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일에 대한 상소를 올린 장령 최계옹의 파직을 명하다
장령(掌令) 최계옹(崔啓翁)이 상소하기를,
"하늘과 땅의 위치(位置)가 바뀌지 않으면 군신(君臣)의 의(義)에 폐해지지 않는 것이니, 나라를 가진 자는 부식(扶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열성(列聖)의 유지(遺志)를 본받아서 단종 대왕(端宗大王)의 위호(位號)를 회복하셨으니, 이는 실로 성덕(聖德)의 일입니다. 세조 대왕(世祖大王)께서 상왕(上王)으로 존봉(尊封)하신 뜻이 지극히 극진했었는데, 그 때의 대신들이 그 아름다움을 따르지 못하고 정청(庭請)하고 억지로 간쟁하여, 세조의 어지신 마음으로 하여금 시종(始終)을 보전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신(神)과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오래 되었습니다. 다행하게도 이제 단종이 복위되었으니, 그 때에 정청했던 신하들이 어찌 안연(晏然)하겠습니까? 원하건대 이에 유의(留意)하시고 건단(乾斷)을 내려, 그 때 정청한 대신들을 상고하여 관작(官爵)을 추삭(追削)하고, 또 묘향(廟享)에서 내쳐 하늘에 계신 선왕(先王)의 영혼을 위로하고, 한편으로는 영원한 강상(綱常)의 의리를 부식(扶植)하소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정청했던 신하를 비록 죄는 줄 수 있지만, 묘향(廟享)에서 내치는 것은 미안하지 않겠는가?’라고 하므로, 신이 힐난(詰難)하여 말하기를, ‘육신(六臣)의 충(忠)을 이미 포장(褒奬)하였으니, 정청한 죄를 논하지 않을 수가 없고, 단종을 이미 복위시켰으니, 정청했던 신하들도 묘정(廟庭)에서 편안할 수가 없다. 그들의 직(職)을 깎고, 그의 배향(配享)을 내쳐야만 한갓 전하께서 후세에 할 말이 있게 될 뿐만 아니라, 광묘(光廟)151) 께서 상왕(上王)으로 존봉(尊封)하신 성대한 덕을 크게 발휘할 수가 있다.’ 하였더니, 의심하던 자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신의 사견(私見)이 아니라, 바로 한 나라의 공공(公共)한 의논입니다."
하였다. 정원(政院)에서 아뢰기를,
"최계옹(崔啓翁)이 감히 선조(先朝) 때의 일을 논했으니, 잘못되고 망솔(妄率)함을 면치 못하였으나, 대소(臺疏)이기 때문에 들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최계옹을 파직하라 명하였다.
삼가 살펴보건대, 정청(庭請)했던 대신들은 참으로 윤리(倫理)에 어두웠고, 의(義)가 없는 죄가 있다. 그러나 춘추(春秋)의 의리에 휘친(諱親)152) 하는 예가 있으므로, 선조(先朝) 때의 일은 오늘날 신자(臣子)가 감히 의논할 바가 못됨이 있으니, 최계옹의 말은 참으로 망령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 사람의 소당(疏讜)153) 함은 가상하다 하겠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39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8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사(宗社)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註 151]
○壬子/掌令崔啓翁上疏曰:
天地之位不易, 則君臣之義不廢, 有國者不可不扶植之也。 殿下體列聖之遺志, 追復端宗大王位號, 此實盛德事也。 粤我世祖大王, 尊奉上王之意, 至矣盡矣, 其時大臣, 不能將順其美, 顧乃庭請而强爭之, 使世祖仁孝之心, 不得全於終始, 神人之痛, 厥惟舊矣。 幸今端宗復位, 則其時庭請之臣, 安得晏然而已? 願留睿意, 夬揮乾斷, 考其時庭請大臣, 追削官爵, 又黜於廟享, 一以慰先王在天之靈, 一以扶萬古綱常之義。 或謂庭請之臣, 雖可罪, 而黜廟, 無乃有未安耶? 臣難之曰: "六臣之忠, 旣許褒奬, 則庭請之罪, 不可不論; 端宗旣復正位, 則庭請之臣, 不可安於廟庭。 削其職, 黜其享, 不獨殿下, 有辭後世, 大有發揮於光廟尊奉上王之盛德也。" 疑者乃解。 此非臣私見, 乃一國公共之論也。
政院啓: "啓翁敢論先朝事, 未免謬戾妄率, 而係是臺疏, 不得不捧入。" 上命罷啓翁職。 謹按庭請大臣, 誠有昧倫蔑義之罪矣。 然而《春秋》之義, 亦有諱親之例, 先朝之事, 有非今日臣子所敢議者。 啓翁之言, 固妄矣, 而其人之踈讜, 亦可尙也。
- 【태백산사고본】 46책 39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40책 8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종사(宗社) /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