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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1권, 영조 3년 4월 11일 정유 1번째기사 1727년 청 옹정(雍正) 5년

장령 이응이 성학·세자 보도·기강 확립·정학 존숭·청렴한 관원의 포상 등에 관해 상소하다

장령 이응(李膺)이 상소하여 6가지 조목을 진달하였다.

"1. 실행(實行)하는 공부를 힘써 성학(聖學)을 밝혀 갈 것.

2. 사부(師傅)를 가리어 저이(儲貳)208) 를 보도(輔導)하게 할 것.

3. 기강(紀綱)을 밝히어 조정을 바로잡을 것.

4. 정학(正學)을 존숭하여 선비들의 추향(趨向)이 일정해지게 할 것.

5. 청렴한 관원을 포장(褒奬)하여 탐오(貪汚)한 풍습을 가다듬게 할 것.

6. 충절(忠節)을 포양(褒揚)하여 퇴패한 풍속을 수습할 것."

이었는데, ‘기강을 밝힌다.’는 것에 말하기를,

"분관(分館)의 적체(積滯)가 3년에 이르는 것은 또한 하나의 세변(世變)입니다. 남위로(南渭老)가 까닭도 없이 요단(鬧端)을 야기(惹起)하고 공공연히 물러나 헐뜯으며, 승부를 겨루는 것으로 계획을 하였고, 한유(韓游)·안식(安栻)의 무리는 억지로 하치않은 혐오로 인하여 기필코 이기려고만 힘쓰고 있습니다. 신은 생각에, 남위로는 마땅히 멀리 귀양 보내야 하고, 한유안식은 마땅히 잡아다가 추문(推問)하여 정죄(定罪)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하고, ‘정학(正學)을 존숭한다.’는 것에 말하기를,

"송시열(宋時烈)을 성묘(聖廟)에 종향(從享)하기를 청한 일을 윤허하기를 청합니다."

하고, ‘청렴한 관원을 포장한다.’는 것에 말하기를,

"고(故) 감사(監司) 강유후(姜裕後)는 청백리(淸白吏)로 뽑혔고, 그의 아들 고 도정(都正) 강석범(姜錫範)은 염근리(廉謹吏)로 뽑혔으며, 고 군수(郡守) 신성중(辛聖重)과 고 통제사(統制使) 민섬(閔暹)은 또한 모두 갑술년209) 의 청백리 선발에 들었었는데도, 모두 시기하여 미워하는 자들에게 저지되었으니, 일체로 포장하고 그들의 자손을 녹용(錄用)하기 바랍니다."

하고, ‘충절을 포양한다.’는 것에 말하기를,

"남한 산성(南漢山城)에서 사절(死節)한 신하 지여해(池汝海)는 마땅히 현절사(顯節祠)에 배향(配享)하고 강도(江都)에서 사절한 신하 심척(沈惕)은 마땅히 충렬사(忠烈祠)에 배향하고서 증직(贈職)을 더하고 시호를 내려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우악하게 비답하여 가납(嘉納)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11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630면
  • 【분류】
    정론(政論) / 왕실(王室) / 사상(思想) / 교육(敎育) / 윤리(倫理) / 인사(人事)

○丁酉/掌令李膺上疏, 陳六條: 一曰懋實工以明聖學, 二曰擇師傅以輔儲貳, 三曰明紀綱以正朝廷, 四曰尊正學以一士趨, 五曰奬廉吏以勵貪風, 六曰褒忠節以振頹俗。 其明紀綱曰:

分館積滯, 至於三年, 亦一世變。 南渭老無端起鬧, 公然退刺, 以角勝爲得計, 韓游安栻輩, 强因小嫌, 必欲務勝。 臣謂南渭老宜施遠配, 韓游安栻, 宜拿問定罪。

其尊正學曰:

請允宋時烈從享聖廟之請。

其奬廉吏曰:

故監司姜裕後, 被選於淸白吏, 其子故都正錫範, 被選於廉謹吏, 故郡守辛聖重、故統制使閔暹, 亦皆入於甲戌淸白之選, 皆爲媢嫉者所枳, 請一體褒尙, 錄其子孫。

其褒忠節曰:

南漢死節臣池汝海, 宜配享於顯節之祠, 江都死節臣沈惕, 宜配享於忠烈之祠, 加贈賜謚。

上優批嘉納。


  • 【태백산사고본】 10책 11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630면
  • 【분류】
    정론(政論) / 왕실(王室) / 사상(思想) / 교육(敎育) / 윤리(倫理) / 인사(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