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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49권, 숙종 36년 10월 13일 갑술 1번째기사 1710년 청 강희(康熙) 49년

훈련 대장 이기하가 홍복산·북한산의 성지를 보고 돌아와 아뢰다

훈련 대장(訓鍊大將) 이기하(李基夏)가 명을 받들어 홍복산(洪福山)·북한산(北漢山)의 성지(城址)를 가서 보고 돌아와 아뢰기를,

"홍복산의 지세는 안으로 절험(絶險)의 형세(形勢)가 있고, 밖으로 둘러싸일 형세가 없으므로, 성(城)을 쌓는 데 적합하다고 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단지 사면(四面)의 5리 안이 모두 토산(土山)이어서 돌을 캘 곳이 아주 머니, 돌을 10리 밖에서 가져다가 쌓아야 하므로 일의 공역(功役)이 매우 어려울 것이며, 또 사산(四山)에 나무가 없어서 땔나무를 할 길이 없으니, 군병(軍兵)들의 취사[炊爨]도 또한 의지할 바가 없습니다. 북한산(北漢山)에 이르러서는 인수봉(仁壽峰)·백운대(白雲臺)·만경대(萬景臺) 등의 여러 봉우리가 깎아지른 듯이 우뚝 솟아 있으니, 진실로 이른바 한 사람이 관문(關門)을 지키면, 만 사람이 열지 못하는 지형(地形)입니다. 그리고 이미 돌로 쌓은 구지(舊址)가 있고, 또 산 아래에는 석재(石材)가 많으며, 산골짜기 곳곳에 물이 있는 데다가 수목(樹木) 또한 크게 자란 곳이 많습니다. 도성(都城)과 멀지 않은 곳에 이러한 천험(天險)이 있었는데, 오히려 지금까지 버려두었으니, 매우 애석하게 여길 만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6책 49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372면
  • 【분류】
    군사-관방(關防)

○甲戌/訓鍊大將李基夏, 承命往視洪福北漢城址, 還啓曰: "洪福地勢, 內有絶險之形, 外無圍住之勢, 可合築城云者, 以此故也。 第四面五里之內, 皆是土山, 伐石之處甚遠, 取石於十里之外而築之, 事功甚難。 且其四山濯濯, 樵蘇無路, 軍兵炊㸑, 亦無所賴。 至於北漢仁壽白雲萬景等諸峰, 屹立如削, 眞所謂一夫當關, 萬夫莫開之地。 旣有石築舊址, 山下且多石材, 山谷間處處有水, 樹木亦多有長養處。 都城不遠之地, 有此天險, 而尙今棄置, 殊可惜也。"


  • 【태백산사고본】 56책 49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372면
  • 【분류】
    군사-관방(關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