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욱이 상소하여 김상헌의 서원 건립·정온의 입후 등을 청하다.
임금이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이때 지평 이정욱(李挺郁)이 상소하여 세 가지 일을 진달하였으니, 첫째는 세자(世子)의 보익(輔翼)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문정공(文正公) 김상헌(金尙憲)의 서원 건립을 청한 것이고, 셋째는 고 충신(忠臣) 정온(鄭蘊)의 후사(後嗣)를 세우기를 청한 것이었는데, 임금이 우악한 비답을 내리고 이어 우의정 송인명(宋寅明)에게 묻기를,
"정희량(鄭希亮)이 복법(伏法)된 뒤 혹시 다른 자손이 있는가?"
하였는데, 송인명이 아뢰기를,
"신이 비록 어느 누가 있는지 알지는 못하나 어찌 자손이 흉역(凶逆)하였다 하여 갑자기 어진 조상의 향화(香火)를 폐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송인명이 아뢰기를,
"무신년111) 에 장폐(杖斃)한 죄인 조문보(趙文普)는 곧 선정신 조광조(趙光祖)의 봉사손(奉祀孫)입니다.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한 선현(先賢)의 제사가 끊어지는 것은 합당치 않으니, 마땅히 그 후사를 세워야 합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고 충신 임경업(林慶業)과 기사년112) 에 항소(抗疏)한 사람 연최적(延最績)도 똑같이 그 후손을 녹용(錄用)함이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모두 그대로 따랐다. 송인명이 또 선정신 이황(李滉)의 후손 이세진(李世震)도 녹용하기를 청하니, 그대로 따랐다. 이때 박문수(朴文秀)가 잡혀왔는데 석방하도록 명하였으니, 갑진년113) 의 사초(史草)를 정리하여 바치도록 했었으나 박문수가 아직 한림(翰林) 당시의 사초를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송인명이 아뢴 것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47권 47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607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정론-정론(政論) / 가족(家族)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물(人物) / 변란-정변(政變) / 사상-유학(儒學) / 인사(人事) / 사법(司法)
- [註 111]
○壬戌/上引見大臣備堂。 時, 持平李挺郁疏陳三事, 其一輔翼世子也, 其二請建文正公 金尙憲書院也, 其三請立故忠臣鄭蘊之後也。 上優批之。 仍問右議政宋寅明曰: "希亮伏法之後, 或有他子孫耶?" 寅明曰: "臣雖未知誰某, 而豈可以子孫之凶逆, 遽廢賢祖之香火乎?" 上然之。 寅明曰: "戊申杖斃罪人趙文普, 乃先正臣趙光祖之奉祀孫也。 從祀文廟之先賢, 不宜絶祀, 宜立其後。" 又曰: "故忠臣林慶業、己巳抗疏人延最績幷宜錄後。" 上皆從之。 寅明又請調用先正臣李滉後孫世震, 從之。 時朴文秀就拿, 命放之, 使修納甲辰史草, 文秀尙不修翰林時史, 故寅明奏之也。
- 【태백산사고본】 35책 47권 47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60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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