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의정 최석정이 청나라 사신 도시랑이 어전에 바친 명첩과 봉서를 올리다
우의정 최석정(崔錫鼎)이 치계하기를,
"도시랑(陶侍郞)이 상면하기를 청하여 만나 글로써 문답하였는데, 그 중 긴요한 문제는 사상(私商)들이 쌀과 물화(物貨)를 판매하는 항목에 있었습니다. 신이 답하기를, ‘예부(禮部)의 자문(咨文) 가운데 사상들의 무역과 판매는 금지한다는 등의 말과 서로 틀리지 않는가? 그러나 이미 황상께 상주했다고 하니 지금 마땅히 국도(國都)에 품주(稟奏)해야 하지만, 다만 공사간에 은화(銀貨)가 이미 바닥났으므로 값을 마련하기 어려울 듯하다.’ 하였습니다. 이튿날 신이 이미 영접과 사은을 끝냈으니 마땅히 돌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글을 써서 보였더니, 이리저리 이야기를 하며 아직 들어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사상들이 가지고 온 쌀 1만여 석과 각종의 물화는 비록 그 수량과 품목을 말하지 않았으나, 명색이 이미 복잡하고 많아서 비록 백성을 모아 교역한다 하더라도 모두 사기는 어렵습니다. 해운미(海運米)의 값이 당초에는 육운미(陸運米)보다 약간 쌀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이부(吏部)에서 가정(假定)한 말이 반드시 적실한 것은 아니나, 앞날의 사태가 대단히 난처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하고, 이어 도시랑이 어전(御前)에 바친 명첩(名帖)과 봉서(封書)를 봉해 올렸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사명(使命)을 받들고 진휼하러 나와 멀리 온 빈개(儐价)의 영접을 받고 겸하여 선물도 받으니 높으신 정의(情誼)에 감복해 마지 않습니다. 지난 겨울 귀방(貴邦)에서 해마다 겹친 기근으로 유민(流民)과 행려(行旅)의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으니, 쌀을 발급하여 무역을 하면 목숨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청하자, 황상께서는 귀방이 대대로 동쪽 번방(藩邦)을 지켜왔고, 직공(職貢)을 받들기를 공손 근실히 함을 생각하시고, 또 귀방의 백성을 가엾게 여기시어 진휼하실 뜻을 두셨으므로, 저를 보내시어 해운(海運)으로 들여올 진휼 및 무역에 관한 일을 경리토록 하였습니다.
지금 이미 중강(中江)에 와 있는데, 반드시 귀방의 대신으로 재주가 풍부하고 인망이 있는 사람을 얻어서 주관하고 탄압하여야만 비로소 안정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귀국의 재상(宰相) 최석정은 재주와 계책에 밝고 통달하며 학식도 겸하여 넉넉한데다가,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사랑함에 충성 근면함이 매우 뚜렷하니, 중강에 잠시 머물러서 이를 주관하여 경리토록 하고,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 비로소 돌아가게 하면, 황상께서 멀리 대신을 파견하신 융성한 마음에 거의 보답할 것입니다, 만약 하급 관리에게 위임하게 되면 반드시 우물쭈물하며 결단하지 못하여 움직일 때마다 번번이 문의하게 되고, 가고 오는 데 지연되어 아마도 조석에 달린 기민(飢民)의 목숨을 구제하기 어렵고, 도리어 조정에서 구휼하려는 노력을 헛되게 만들 것입니다. 무역에 징발된 선박은 모두가 황국(皇國)의 것인데, 중강은 물이 얕은 여울이어서 오래 정박하면 파손될 우려가 있어 지체하여 머물 수 없으니, 속히 일을 정리하도록 하시어 황선으로 하여금 빨리 돌아가 오래 지체하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해운미로 기민을 구휼하는 것은 황상께서 귀방에 베푼 특별한 은혜이니, 귀방도 마땅히 특별한 예로써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베푼 은혜에 감격하는 자문(咨文) 한 장을 써서 내가 가지고 돌아가게 하시면, 소(疏)를 갖추어 복명(復命)할 것입니다. 특별히 서함(書凾)을 올려 좌우(左右)105) 께 문후합니다. 삼가 통고하오며 갖추지 못합니다. 권제(眷弟) 도대(陶垈)는 머리를 조아려 절합니다."
하였다. 글 속에 쓰여진 말들이 오만하고, 명첩(名帖)은 지극히 패악하여 신자(臣子)로서 놀랍고도 몹시 박절함이 어떠하겠는가? 최석정은 이미 좋은 말로 주선하지도 못하였고, 또 의(義)를 들어 물리치지 못한 채 마침내 그 말을 그대로 임금께 보고하였으며, 장계(狀啓)에서 사용한 말 역시 조금도 놀라고 동요하는 빛이 없었으니, 아! 통탄할 일이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32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492면
- 【분류】외교-야(野) / 무역(貿易) / 구휼(救恤)
- [註 105]좌우(左右) : 족하(足下)와 같음. 즉 귀하란 말임.
○右議政崔錫鼎馳啓言: "陶侍郞請與相見, 仍以文字問答, 其中緊要, 在於私商販米及物貨一款。 臣答以與禮部咨文中, 私商貿販禁止等語, 未免相違。 然旣以奏知皇上爲言, 今當稟奏國都, 而但公私銀貨已竭, 竊恐價直難辦也。 翌日臣書示, 旣已迎謝, 當爲還歸之意, 則多般辭說, 姑無回聽之意。 私商所帶稻米萬餘石、物貨各種, 雖不言數目, 而名色旣繁, 雖募民交易, 難以盡售。 海運米價, 初意頗輕於陸運, 今者吏部假設之言, 未必眞的, 而前頭事, 似極難處。" 仍封進陶侍郞御前所呈名帖及封書。 其書曰:
奉使出賑, 遠荷儐价迎接, 兼錫嘉貺, 高情雲誼, 感佩曷勝? 去冬貴邦籲請, 以連歲飢饉, 流殍相繼, 發米貿易, 可以拯救。 皇上念貴邦世守東藩, 奉職恭謹, 且憫貴邦黎庶, 加意軫恤, 故遣僕經理海運賑濟貿易之事。 今已至中江, 必得貴邦大臣才優望重者, 主持彈壓, 方得其平。 貴台輔崔錫鼎者, 才猷明達, 學識兼優, 爲國愛民, 忠勤懋著。 祈令暫住中江, 主持經理, 候事畢方還, 庶仰答皇上遠遣大臣之盛心。 苟委任下僚, 必依違無斷, 動輒奉詢, 往返遲延, 恐難救飢民朝夕之命, 而反虛朝廷之軫恤也。 至貿易海艦, 悉係皇船, 中江淺灘久泊, 恐致有損, 不可遲留。 祈令作速料理, 俾皇船得以遄歸, 不至久滯。 海運賑濟, 皇上寔施貴邦非常之恩, 貴邦宜奉以非常之禮。 祈將感激陶恩之意, 爲咨一道, 俾僕帶回, 可以具疏復命也。 耑凾肅候左右, 伏惟崇照不宣。 眷弟陶岱頓首拜。
書辭傲慢, 名帖絶悖, 臣子之驚駭痛迫, 如何哉? 錫鼎旣不能善辭周旋, 又不能引義揮却, 遂以其言上聞, 而狀啓措語, 亦無一分驚動之意, 吁可痛哉!
- 【태백산사고본】 34책 32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492면
- 【분류】외교-야(野) / 무역(貿易) / 구휼(救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