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17권, 영조 4년 4월 24일 갑진 2번째기사
1728년 청 옹정(雍正) 6년
안음의 분속, 함양·거창의 부사로 승격하는 것을 묘당에서 품처하게 하다
영남 안무사(嶺南安撫使) 박사수(朴師洙)가 조정으로 돌아왔는데, 임금이 인견(引見)하고 위유(慰諭)하였다. 박사수가 말하기를,
"예천(醴泉)의 군사 박국지(朴國只)가 조령(鳥嶺)을 지키다가 종기가 터져 거의 죽게 되었으므로 군수(郡守) 서종일(徐宗一)이 집에 돌아가 병을 조리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박국지는 마땅히 지키던 곳에서 죽어야 한다고 하면서 끝내 가지 않고 있다가 그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말았으니, 마땅히 그의 집을 돌보아 구휼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돌보아 구휼하게 하였다. 또 말하기를,
"나학천(羅學川)이 영외(嶺外)에서 맨 먼저 의병(義兵)을 일으켰으니, 마땅히 수용(收用)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또한 옳게 여겼다. 또 청하기를,
"안음(安陰)은 개혁하여 법대로 분속(分屬)시키고 함양(咸陽)·거창(居昌) 두 고을은 모두 부사(府使)로 승격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함양에 절진(節鎭)을 설치하여 거창 등 고을의 군대를 예속시켜 팔량로(八良路)를 방수(防守)하게 하면 뒷날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조처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17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42책 50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변란(變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