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29권, 영조 7년 1월 28일 임진 3/4 기사 / 1731년 청 옹정(雍正) 9년
비변사에서 황해 수사 남덕하가 장신에게 하직 인사를 않았다고 하여 파직을 청하다
국역
비변사(備邊司)에서 말하기를,
"체통(體統)을 엄히 하는 것은 바로 조정을 받드는 것입니다. 무변(武弁)은 무장(武將)에 대해 체통이 본디 다른데도 황해 수사(黃海水使) 남덕하(南德夏)는 시임(時任) 주당(籌堂)046) 의 장신(將臣)과 전에는 혐의를 갖지 않았으나 곤임(閫任)047) 을 제수하면서부터 갑자기 혐의를 가져 끝내 역사(歷辭)048) 하지 않았습니다. 무부(武夫)의 이런 습관을 제멋대로 부리도록 내버려 둘 수 없으니, 마땅히 남덕하를 파직하여 후일의 폐단을 징계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윤허하여 말하기를,
"무변이 시상(時象)을 붙좇는 것은 바로 망국의 징조이다. 어찌하여 감히 구습(舊習)을 부리려 하는가? 더군다나 구성임(具聖任)을 칙려(勅勵)한 일을 남덕하 역시 반드시 들었을 것이다. 무신년049) 의 역란(逆亂)이 어찌하여 일어났던가? 그 까닭을 따져 보면 시상(時象)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남덕하로 하여금 만약 그 아비의 원수를 생각하게 한다면 어찌 다만 청주(淸州)의 적만 있겠는가? 이제 도리어 아비의 원수의 근본이 당습에서 연유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난을 평정하여 책훈(策勳)이 된 장신(將臣)과 사이가 좋지 못한 것은 무슨 마음인가? 그의 자급(資級)을 낮추어 청주(淸州)로 정배(定配)하여 남덕하로 하여금 통감(痛感)하여 스스로 면려(勉勵)하게 하라. 하지만 그의 아비가 왕년에 순국(殉國)한 것을 내가 어찌 잊겠는가? 본주(本州)로 하여금 보살펴 주게 하여 내가 충신(忠臣)을 생각하는 뜻을 보이도록 하라."
하였다. 남덕하는 바로 고(故) 충신 남연년(南延年)의 손자인데, 그때의 장신(將臣)인 이삼(李森)과 원수진 혐의가 있어 즐겨 역사(歷辭)하지 않음은 인정과 세리(勢理)에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비국에서 번거로이 임금께 아뢰어 남의 아들을 차마 밟지 못할 땅에 정배(定配)하게 하였으니, 사람들이 모두 애석하게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29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245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 [註 046] 주당(籌堂) : 비변사(備邊司)의 당상.
- [註 047] 곤임(閫任) : 병사(兵使)나 수사(水使)의 직임.
- [註 048] 역사(歷辭) : 수령이 부임할 때 각 관아(官衙)에 차례로 돌아다니며 인사하는 것.
- [註 049] 무신년 : 1728 영조 4년.
원문
○備邊司啓言: "嚴體統, 乃所以尊朝廷也。 武弁之於武將, 體統自別, 而黃海水使南德夏, 與時任籌堂之將臣, 前此不與爲嫌, 而自除閫任, 猝然强以爲嫌, 終不歷辭。 武夫此習, 不可一任其復肆, 宜罷南德夏職, 以懲後弊也。" 上允之, 曰: "武弁之趨附時象, 乃亡國之兆。 焉敢售舊習? 況勅勵具聖任之事, 德夏亦必聞之。 戊申逆亂, 何爲而作也? 究其所由, 乃由時象。 使德夏, 若思其父之讎, 豈但在於淸州之賊乎? 今反不思父讎根本之由於黨習, 崖異於勘亂策勳之將臣, 是何心哉? 降其資, 定配于淸州, 使德夏痛感, 而自礪。 雖然, 渠父之往年殉國, 予豈忘也? 其令本州顧恤, 示予念忠臣之意。" 德夏, 卽故忠臣延年之孫也。 與其時將臣李森, 有讎嫌, 不肯歷辭, 人理固也。 備局煩聞于上, 至使送配於人子不忍蹈之地, 人多惜之。
- 【태백산사고본】 22책 29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245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영조실록29권, 영조 7년 1월 28일 임진 3/4 기사 / 1731년 청 옹정(雍正) 9년
비변사에서 황해 수사 남덕하가 장신에게 하직 인사를 않았다고 하여 파직을 청하다
국역
비변사(備邊司)에서 말하기를,
"체통(體統)을 엄히 하는 것은 바로 조정을 받드는 것입니다. 무변(武弁)은 무장(武將)에 대해 체통이 본디 다른데도 황해 수사(黃海水使) 남덕하(南德夏)는 시임(時任) 주당(籌堂)046) 의 장신(將臣)과 전에는 혐의를 갖지 않았으나 곤임(閫任)047) 을 제수하면서부터 갑자기 혐의를 가져 끝내 역사(歷辭)048) 하지 않았습니다. 무부(武夫)의 이런 습관을 제멋대로 부리도록 내버려 둘 수 없으니, 마땅히 남덕하를 파직하여 후일의 폐단을 징계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윤허하여 말하기를,
"무변이 시상(時象)을 붙좇는 것은 바로 망국의 징조이다. 어찌하여 감히 구습(舊習)을 부리려 하는가? 더군다나 구성임(具聖任)을 칙려(勅勵)한 일을 남덕하 역시 반드시 들었을 것이다. 무신년049) 의 역란(逆亂)이 어찌하여 일어났던가? 그 까닭을 따져 보면 시상(時象)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남덕하로 하여금 만약 그 아비의 원수를 생각하게 한다면 어찌 다만 청주(淸州)의 적만 있겠는가? 이제 도리어 아비의 원수의 근본이 당습에서 연유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난을 평정하여 책훈(策勳)이 된 장신(將臣)과 사이가 좋지 못한 것은 무슨 마음인가? 그의 자급(資級)을 낮추어 청주(淸州)로 정배(定配)하여 남덕하로 하여금 통감(痛感)하여 스스로 면려(勉勵)하게 하라. 하지만 그의 아비가 왕년에 순국(殉國)한 것을 내가 어찌 잊겠는가? 본주(本州)로 하여금 보살펴 주게 하여 내가 충신(忠臣)을 생각하는 뜻을 보이도록 하라."
하였다. 남덕하는 바로 고(故) 충신 남연년(南延年)의 손자인데, 그때의 장신(將臣)인 이삼(李森)과 원수진 혐의가 있어 즐겨 역사(歷辭)하지 않음은 인정과 세리(勢理)에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비국에서 번거로이 임금께 아뢰어 남의 아들을 차마 밟지 못할 땅에 정배(定配)하게 하였으니, 사람들이 모두 애석하게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29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245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 [註 046] 주당(籌堂) : 비변사(備邊司)의 당상.
- [註 047] 곤임(閫任) : 병사(兵使)나 수사(水使)의 직임.
- [註 048] 역사(歷辭) : 수령이 부임할 때 각 관아(官衙)에 차례로 돌아다니며 인사하는 것.
- [註 049] 무신년 : 1728 영조 4년.
원문
○備邊司啓言: "嚴體統, 乃所以尊朝廷也。 武弁之於武將, 體統自別, 而黃海水使南德夏, 與時任籌堂之將臣, 前此不與爲嫌, 而自除閫任, 猝然强以爲嫌, 終不歷辭。 武夫此習, 不可一任其復肆, 宜罷南德夏職, 以懲後弊也。" 上允之, 曰: "武弁之趨附時象, 乃亡國之兆。 焉敢售舊習? 況勅勵具聖任之事, 德夏亦必聞之。 戊申逆亂, 何爲而作也? 究其所由, 乃由時象。 使德夏, 若思其父之讎, 豈但在於淸州之賊乎? 今反不思父讎根本之由於黨習, 崖異於勘亂策勳之將臣, 是何心哉? 降其資, 定配于淸州, 使德夏痛感, 而自礪。 雖然, 渠父之往年殉國, 予豈忘也? 其令本州顧恤, 示予念忠臣之意。" 德夏, 卽故忠臣延年之孫也。 與其時將臣李森, 有讎嫌, 不肯歷辭, 人理固也。 備局煩聞于上, 至使送配於人子不忍蹈之地, 人多惜之。
- 【태백산사고본】 22책 29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2책 245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