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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37권, 숙종 28년 10월 3일 경진 4번째기사 1702년 청 강희(康熙) 41년

좌참찬 이여가 지어 바친 교명문의 내용

교명문(校命文)에 이르기를,

"왕(王)은 말하노라. 왕화(王化)의 근본은 내치(內治)에서 힘입고, 종사(宗祀)의 중요함은 공승(共承)에서 기대하였다. 그러므로 건도(乾道)는 홀로 이루어질 수 없고, 곤정(壼政)은 잠시라도 비워둘 수 없으니, 인륜(人倫)의 처음을 근신함이며 감히 궁실(宮室)의 편안함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이장(彝章)을 따라서 욕전(縟典)을 거행하는 것이다. 아! 그대 김씨(金氏)는 세신(世臣)의 집안으로 일컬어졌고, 증사(曾沙)483) 의 상서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유한(幽閑)하고 정정(貞精)한 몸가짐은 훌륭한 자질(資質)로 태어났음이며, 온순하고 혜신(惠信)한 행실은 일찍이 휘음(徽音)을 드러내었다. 중전(中殿)의 결위(缺位)를 이으려면, 마땅히 명문(名門)에서 덕(德)있는 이를 골라야 하는데, 이미 황상(黃裳)의 길함484) 에 적합하니, 적유(翟褕)485) 의 존귀(尊貴)함에 합당하다. 거북점을 참고(參考)하여도 화합하여 복종하고, 경사(卿士)들과 의논하여도 모두 마땅하다 하였다. 한 사람이 가정을 바르게 다스리면 온 천하(天下)가 평정(平定)될 것이니, 이는 옛 성왕(聖王)이 먼저 한 것이며, 열 사람의 어진 신하(十亂臣)486) 가운데 부인(婦人)이 참여하였으니, 거의 충량(忠良)한 보좌(補佐)를 의뢰하였다. 이에 신하(臣下) 의정부 좌의정 이세백(李世白)과 예조 판서 김진귀(金鎭龜)를 보내, 길일(吉日)을 가려서 의례(儀禮)를 갖추게 하고, 금보(金寶)와 옥책(玉冊)을 주어 그대를 책봉(冊封)하여 왕비(王妃)를 삼으니, 그대는 마땅히 음교(陰校)를 힘써 닦고 외화(外和)를 도와서 선포(宣布)할 것이며, 인사(禋祀)를 받들 때는 숙야(夙夜)의 정성을 다할 것이며, 원량(元良)을 사랑할 때는 고복(顧復)하는 사랑을 이룰 것이다. 주(周)나라 시(詩)에서 갈류(葛藟)487) 를 읊은 것 같이 아랫사람을 은총(恩寵)으로 대할 것이며, 제(齊)나라 침실(寢室)에서 계명(鷄鳴)488) 을 알리는 것 같이 나를 깨우쳐 주는 데 게으름이 없어야 할 것이다. 아! 오직 공검(恭儉)하여야 부귀(富貴)를 지킬 수 있고, 오직 우로(憂勞)하여야 편안함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상복(象服)이 이에 빛나니 반드시 다복(多福)하여 영원히 편안할 것이고, 보명(寶命)은 쉽사리 얻을 수 없으니 끝까지 명예를 누리도록 힘쓰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이에 교시(校示)하니, 의당 자세히 알라."

하였다. 【좌참찬(左參贊) 이여(李畬)가 지어서 바쳤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37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700면
  • 【분류】
    왕실(王室) / 어문학(語文學)

  • [註 483]
    증사(曾沙) : 춘추 시대(春秋時代)에 사록(沙麓)이 무너지니 복자(卜者)가 말하기를, "645년 뒤에 반드시 성녀(聖女)가 난다." 하였는데, 한(漢) 원제(元帝)의 비(妃) 원후(元后)가 이곳에서 출생했다는 곳.
  • [註 484]
    황상(黃裳)의 길함 : 《주역(周易)》 곤괘(坤卦) 육오(六五)의 효사(爻辭) 황상원길(黃裳元吉)로, 왕후(王后)의 정위(正位)를 뜻함.
  • [註 485]
    적유(翟褕) : 붉은 비단에 꿩의 깃으로 장식한 왕비의 옷.
  • [註 486]
    열 사람의 어진 신하(十亂臣) : 주(周) 무왕(武王)의 어진 신하 열 사람을 말한 것으로, 즉 주공단(周公旦)·소공석(召公奭)·태공망(太公望)·필공(畢公)·영공(榮公)·태전(太顚)·굉요(閎夭)·산의생(散宜生)·남궁괄(南宮括)·문모(文母:邑姜).
  • [註 487]
    갈류(葛藟) : 《시경(詩經)》 주남(周南)의 규목장(樛木章)에, 후비(后妃)가 투기하는 마음이 없이 아랫사람을 잘 대하므로 뭇 첩(妾)이 그 덕(德)을 칭송하며 즐거워 한 것.
  • [註 488]
    계명(鷄鳴) : 《시경(詩經)》 제풍(齊風)의 계명장(鷄鳴章)에, 왕(王)이 황음(黃淫)하자 현비(賢妃)가 새벽에 벌써 닭이 울었으니, 일찍 일어나 정청(政廳)에 나가기를 재촉한 것.

○敎命文:

王若曰, 王化之原, 寔資於內治; 宗祀之重, 須待於共承。 故乾道未能獨成, 而壼政不可暫曠。 所以謹人倫之始, 非敢懷宮室之安。 爰率彝章, 式擧縟典。 咨爾金氏, 家推喬木, 符著曾沙。 幽閑貞靜之儀, 生稟令質; 婉嫕惠信之行, 夙彰徽音。 屬缺位於中闈, 宜選德於右族。 旣叶黃裳之吉, 合膺翟褕之尊。 參以龜筮而協從, 謀及卿士而咸允。 一正家而天下定矣, 斯聖王之所先; 十亂臣而婦人與焉, 庶良佐之是賴。 玆遣臣議政府左議政李世白、禮曹判書金鎭龜, 涓吉備儀, 授以金寶、玉冊, 冊爾爲王妃。 爾宜勉修陰敎, 輔宣外和。 奉禋祀則盡夙夜之虔, 慈元良則致顧復之愛。 如詩之詠葛藟, 逮下以恩; 如寢之報鷄鳴, 警予毋怠。 於戲! 惟恭儉可以守貴富, 惟憂勞可以保安康。 象服斯煌, 期永綏於多福; 寶命不易, 可無勖於終譽? 故玆敎示, 想宜知悉。 【左參贊李畬製進。】


  • 【태백산사고본】 43책 37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700면
  • 【분류】
    왕실(王室) / 어문학(語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