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 이탄을 자진하도록 명하다. 대사헌 송인명 등이 이탄의 죄상을 아뢰다
죄인 이탄(李坦)290) 을 자진(自盡)하도록 명하였다. 대사헌(大司憲) 송인명(宋寅明), 집의(執義) 임수적(任守迪), 지평(持平) 조상명(趙尙命), 헌납(獻納) 유엄(柳儼), 정언(正言) 유운(柳運)과 윤종하(尹宗夏)가 아뢰기를,
"역적 이탄(李坦)의 일은 성상께서 이미 일률(一律)을 허락하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연교(筵敎)가 측달(惻怛)하시므로 또한 그것이 은혜와 법(法) 사이에 크게 어긋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성상께서 결단코 윤허하지 않으실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억지로 율명(律名)을 다투느라 시일(時日)을 질질 끌어 이미 시행했어야 할 법을 즉시 거행하지 못하게 한다면, 종사(宗社)의 하루의 근심이 도리어 여기에 있고 이른바 ‘법(法)으로 다툰다.’는 것이 끝내 참으로 임금을 사랑하고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며 참으로 역적을 토주(討誅)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삼사(三司)의 여러 신하들과 충분히 소상하게 의논한 뒤 오늘에는 예궐(詣闕) 진차(陳箚)하여 성상의 가부(加否)를 기다리는 한편, 대론(大論)을 임시로 정지하여 종사(宗社)의 하루의 근심을 풀고나서 물러나 자핵(自劾)하며 끝내 법을 다투지 못한 죄를 받기를 바라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간(司諫) 이춘제(李春躋)가 부박(浮薄)한 의논에 이쪽저쪽을 돌아보다가 갑자기 이의(異義)를 제기하였습니다. 신 등이 비록 무상(務狀)하지마는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 정성이야 어찌 다른 사람보다 못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위로는 능히 성주(聖主)의 들으심을 돌이키지 못하고 아래로는 능히 요석(僚席)의 의논을 통일시키지 못하여 필경에는 나랏일을 그르치고 왕법(王法)을 굽히는 결과가 됨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청컨대 삭파(削罷)를 명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실수(失手)는 저쪽에 있으니, 나에게 무슨 혐의할 것이 있겠는가? 사직(辭職)하지 말라."
하였다. 사간(司諫) 이춘제가 상소하여 말하기를,
"역적 이탄(李坦)이 범(犯)한 것은 어떠한 죄명(罪名)입니까? 나라에 법(法)이 없다면 그만이겠지만 법이 있다면 이것에 시행하지 않고 어디에 시행하겠습니까? 원하건대 왕법(王法)을 시행하소서."
하고, 이어 정유(庭籲)할 때 아무런 이유 없이 서울에 있으면서도 나아가 참여하지 아니한 자와 근기(近畿)에 거주하면서도 들어오지 아니한 자를 적발하여 과죄(科罪)할 것을 청하니, 비답하기를,
"어제 하교(下敎)에 내 뜻을 죄다 말했으니 이처럼 이론(異論)을 제기하는 것이 정성스럽다고 하겠는가? 정성스럽지 않다고 해야 하겠는가? 임금을 섬기는 도리는 다만 마땅히 성심으로써 해야 하는 법이다. 그 혹시라도 문구(文具)만 지키고 심복(心腹)을 터놓은 하교를 본받지 않는다면 성심이 아니다. 앞뒤로 이리저리 돌아보고서 반드시 스스로 이론을 제기하는 것은 성심이 아니니, 이러한 습관을 내가 실로 병통으로 여긴다. 상소의 끝에 말한 일은 지나치다."
하였다. 교리(校理) 조적명(趙迪命)·부교리(副校理) 이현모(李顯謨)·수찬(修撰) 윤광익(尹光益)이 이춘제가 이론을 제기한 것으로 인하여 논의를 정지하고, 인혐(引嫌)하며 앞질러 나갔는데, 대의(大意)는 송인명의 계사(啓辭)와 같았다. 송인명 등이 드디어 합계(合啓)를 정지하고 또 상소하기를,
"신 등이 이미 능히 천청(天聽)을 감동시켜 돌리지 못해 역적의 괴수로 하여금 잠시나마 숨을 쉬게 하였고 또 능히 요석(僚席)을 성실하게 감동시키지 못해 이의(異議)가 터져 나오게 하였습니다. 대론(大論)이 수쇄(收殺)될 기약이 없기에 삼사(三司)에서 서로 의논하여 대론(大論)을 임시로 정지하였으니, 비록 성실한 이 마음을 아는 사람은 알고 있지마는, 전형(典刑)을 무너뜨리고 직책을 저버린 죄는 만번 죽어도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대궐 밖으로 달려나가 석고 대명(席藁待命)291) 하오니, 원하옵건대 신 등의 죄를 다스려 대각(臺閣)을 격려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이미 환하게 알고 있으니, 사직(辭職)하지 말라. 또한 대명(待命)하지도 말라."
하였다. 조적명 등도 역시 상소하여 인혐하였는데, 비답이 또한 같았다. 우부승지(右副承旨) 서종옥(徐宗玉)이 청대(請對)하여 아뢰기를,
"이탄(李坦)의 일은 삼사(三司)에서 논의를 정지하였으니, 마땅히 전지(傳旨)를 받들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자처(自處)하는 것으로 써 내도록 하라."
하고, 명하여 전교(傳敎)를 쓰게 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법(法)이란 것이 조종조(祖宗朝)의 법이고 나 한 사람의 법이 아니기 때문에 억지로 따르지 않을 수가 없지마는 옛날 제왕(帝王)이 이러한 곳에 대해 보전할 수 있는데도 잘 처리하지 못한 경우를 두루 보고서 마음속으로 늘 개탄해 왔다. 나의 덕(德)이 적은 것으로 인해 친족(親族)에게 돈목(敦睦)하는 교화가 나라에 행해지지 아니하여 흉적(凶賊)으로 하여금 구실로 삼게 만들었으니, 통한(痛恨)스런 나머지 목이 메어 능히 다 유시(諭示)할 수가 없다."
하고, 이탄(李坦)이 자진(自盡)할 때 독촉하지 말며 비록 검험(檢驗)하는 것이 구례(舊例)라 할지라도 단지 부관(部官)·의생(醫生)·부리(府吏)만 들어가 검험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21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118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변란(變亂)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왕실-종친(宗親)
○壬申/命罪人坦, 使之自盡。 大司憲宋寅明、執義任守迪、持平趙尙命、獻納柳儼、正言柳運ㆍ尹宗夏啓曰: "逆坦事, 以爲聖上, 已許一律, 筵敎惻怛, 亦未覺其大違於恩法之間。 旣明知聖上, 決不允許, 而强爭律名, 延拖時日, 使旣施之法, 未卽擧行, 則宗社一日之憂, 反在於此, 而其所謂以法爭之者, 終非所以眞愛君眞愛國眞討逆也。 與三司諸臣, 爛熳消詳, 欲於今日, 詣闕陳箚, 以待聖上之可否, 權停大論, 以解宗社一日之憂, 退而自劾, 冀伏終未爭法之罪矣。 司諫李春躋顧瞻浮議, 忽然崖異。 臣等雖無狀, 願忠之誠, 豈下於人? 而上不能回聖主之聽, 下不能齊僚席之議, 畢竟不免爲債國事撓王法之歸。 請命削罷。" 批曰: "所失在彼, 於我何嫌? 勿辭。" 司諫李春躋上疏言: "逆坦所犯, 何等罪名? 國無法則已, 有法則不於此而何施? 願施王法。" 仍請庭籲時, 無故在京, 而不進參者, 居在近畿而不入來者, 摘發科罪, 批曰: "昨日下敎, 悉攄予意, 則若是崖異, 誠乎, 不誠乎? 事君之道, 但當以誠。 其或守文具, 而不體攄心腹之敎, 則非誠也。 顧瞻前後, 必欲自異, 非誠也, 此等之習, 予實病之。 疏末事過矣。" 校理趙迪命、副校理李顯謨、修撰尹光益, 因李春躋崖異停論, 引嫌徑出, 大意與寅明啓同。 寅明等遂停合啓, 又上疏曰:
臣等旣未能格回天聽, 使逆魁假息, 又不能孚感僚席, 使異議橫生。 大論之收殺無期, 三司相議, 權停大論, 雖其斷斷此心, 知者知之, 而壞典刑負職責之罪, 萬死難贖。 逬出闕外, 席藁待命, 願治臣等之罪, 以礪臺閣。
批曰: "已洞知勿辭。 亦勿待命。" 迪命等, 亦疏引批亦同。 右副承旨徐宗玉請對奏, 坦事, 三司停論, 當捧傳旨矣。" 上曰: "以使之自處書出。" 命書傳敎, 略曰:
法者, 祖宗朝法也, 非我一人之法, 故不得不勉從, 而歷觀古昔帝王, 於此等處, 有可保而不善爲者, 心常嘅歎。 因予涼德, 敦親之化, 未行於國, 使凶逆藉口, 痛恨咽塞, 不能盡諭。
命坦自盡時, 勿令督促, 雖檢驗舊例, 只令部官、醫生、府吏入檢。
- 【태백산사고본】 17책 21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118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변란(變亂) / 정론(政論) / 인사(人事) /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