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영조실록60권, 영조 20년 12월 9일 임자 1번째기사 1744년 청 건륭(乾隆) 9년

3정승을 비판한 이언세, 동료를 구하려 한 윤광천의 시비를 아뢴 김유경의 상소문

대사헌 김유경(金有慶)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신이 전 정언 이언세(李彦世)가 상소한 원본을 얻어서 보니, 그가 논란하여 열거한 것은 대략 알맞거나 타당하지 못하였으므로, 그에게 당한 자들이 한결같이 대질하여 변명하기를 청하는 것은 진실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만, 다만 생각건대 풍문(風聞)으로 들은 말은 사실을 조사하기가 어려움이 있으며, 비방을 중지시키는 방도도 또한 변명하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옛날 송(宋)나라 신하 당개(唐介)가 ‘등롱금(燈籠錦)272) 을 〈장 귀비(張貴妃)에게〉 바쳐 재상의 자리에 이르렀다’라는 말로써 인종(仁宗)의 어전에서 문언박(文彦博)을 직접 탄핵하여 말하기를, ‘문언박은 마땅히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이러한 일이 있다면 숨길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문언박이 절을 하고 사례하기를, 마지 아니하여 끝내 한 마디 말로 스스로 변명하지 않았으며, 인종도 또한 당개에게 힐문하지 않았었는데, 그가 좌천되기에 이르자, 중사(中使)를 보내어 그를 호송하는 데에까지 이르렀으니, 오늘에 이르러서도 이것을 읽어 보는 자들은 책을 열고 감탄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신이 생각하건대, 금일에 수상이 스스로 처리하여야 할 의리는 문언박을 본받아서 사람들이 하는 말의 시비와 허실을 일체 당세의 공의(公議)에다 붙이어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아니하며, 자기를 돌이켜보아 스스로 반성하여 잘못된 점이 있으면 이를 고칠 것이고 잘못된 점이 없으면 더욱 권면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 횡역(橫逆)한 말이 오더라도 이것이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지 않을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그런데 시끄럽고 떠들썩하게 스스로 변명하고, 소장을 자주 올려서 핵실하기를 청하였는데, 그것이 온당하고 도리에 맞는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신이 가만히 듣건대, 대신의 글에서 청함으로 인하여 또 이언세를 잡아다가 국문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고 하니, 아!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신은 생각하기를, 지금 이후부터는 전하께서 비록 나라를 망치는 거조를 하신다고 하고, 대신들이 비록 분수를 범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한 사람도 전하를 위하여 말하는 자는가 없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어찌 마음이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이언세의 상소 중에 좌상과 우상에 대한 말을 불쑥 놓은 것도 또한 매우 박절하였지만, 자기를 논란한 혐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군상(君上)을 억지로 강권하다가 끝내 반드시 국문을 가하고야 마니, 만약 이언세로 하여금 능히 살아서 옥문을 나올 수가 없게 한다면, 천하 후세에서 장차 오늘날을 가지고 어떠한 시대라고 하겠습니까? 윤광천(尹光天)의 사건과 같은 데에 이르러서는 언급하여야 소용이 없겠습니다만, 자신이 대간(臺諫)의 자리에 있으면서 눈으로 지나친 거조를 보고 청대(請對)하여 동료를 구원하려고 하였으니, 진실로 간신(諫臣)의 풍채가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한번 기휘(忌諱)하는 죄에 거촉된다고 갑자기 형틀을 베풀어 거의 눈앞에서 박살당하는 지경에 이르니, 애석합니다. 그날 근신(近臣)의 반열에서는 한정(漢廷)의 한 늙은 신하가 유독 없어서 능히 성상의 뜻을 구원하여 풀어드리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하였다.

상소가 들어가자, 임금이 노하여 그 관직을 삭탈하고 그 소장을 돌려주라고 명하였다. 좌의정 송인명(宋寅明)과 우의정 조현명(趙顯命)이 연명하여 차자를 올리기를,

"수상이 망칙한 일을 당하여서 그가 한 마디라도 변명하고자 하는 것은 상정(常情)이 같은 바인데, 성상께서 이를 순문(詢問)하시는 아래에서 신 등은 대략 이러한 뜻을 가지고 우러러 복명하였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굳이 청한 일이 없었는데, 하물며 명분상 비록 잡아와서 국문한다고 하더라도, 실상은 조사를 행하는 것이니, 그가 살아서 옥문을 나올지의 여부는 논할 바가 못됩니다. 헌장(憲長)이 이를 염려하는 것은 또한 지나치지 아니하겠습니까? 성상께서 어찌 족히 이것에 개의하시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우악하게 바답하였다. 이때에 이언세를 이미 귀양보냈다가 도로 잡아 와서 장차 그 말의 근원을 캐묻고자 하였는데, 대개 논란을 당한 대신들이 그를 조사하도록 청하기를 매우 힘썼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도 그 불가(不可)한 것을 말하지 아니하였다. 김유경은 기로(耆老)의 신하로서, 본래 우아한 명망을 지녔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상소하다가 견책을 당하니, 사람들이 모두 이를 아름답게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60권 44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165면
  • 【분류】
    정론(政論) / 역사(歷史)

  • [註 272]
    등롱금(燈籠錦) : 등롱(燈籠)의 모양을 비단 위에 금실[金線]로 짜서 만든 고귀한 비단으로 촉(蜀) 땅에서 생산되었다 함.

○壬子/大司憲金有慶上疏, 略曰:

臣得見前正言李彦世疏本, 其所論列, 略不稱停, 當之者一請質辨, 固非異事。 而第念風聞之語, 有難覈實, 止謗之道, 亦貴無辨。 昔唐介, 以燈籠錦致相位之語, 面彈文彦博仁宗之前曰, ‘彦博宜自省。 有之不可隱’, 彦博拜謝不已, 終不以一語自明, 仁宗亦不詰問於, 及其貶也, 至遣中使護送, 至今覽之者, 莫不開卷而興嘆。 臣以爲今日首相自處之義, 以文彦博爲法, 人言之是非虛實, 一切付之於當世之公議, 而絶口不言, 反己自省, 有則改之, 無則加勉, 則安知橫逆之來, 不爲他山之石? 而呶呶自辨, 累疏請覈, 未知其穩當底道理。 而竊聞因大臣之固請, 又有彦世拿鞫之命, 噫嘻! 此何事也? 臣則謂從今以往殿下雖爲亡國之擧, 大臣雖有犯分之事, 必無一人爲殿下言之者。 念之至此, 寧不心寒? 彦世疏中攙入左、右相之語, 亦甚迫切, 而不顧論己之嫌, 强勸君上, 終必鞫問而後已, 如令彦世不能生出獄門, 則天下後世將以今日爲何如時耶? 至如尹光天事, 言之無及, 而身居臺地, 目見過擧, 求對伸救, 誠有諫臣風采。 一觸忌諱, 遽施桁楊, 幾至撲殺於目前, 惜乎。 伊日近列, 獨無漢廷一老臣, 不能救解上意也。

疏入, 上怒, 命削其職, 還給其章。 左議政宋寅明、右議政趙顯命聯名箚曰:

首相遭罹罔測, 其欲一辨, 常情所同, 詢問之下, 臣等略以此意仰復。 初無固請之事, 況名雖拿鞫, 實則行査, 生出獄門與否, 非所可論。 憲長之慮, 不亦過乎? 上以何足介意?

優答之。 時李彦世旣竄旋拿, 將欲究問其言根, 蓋以被論之大臣, 請査甚力, 故無一人言其不可。 有慶, 耆臣也, 素以恬雅名, 至是上疏被譴, 人皆多之。


  • 【태백산사고본】 45책 60권 44장 A면【국편영인본】 43책 165면
  • 【분류】
    정론(政論) / 역사(歷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