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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60권, 숙종 43년 12월 7일 정해 2번째기사 1717년 청 강희(康熙) 56년

유학 함일해의 국조 선대 능침에 관한 상소문

강릉(江陵)에서 사는 유학(幼學) 함일해(咸一海)가 상서(上書)하기를,

"국조(國祖) 선대(先代)의 능침(陵寢)이 삼척(三陟)황지(黃池)에 있어 온 지가 이제 3백여 년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도 소재처(所在處)를 분명히 알지 못하였으므로 훌륭한 후손[文孫]들의 효심(孝心)에 얼마나 아픈 감회가 많았겠습니까? 신은 대강 성가(星家)577) 에 통달하였는데, 노동(蘆洞)황지(黃池)에서 묘방(卯方)의 좌향(坐向)인 하나인 큰 무덤을 찾아내었습니다. 그 곳은 산형(山形)과 국세(局勢)로 보아 결단코 등한(等閑)한 분묘(墳墓)가 아니었습니다. 이야말로 억만년토록 왕업을 흥왕시킬 조짐이 매우 명백하니, 삼가 바라건대, 삼척(三陟)의 수신(守臣)으로 하여금 신과 함께 그 곳에 가서 다시 상세히 살피게 하여 주소서."

하고, 또 아뢰기를,

"삼가 희빈(禧嬪)578) 의 묘소(墓所)를 살펴보건대, 용맥(龍脈)은 있으나 혈(穴)이 없고 수법(水法)도 합당하지 못하여 완전한 곳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따라서 땅속의 불안함은 말할 수 없으니 또한 훌륭한 지사(地師)로 하여금 신과 참론(參論)하게 하여 길흉(吉凶)을 조사하게 한 다음 다시 길지(吉地)를 잡으소서. 그렇게 하면 다만 저하(邸下)의 지극한 정리에 유감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실로 국가의 끝없는 복(福)이 될 것입니다."

하였다. 상서(上書)를 봉입(捧入)하니, 임금이 하교(下敎)하기를,

"함일해(咸一海) 상서(上書)의 전편(全篇)에 깔린 주의(主意)는 오로지 아래 조항에 있는 것인데, 삼척(三陟)의 일을 핑계하여 멋대로 진달하였으니, 일이 매우 방자하다. 그리고 감히 작호(爵號)579) 를 썼으니, 또한 매우 절통(絶痛)하다. 이 상서는 도로 내어주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8책 60권 55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68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577]
    성가(星家) : 점성가(占星家). 곧 점성술을 이름.
  • [註 578]
    희빈(禧嬪) : 장희빈(張禧嬪).
  • [註 579]
    작호(爵號) : 희빈(禧嬪)이란 작호.

江陵居幼學咸一海上書言:

國朝先代陵寢, 在於三陟黃池, 今至三百餘載, 猶未明知其在處, 文孫孝思, 幾多疚懷? 臣粗通星家, 蘆洞 黃池, 得一卯向之大塚。 山形、局勢, 決非等閑之墓。 此爲億萬年興王之兆, 不啻明白。 伏願特令三陟守臣, 與臣偕往, 更加審視。

又曰:

伏見禧嬪墓所, 則有龍無穴, 水法又不合, 似非十全之地。 地中之不安, 有不可言。 亦令明師, 與臣參論, 以覈吉凶, 更卜吉地, 則非特邸下至情無憾, 實國家無疆之福。

書入, 上下敎曰: "咸一海上書, 一篇主意, 專在下款, 而假托三陟事, 肆然陳書, 事極放恣, 而敢書爵號, 亦甚絶痛。 此書還出給。"


  • 【태백산사고본】 68책 60권 55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68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