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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33권, 숙종 25년 5월 24일 계사 1번째기사 1699년 청 강희(康熙) 38년

좌의정 최석정이 과거·균전·양역·군역 등의 폐단에 대해 주달하다

대신(大臣)과 비국(備局)의 제신(諸臣)들을 인견하였다. 좌의정(左議政) 최석정(崔錫鼎)이 주달(奏達)하기를,

"신이 지난번 책자(冊子)를 올려 의논드렸더니, 영부사(領府事) 남구만(南九萬)은 말하기를, ‘비변사(備籩司)는 명실(名實)이 맞지 않으니 당연히 고쳐야 하나, 모든 일은 실상을 힘써야지 헛된 것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명칭을 고친다 하더라도 실상과 부합되지 않는다면, 변통(變通)함에 있어 유익함이 없습니다. 대간(臺諫)의 피혐과 체직이 잦은 데 대한 변개(變改) 또한 폐단이 있습니다. 재랑(齋郞)에 대한 일은 승륙(陞六)090) 한 뒤 침체되면, 또 장차 지금 참하(參下)의 폐단과 같게 됩니다. 과거(科擧)에 대한 일은 인재를 얻는 것이 오직 식년시(式年試)에 있는데, 먼 지방에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불학 무식(不學無識)한 사람을 많이 뽑고 있고, 무과(武科)도 강서(講書)를 해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명경과(明經科)는 마땅히 자(子)·오(午)·묘(卯)·유(酉)가 드는 해에 보이되, 사서(四書)와 일경(一經)을 강하게 하고, 무과는 그 액수를 간략하게 하여야 합니다. 강서(講書)로 시사(試士)함에 있어서는 표문(表文)·전문(箋文)으로 하지 말고 논책(論策)을 자주 출제(出題)해야 합니다. 균전(均田)에 대해서는 외방 각영(各營)의 사속(私屬)들도 의당 아울러 충액(充額)시켜야 합니다. 호포(戶布)에 대해서는 균전사(均田使)를 차송하여야 하고, 궁장(宮庄)의 면세(免稅)는 일체 혁파시키되, 호조(戶曹)로 하여금 면세하는 숫자를 헤아려 지급하게 해야 합니다. 양역(良役)에 대해서는 외방 각영(各營)의 사속(私屬)들도 의당 아울러 충액(充額)시켜야 합니다. 호포(戶布)에 대해서는 이를 창립하여 시행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군제(軍制)에 대해서는 본병(本兵)으로 하여금 훈국(訓局)을 겸하게 할 것이며, 진관법(鎭管法)은 이해(利害)를 분명히 알아야 바야흐로 제도(制度)를 정할 수가 있습니다. 청인(淸人)·왜인(倭人)의 풍속같이 모두 군액(軍額)에 들게 된다면 더없이 축하할 일이겠지만, 우리 나라의 피폐한 백성들은 교묘하게 첨정(簽丁)을 피하고 있으니, 반드시 백성들로 하여금 기꺼이 군대가 되게 한 다음에야 변통시킬 수 있습니다. 금위(禁衛)는 혁파해도 되겠지만, 속오(束伍)에 이르러서는 액수(額數)를 감면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였고, 영돈녕(領敦寧) 윤지완(尹趾完)은 말하기를, ‘비변사(備邊司)와 대피(臺避)에 대해서는 마땅히 모두 변통시켜야 합니다. 국가에서 선비를 뽑음에 있어 오로지 사륙문(四六文)091) 만을 숭상하는데, 먼 지방 사람이 바라는 것은 단지 식년시(式年試)뿐이니, 경솔하게 고칠 수 없을 듯합니다. 균전(均田)에 대해서는 백성들이 조금 소복(蘇復)되기를 기다려 의논해서 시행해야 합니다. 호포(戶布)를 경군(京軍)의 경우에 변통시키는 일은 소견이 같지 않아서 감히 망령되게 의논하지 못하겠습니다. 속오법(束伍法)과 진관법(鎭管法)에 대해서는 지금 갑자기 시행하기가 어렵지만, 반만 감해도 오히려 10만의 군중을 쓸모 있는 군대로 만들 수가 있으니, 쓸모 없는 군대보다 낫습니다.’ 하였고, 판부사(判府事) 윤지선(尹趾善)은 말하기를, ‘비변사는 마땅히 변개(變改)해야 하는데, 대간(臺諫)이 각기 아뢰는 것은 뒷 폐단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참하관(參下官)은 상세히 헤아려 변동시켜야 합니다. 명경과(明經科)092) 는 반드시 향유(鄕儒)들의 기대를 저버리게 될 것이니, 갑자기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균전과 군제(軍制)에 대해서는 절목(節目)을 강론하여 시행해야 됩니다. 호포(戶布)는 제일의 양법(良法)입니다.’ 하였습니다."

하였는데, 임금이 입시한 대신과 제신들에게 각각 소견을 진달하게 하였다. 어떤 사람은 아무 일은 마땅히 행해야 된다고 하기도 하고, 아무 일은 행해서는 안 된다고 하기도 하였는데, 대체적인 것은 모두 갑자기 변통시키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내용이었다. 임금이 조용히 강구(講究)하라고 명하니, 사간(司諫) 이희무(李喜茂)가 의논하기를,

"근년에 공물 주인(貢物主人)093) 이 받을 공물가(貢物價)를 전포(錢布)로 대신 지급하는데, 그 값을 정한 것이 시가(市價)에 의하지 않기 때문에 이미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다가 관리들이 과외(科外)로 침범하여 어지럽히며 여러 가지 잡물(雜物)을 다방면으로 차용할 것을 요구하는가 하면, 가사(家舍)까지 차용하여 여러 달을 묵고 있어 포진(鋪陳)과 시유(柴油)를 날마다 진배(進排)해야 하므로, 주인(主人)들이 그 고통을 견뎌내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계해년094) 에 공물가를 양감(量減)하고서 과외(科外)의 침탈에 대한 폐단을 모두 없앴으나, 그것은 아직 복구(復舊)되지 않았는데, 침탈만 더욱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흉년을 당하여 원망이 거리에 가득하니, 공물 아문(貢物衙門)의 제조(提調)로 하여금 낭속(郞屬)들을 엄히 신칙하여 폐습(弊習)을 막고, 일체 계해년의 정식(定式)에 따라 시행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또 논하기를,

"각사(各司) 창고의 미포(米布)에 대한 출납(出納)을 대감(臺監)095) 으로 하여금 감시하게 한 데에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혜청(宣惠廳)은 사체가 각사와 같지 않아서 청대(請臺)096) 하는 법규가 없기 때문에, 해당 낭청(郞廳)이 독자적으로 출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곡(斛)에 차지 않는 썩은 쌀로 석수(石數)를 계산하여 충급(充給)하므로, 주인(主人)들이 원통함을 품고 있으나 호소할 데가 없습니다. 청컨대 지금부터는 양창(兩倉)의 예(例)에 따라 인원(人員)을 갖추어 개좌(開坐)097) 하게 하고, 공물가를 지급할 적에는 각사의 낭속(郞屬)들로 하여금 입회하여 감시케 함으로써 정식(定式)대로 시행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각별히 신칙하여 드러나는 대로 논죄하도록 하라."

하였다. 세 번 아뢰자, 해청(該廳)에 명하여 품처(稟處)하게 하니, 선혜청에서 복계(覆啓)하기를,

"특별히 새로운 법규를 창설하는 것은 실효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였는데, 버려두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33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530면
  • 【분류】
    군사-중앙군(中央軍) / 인사-관리(管理) / 인사-선발(選拔)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군역(軍役) / 농업-전제(田制)

  • [註 090]
    승륙(陞六) : 7품 이하의 벼슬아치가 6품으로 올라가는 것.
  • [註 091]
    사륙문(四六文) : 한문(漢文) 문체의 한 가지. 사자구(四字句)와 육자구(六字句)를 되풀이하여 대구법(對句法)을 쓴 미문(美文)임. 위(魏)·진(晋) 시대에 성행하였고, 제(濟)·양(梁) 시대에 심약(沈約) 등에 의하여 전성 시대를 이루었으며, 당(唐)나라 초기까지 유행하였음. 변려문(駢儷文).
  • [註 092]
    명경과(明經科) : 조선조 때 식년 문과(式年文科) 초시(初試)의 한 분과. 시험 과목은 오경(五經) 중 춘추의(春秋義)를 제외한 사경(四經)과 사서(四書) 중 한 편을 시험하였음.
  • [註 093]
    공물 주인(貢物主人) : 나라에 공물(貢物)을 먼저 바치고 그 값을 받을 때 이자까지 쳐서 받던 사람. 이를 위해 공계(貢契)를 만들어 그 계원이 됨.
  • [註 094]
    계해년 : 1683 숙종 9년.
  • [註 095]
    대감(臺監) :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 [註 096]
    청대(請臺) : 각 관아에서 섣달 그믐께 사무를 마치고 창고(倉庫)를 봉해 둘 때에 사헌부(司憲府)의 관원을 불러 검사를 받던 일.
  • [註 097]
    개좌(開坐) : 좌기(坐起)하는 것.

○癸巳/引見大臣、備局諸臣。 左議政崔錫鼎奏曰: "臣以頃上冊子就議, 則領府事南九萬以爲: ‘備邊司名實不稱, 在所當改, 而凡事務實不以虛。 今雖改名, 不能副實, 則無益於變通。 臺諫避遞頻數, 而變改亦有弊。 齋郞事, 陞六後積滯, 又將如今參下之弊。 科事則得人惟在式年, 而爲悅遐方, 多取不學無文之人, 武科亦多不解講書者。 明經宜以子、午、卯、酉, 講四書、一經, 武科簡其額數。 取以講書試士, 勿以表、箋, 數出論策。 均田則差送均田使, 宮庄免稅, 一倂革罷, 使戶曹量給免稅之數。 良役則外方各營私屬, 宜倂充額。 戶布則有難創行。 軍制則訓局使本兵兼之, 鎭管之法, 必的知利害, 方可定制。 倭人俗, 一入軍額, 莫不相賀, 我國疲氓, 巧避簽丁。 必使民樂爲軍然後, 可以變通, 而禁衛或可罷, 至於束伍, 不必減額。’ 云。 領敦寧尹趾完以爲: ‘備邊司、臺避, 宜皆變通, 而國家取士, 專尙四六, 遐方之人所望, 只在於式年, 恐不可輕改。 均田, 宜待民稍蘇而議行。 戶布、京軍變通事, 所見不同, 不敢妄議。 束伍、鎭管之法, 今難猝行, 而一半減之, 猶爲十萬衆有用之軍, 勝於無用立卒。’ 云。 判府事尹趾善以爲: ‘備邊宜變改, 臺諫各啓, 恐有後弊。 參下官宜詳量變通。 明經科必失鄕儒之望, 不可猝變。 均田、軍制, 宜講行節目。 戶布爲第一良法。’ 云矣。" 上令入侍大臣、諸臣, 各陳所見。 或言某事當行, 或言某事不可行, 而大抵皆以猝然變通爲難, 上命從容講究。 司諫李喜茂論: "比年貢物主人所受之價, 以錢布代下, 而折定亦不一依市直, 已不能料生。 官吏科外侵擾, 種種雜物, 多般求借, 借寓家舍, 累月淹滯, 鋪陳柴油, 逐日進排, 主人輩困苦難堪。 癸亥年間, 量減貢物所受之價, 盡除科外侵擾之弊, 而旣未復舊, 侵漁較甚。 況當飢荒, 怨詈盈街。 請令貢物衙門提調, 嚴飭郞屬, 俾杜弊習, 一依癸亥定式施行。" 上從之。 又論: "各司倉庫米布出納, 令臺監監視, 意有所在, 而宣惠廳事面, 與各司不同, 曾無請臺之規, 故該郞獨自出納。 以不滿斛之朽米, 計石充給, 主人輩含冤無告。 請自今依兩倉例, 備員開坐, 貢物給價之際, 令各其司郞屬, 眼同監視, 定式施行。" 上答以各別申飭, 隨現論罪。 及三啓, 命該廳稟處。 宣惠廳覆啓以爲, 別創新規, 恐無實效, 置之。


  • 【태백산사고본】 36책 33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530면
  • 【분류】
    군사-중앙군(中央軍) / 인사-관리(管理) / 인사-선발(選拔)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군역(軍役) / 농업-전제(田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