 감히 불만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이를 신칙시키지 않는다면 임금이 있고 나라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오늘 입시한 대신은 중도 부처(中道 付處)하고 재신은 모두 멀리 귀양보내며, 승지와 유신은 모두 먼 변방으로 귀양보내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6책 78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470면
- 【분류】왕실(王室) / 사법(司法)
○庚子/藥房、政院、玉堂、大臣、諸宰請對, 領議政李宗城自鄕入來, 待命於闕門外。 上御宣化門, 命諸臣入侍。 召宗城入, 宗城不肅命而入, 上厲聲使卽肅命而入。 宗城出肅拜而入, 上又下非常之敎, 縷縷千百言, 一如前日。 宗城與諸臣力諫, 上又讀蓼莪篇。 命取《春坊日記》, 使承旨讀辭世弟冊封疏三篇, 夜至三更。 王世子拱立上前, 上揮之去曰: "汝何爲出來耶?" 又曰: "予讀詩而汝涕則乃孝也, 予當爲汝反汗。" 仍讀蓼莪詩, 至終篇王世子伏於前涕汪汪下。 宗城曰: "殿下親下敎於東宮, 而東宮誠孝極至。 反汗之命, 不可食言矣。" 上命世子讀《小學》篇題, 上謂世子曰: "汝之道理, 聞入去之命, 則當入去而已。 何爲久坐?" 王世子乃入內。 諸臣齊請速書還收傳敎, 上沈吟曰: "其難。 其難。" 上起入內, 復出臨曰: "東宮入去而尙未退, 方在楹後, 惟待予入。 諸臣姑退, 毋困予。" 宗城曰: "臣等雖死, 若不還收傳敎, 則不敢退去矣。" 上曰: "然則先朝大臣奉承此敎者, 亦皆非乎?" 宗城曰: "此敎奉承, 誠爲非矣。" 上厲聲曰: "是不滿先朝之事矣。" 提調朴文秀曰: "非敢不滿於先朝, 只以此敎奉承爲不當而已。 辭敎何其過重乎?" 上拍案大聲曰: "靈城君 朴文秀 濟州安置。 渠安敢若是?" 又曰: "昔年所行之事, 卿等不滿之乎? 不滿於昔年處分, 是臣子乎, 逆賊乎? 皆不過脅持君父, 極爲怪惡。 領相、左相、右相海島安置。" 上曰: "今日入侍大臣、卿宰、儒臣、承旨竝海島安置。" 命以南所衛將差假承旨, 書傳敎。 敎曰: "特爲臨門開心, 下敎之後, 非徒不爲感動, 昔年下敎者, 敢有不滿之心。 其若不飭, 曰有君有國乎? 今日入侍大臣, 中道付處, 重宰竝遠竄, 承旨、儒臣竝邊遠投畀。"
- 【태백산사고본】 56책 78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43책 470면
- 【분류】왕실(王室) / 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