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실록2권, 영조 즉위년 11월 25일 을축 3/4 기사 / 1724년 청 옹정(雍正) 2년
국장 도감에서 발인 습의 때 대여의 높이에 부족한 흥인문을 고치기를 청하자 그대로 따르라
국역
국장 도감(國葬都監)에서 아뢰기를,
"발인 습의(發靷習儀) 때 대여(大轝)의 높이와 너비를 흥인문(興仁門)에다 견주어 보았더니, 문의 높이가 부족한 것이 거의 2척(尺)이었습니다. 반드시 문지방의 박석(礴石)272) 을 파서 제거한 뒤에야 걸릴 우려가 없겠습니다. 등록(謄錄)을 가져다 상고해 보았더니, 또한 파낸 전례가 있었습니다. 습의하기 전에 청컨대 이 예에 의거해 수치(修治)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註 272] 박석(礴石) : 넓고 얇게 뜬 돌.
원문
영조실록2권, 영조 즉위년 11월 25일 을축 3/4 기사 / 1724년 청 옹정(雍正) 2년
국장 도감에서 발인 습의 때 대여의 높이에 부족한 흥인문을 고치기를 청하자 그대로 따르라
국역
국장 도감(國葬都監)에서 아뢰기를,
"발인 습의(發靷習儀) 때 대여(大轝)의 높이와 너비를 흥인문(興仁門)에다 견주어 보았더니, 문의 높이가 부족한 것이 거의 2척(尺)이었습니다. 반드시 문지방의 박석(礴石)272) 을 파서 제거한 뒤에야 걸릴 우려가 없겠습니다. 등록(謄錄)을 가져다 상고해 보았더니, 또한 파낸 전례가 있었습니다. 습의하기 전에 청컨대 이 예에 의거해 수치(修治)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註 272] 박석(礴石) : 넓고 얇게 뜬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