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녀 숙정·숙영·축생 등을 모두 결안 취초하고 군기시 앞길에서 참형시키다
대신과 금부 당상(禁府堂上)이 국좌(鞫坐)를 내병조(內兵曹)에 설치하였다. 죄인 강례(絳禮)가 공초(供招)하기를,
"제가 대궐에 들어간 지가 지금 이미 7년이 되었습니다. 철생(鐵生)이 한 달마다 두세 번씩 버드나무 상자를 가지고 희빈에게로 와서 전하였는데, 혹은 ‘무녀(巫女)의 집에서 왔다.’고 하기도 하고, 혹은 ‘장씨 본댁(本宅)에서 왔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서찰은 철생이 간혹 1, 2일 만에 간혹 3, 4일 만에 와서 희빈에게 전하였는데, 혹은 ‘무녀의 집에서 왔다.’고 하고, 혹은 ‘장씨 본댁에서 왔다.’고 하였습니다. 버드나무 상자와 서찰은 희빈이 내보낸 것이 또한 들여보낸 수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만 철생과 창차비(窓差備)에게 전해주었을 뿐이고, 봉한 물건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하고, 몽렬(夢烈)이 공초하기를,
"저는 희빈의 세답방(洗踏房)의 하인으로서, 궁 밖에서 버드나무 상자와 서찰을 들여오기도 하고, 때때로 간혹 궁 안팎으로 내보내거나 들여보내기도 하였으나, 능히 그것이 어느 곳에서 오고 어느 곳으로 가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버드나무 상자 위의 표지(標紙)를 본 적이 있는데, 혹은 장의동(壯義洞)이라고 쓰기도 하고, 혹은 중부동(中部洞)이라고 쓰기도 하였습니다. 장의동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하나, 중부동은 곧 숙정(淑正)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봉한 물건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하니, 국청에서 아뢰기를,
"죄인 축생(丑生)과 오례(五禮)와 자근례(者斤禮)는 자복을 한 뒤에도 혹 다시 물어 볼 단서가 있을까 염려스러웠으므로, 우선 처단하지 말자는 뜻을 탑전(榻前)에서 정탈(定奪)286)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 죄인들을 차례로 법대로 처단하고 다시 더 기다릴 일이 없으니, 아울러 즉시 결안 취초(結案取招)하고, 율에 따라서 시행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국청에서 아뢰기를,
"철생·신월·순례 등은 형벌을 더한 뒤에 문목(問目)의 사연(辭緣)을 거의 다 바로 공초하였으나, 철생은 ‘나는 봉한 물건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숙정의 공초에서도 또한 ‘혹은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비록 반드시 그 정상을 알았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겠지만, 기도하는 쌀과 찬을 이미 자기가 맡아가지고 갔으며, 흉한 잡물(雜物)을 묻을 때에도 또한 왕래하며 전하여 들여 보내어 그 일을 도왔으니, 비록 정범(正犯)과 일체로 처단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알았거나 몰랐거나를 막론하고 옥사의 체모에 있어서 끝내 용서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신월·순례는 당초 심문한 바를 그들 자신이 범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으나, 그가 또한 신사(神祀)를 참견(參見)하였다고 공초하였으며, 신월이 서찰을 전한 것도 또한 현저한 정상이 있는 것은 아니니, 우선 그대로 가두어 두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다른 죄인은 한꺼번에 계품(啓稟)하여 처리하겠으나, 강례·몽렬은 이미 자복을 한 죄인들에 의해 끌려 들어왔는데, 그 말의 허실을 알고자 하여 다만 잡아오도록 청하였을 뿐입니다. 그들이 공초한 사연을 살펴보건대, 서찰을 출납한 것을 감히 발명(發明)하지는 못하였는데, 또한 명백하게 의심할 만한 흔적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형문(刑問)을 청하는 것은 이미 몹시 어려운 데 관계되고 국옥(鞫獄)의 체모도 무거우니, 또한 감히 마음대로 방송(方送)을 청하지도 못하겠습니다. 성상께서 결정하심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철생은 비록 정범(正犯)과 일체로 처단할 수가 없다 하더라도 결코 죽음을 용서해 주기 어렵다. 결안 취초하고 율에 따라서 처단하라. 강례와 몽렬은 아울러 방송하라. 신월과 순례의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무일(武一)을 잡아오니, 납초(納招)하기를,
"작년 11월 초와 그믐 사이에 두 번 태자방(太子房)의 집에서 신사(神祀)를 행하였는데, 새로 신이 내린 무녀(巫女)가 그 일을 주관하였습니다. 그리고 상전(上典)의 첩이 앞으로 나갔으므로 저도 또한 가서 구경하였으나, 밖에서 들여다보았을 뿐이요, 들어가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떠어떠한 사람들이 참여하였는지와 기도한 말들을 전혀 알지를 못합니다."
하자, 국청에서 아뢰기를,
"이번의 무일은 곧 이수장(李壽長)이 공초한 가운데 말한 이 마직(李馬直)이란 자입니다. 그러나 그가 공초한 말을 살펴보면 옥학신(玉學臣)과 다를 바가 없으니, 한꺼번에 계품(啓稟)하여 처리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국청에서 의논하여 아뢰기를,
"여러 죄인들 가운데 차례대로 법을 시행한 자 이외에 이수장과 정이(貞伊)는 태자방 무녀의 아들과 딸입니다. 그들이 바른대로 공초한 것으로 인하여 옥사의 정상이 비로소 드러났는데, 비록 그들 자신이 간범(干犯)한 일은 없다 하더라도 흉악한 역모를 기도(祈禱)하는 정상은 이미 보았음에도 엄하게 심문한 뒤에야 비로소 발고하였으니, 그 정상을 알고도 앞서 고하지 아니한 죄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신월과 순례는 숙정의 계집종으로서, 신사를 행할 때 따라가 참여하였던 것이니, 비록 그 정상과 범죄가 조금 가볍다 하더라도 감사(減死)하여 죄를 정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을 듯합니다. 무녀 열이(烈伊)는 기도할 때에 음흉한 정상이 비록 발각되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그 신당(神堂)의 의복을 모두 그의 집에 옮겨 두었으니, 오례(五禮) 등이 중형을 받은 뒤에 마땅히 징치(懲治)하여 먼 곳으로 유배하는 방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형조로 이송(移送)하여 법에 따라서 처단하게 하소서. 일렬(一烈)은 여러번 죄인의 공초에 나왔으나 여러 죄수들을 추핵(推覈)할 때 따로 흉악한 역모에 참여한 흔적이 없으며, 이준일(李俊一)은 처음에 태자방의 무녀의 지아비였으므로 혹시라도 빙문(憑問)할 단서가 있을까 생각하여 단지 잡아다가 가두었을 뿐입니다. 지금은 사건의 단서가 모두 드러났으며, 다시 물어볼 만한 일도 없습니다. 옥학신과 무일은 숙정이 신사에 기도할 때에 비록 ‘따라갔다.’라고 하나, 이미 여복(女僕)과는 달랐으며, 같이 참여하여 기도한 일은 없었던 듯합니다. 위의 네 사람 등을 아울러 참작하여 분간(分揀)한다면, 아마도 적당한 방도를 얻을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숙정·숙영·축생·오례·자근례 등은 모두 결안 취초(結案取招)하고 군기시(軍器寺)의 앞길에서 참형(斬刑)에 처하였으며, 철생은 당현(堂峴)에서 참형에 처하였다. 이수장과 정이·신월·순례·열이 등은 형조에 이송하였으며, 일렬·이준일·옥학신·무일 등은 방송(放送)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정국(庭鞫)을 파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0책 35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619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궁관(宮官) / 사법-행형(行刑) / 정론-정론(政論)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286]정탈(定奪) : 임금의 재결(裁決).
○大臣、禁府堂上, 設鞫坐于內兵曹。 罪人絳禮招曰: "身入闕中, 今已七年矣。 鐵生每一月二三番, 持柳箱來傳禧嬪處, 而稱以或自巫家來, 或自張本宅來云。 書札, 鐵生或間一二日, 或間三四日來傳禧嬪處, 而或自巫家來, 或自張本宅來云。 柳箱書札, 自禧嬪處出送, 亦如入去之數, 而身則只是傳給於鐵生及窓差備, 封內之物, 專不知得。" 夢烈招曰: "身以禧嬪洗踏房下人, 自外入來柳箱及書札, 時或出納於內外, 而未能詳知其某處來某處去, 而時見柳箱上標紙, 或書壯義洞, 或書中部洞, 而壯義洞則不知何人所居, 中部洞則乃淑正家云, 而封內之物, 專不知得。" 鞫廳啓曰: "罪人丑生、五禮、者斤禮承服之後, 或慮有更問之端, 姑勿處斷之意, 定奪于榻前矣。 今則諸罪人等, 次第正法, 更無等待之事, 竝卽結案取招, 照律施行何如?" 答曰: "依啓。" 又啓曰: "罪人鐵生、信月、順禮等加刑之後, 問目辭緣, 幾盡直招, 而鐵生則渠以封內之物, 知不得爲言。 淑正之招, 亦以爲或可知或不知, 則雖難遽斷以必知其情, 祈禱米饌, 旣已擔當持去, 埋凶雜物, 亦又往來傳納, 以助其事, 則雖不可與正犯, 一體科斷, 勿論其知與不知, 其在獄體, 似難終貸。 信月、順禮則當初所問, 非爲其身犯, 渠亦以參見神祀爲招, 而信月之傳書, 亦非有現著情節, 似當姑爲仍囚, 他罪人一時稟處。 絳禮、夢烈則旣爲承服罪人所援引, 欲知其言之虛實, 第爲請拿矣。 觀其招辭, 書札出納, 不敢發明, 而亦無明白可疑之迹。 遽爾請刑, 旣涉重難, 鞫獄體重, 亦不敢擅請放送。 上裁何如?" 答曰: "鐵生雖不可與正犯一體科斷, 決難貸死, 結案取招, 照律處斷。 絳禮、夢烈竝放送。 信月、順禮事依啓。" 武一拿來, 納招曰: "上年十一月初及晦間, 再行神祀於太子房家, 而新降巫女主事。 上典妾進去, 身亦往觀光, 而自外窺見而已, 不得入見, 故某某人來參及祈禱說話, 全不知得" 云。 鞫廳啓曰: "今此武一, 卽李壽長招內所謂李馬直者, 而觀其招辭, 與學臣無異, 一時稟處何如?" 答曰: "依啓。" 鞫廳議啓曰: "諸罪人等, 次第正法者外, 李壽長、貞伊, 以太子房巫女之子與女。 因其直招, 獄情始露, 而雖無身自干犯之事, 旣見祈禱凶逆之狀, 嚴訊之後, 始乃發告, 其知而不首之罪, 在所難逭。 信月、順禮, 以淑正婢子, 隨參於神祀之時, 則雖其情犯差輕, 減死定罪, 恐不可已。 巫女烈伊, 祈禱時陰凶情節, 雖不發覺, 竝其神堂衣服, 而移置其家, 則五禮等致辟之後, 亦當有懲治逬遠之道。 竝移送刑曹, 照法勘斷。 一烈則累出於罪人之招, 而諸囚推覈之際, 別無凶謀參涉之跡, 李俊一則初以太子房巫女之夫, 慮或有憑問之端, 第爲拿囚矣。 今則事端盡露, 更無可問之事。 學臣、武一則淑正神祀時, 雖曰隨往, 旣與女僕有異, 似無同參祈禱之事。 右四人等, 竝爲參酌分揀, 恐或得宜。" 答曰: "依啓。" 淑正、淑英、丑生、五禮、者斤禮等, 竝結案取招, 處斬于軍器寺前路, 鐵生斬于堂峴。 移送李壽長、貞伊、信月、順禮、烈伊等於刑曹, 放送一烈、李俊一、玉學臣、武一等。 遂罷庭鞫。
- 【태백산사고본】 40책 35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619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궁관(宮官) / 사법-행형(行刑) / 정론-정론(政論)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