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38권, 영조 10년 5월 10일 을유 1번째기사
1734년 청 옹정(雍正) 12년
이충정의 주의에 있는 의군정·교거전을 각 군문의 대장들에게 반시하게 하다
소대(召對)를 행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기하(李基夏)가 훈련 대장(訓鍊大將)이 되었을 때 악무목(岳武穆)294) 이 올출(兀朮)295) 을 방어한 마찰도(麻札刀)의 방법을 취하여 전거(戰車)를 만들어 올렸는데, 한쪽면은 창(槍)이었고 한쪽면은 검(劒)이었다. 이제 이충정(李忠定)의 주의(奏議)를 보니 그 군제(軍制)를 논함이 본 제도에 대해 매우 상세히 하였으니, 이 두 차자(箚子) 【의군정(議軍政)·교거전(敎車戰)이다.】 를 옥당(玉堂)으로 하여금 써서 승정원(承政院)에 보내어 각 군문(軍門)의 대장(大將)들에게 반시(頒示)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38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436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군사-군기(軍器) / 군사-군정(軍政)
- [註 294]악무목(岳武穆) : 남송(南宋)의 충신(忠臣) 악비(岳飛). 무목은 그 시호임. 상주(相州) 탕음(湯陰) 사람임. 금(金)과의 전쟁에서 많은 전과(戰果)를 올렸는데, 주선진(朱仙鎭)이란 곳에서 금군(金軍)을 대파(大破)하고 도하(渡河)하려고 하자, 그때 진회(秦檜)가 극력 화의(和議)를 주장하여 악비를 소환(召還)하는 어명(御命)이 갑자기 하달되었음. 악비는 "10년의 공력(功力)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고 분개했지만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진회의 중상 모략과 그 사주를 받은 만사설(萬俟卨) 등의 모함으로 하옥(下獄)되어 죽었음.
- [註 295]
올출(兀朮) : 금(金)나라 태조(太祖)의 넷째 아들로, 성은 완안(完顔) 이름은 종필(宗弼). 악비(岳飛)와 주선진(朱仙鎭)에서 대항해 싸우다 패전하여 장차 북쪽으로 돌아가려 하였는데, 마침 악비를 진회(秦檜)가 모함하여 죽였으므로 드디어 송(宋)나라와 화해하였음. - [註 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