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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30권, 숙종 22년 4월 8일 계사 2번째기사 1696년 청 강희(康熙) 35년

대사헌 최석정이 경기·호서의 진휼책을 상소하다

대사헌(大司憲) 최석정(崔錫鼎)이 온정(溫井)에서 목욕하는 일 때문에, 호서(湖西)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과천(果川)에 이르러 상소(上疏)하기를,

"신(臣)이 다녀올 때에 경기·호서의 일곱 여덟 고을을 지났습니다. 대개 눈앞에 본 것을 말하면, 경기의 민사(民事)가 가장 조폐(凋弊)하고, 호서는 매우 심한 경기 보다는 덜하나, 맥추(麥秋)가 아직 먼데 촌간에서 급급한 상황은 곧 마찬가지입니다. 경기의 진휼(賑恤)은 오로지 국가에서 돌보아 구제하는 데에 힘입으므로, 조금도 유감이 없다 하겠으나, 이번에 남한(南漢)강도(江都)의 쌀과 벼를 각 고을로 옮겨서 호구(戶口)에 따라 나누어 준 것은, 한 사람이 얻은 것이 두어 되에 지나지 않는다 하니, 어떻게 허다한 백성의 목숨을 구제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이달 안에 다시 분발하여 그 수량을 조금 넉넉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호서의 여러 고을은 지난해에 적곡(糴穀)을 받아들인 것이 이미 부실한데다가, 국가에서 획급(劃給)한 곡식의 수량도 넉넉하지 못하므로, 보리가 나기 전까지 이어가기 어려운 것은 경기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막 듣건대, 이여(李畬)가 상소하여 청한 것에 따라 삼창(三倉)의 쌀을 더 준다 하는데, 방백(方伯)이 자주 바뀌어 과연 거행하지 못하였다면, 묘당(廟堂)에서 적당히 획급하여 매우 급한 것을 구제하여야 하겠습니다. 각도 백성의 신역(身役) 가운데에서 포(布)를 바치는 것이 가장 괴로우므로, 진청(賑廳)에서 각 아문(衙門)에 돈을 옮겨 보내어 신포(身布)를 충당하고, 그 댓가는 가을이 되거든 바치게 한 것은 지극한 혜택이라 하겠으나, 이런 흉년을 당하여 7분(分)의 혜택을 베푸는 것이 3분의 신역을 줄이는 것만 못하니, 다른 신포와 마찬가지로 독책(督責)을 늦추어 매우 위급한 처지를 풀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아! 지금의 사세(事勢)는 근심스러운 것이 많습니다. 군덕(君德)에는 대단한 흠결이 없기는 하나, 황극(皇極)088) 이 서지 않아서 규모가 정하여지지 않았고, 조정(朝政)은 한두 가지로 문득 헤아릴 수는 없으나, 논의가 어그러지고 뜻이 흩어져서, 개기(改紀)한 지 수년 사이에 나라의 기강과 나라의 형세가 아직도 응취(凝聚)하고 공고(鞏固)해지는 보람이 없으므로, 하루 이틀 점점 더욱 시끄러워져서 하늘의 노여움과 백성의 곤궁이 이토록 극진하게 되었으니, 신은 이와 같이 그치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게 되어, 마침내 서로 이끌어 망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역경(易經)》에 ‘오직 깊이를 극진히 하기 때문에 천하의 뜻을 통하고, 오직 기미를 연구하기 때문에 천하의 일을 이룬다.’하였으니, 혹 외모를 일삼아서 그 본원(本源)이 있는 곳을 극진히 하지 않고, 한갓 말절(末節)을 따라서 그 기요(機要)가 있는 곳을 살피지 않는다면, 대저 어찌 뜻을 통하고 일을 이루겠습니까? 그러나 일에는 시비가 있고 정치에는 득실이 있으니, 본디 사사로운 마음을 품고 치우치게 배척하여서는 안되고, 또한 혐의를 피하여 구차하게 영합하여서도 안되며, 오직 시비의 대체를 잃지 않아서 용사(用捨)의 거조(擧措)가 있을 때에 뜻이 의혹되고 막히지 않게 한다면, 아마도 화합할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스스로 도모하시는 데 이르러서는, 오직 규모를 세우고 나의 지극히 공평한 것을 넓혀서 위에 표준을 세우기에 달려 있으니, 좇고 버리는 데에 따라 사랑하고 미워하거나 공손하고 거역하는 데에 따라 좇고 어기지 말고 오직 현재(賢才)를 쓰고 오직 공론을 생각하여, 다시는 형적(形迹)에 얽매이고 심천(深淺)을 보이지 않는다면, 조정(朝廷)에 있는 신하가 누구인들 마음을 깨끗이 하여 임금의 아름다운 덕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하였는데, 답하기를,

"나라를 근심하고 임금을 사랑하여 경계를 아뢴 정성을 내가 매우 아름답게 여기니, 체념(體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밖의 일은 해조(該曹)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하겠다."

하였다. 병조(兵曹)에서 복계(覆啓)하여 시행하기를 청하니, 윤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30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418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재정-역(役) / 재정-창고(倉庫) / 군사-군역(軍役) / 구휼(救恤)

  • [註 088]
    황극(皇極) :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중정(中正)의 도.

○大司憲崔錫鼎, 以浴溫事往湖西, 還到果川, 上疏曰:

臣於往返之際, 歷過畿、湖七八邑。 槪以目前所及言之, 畿甸民事, 最爲凋弊。 湖西則不比內之尤甚, 而目今麥秋尙遠, 村間汲汲之狀, 便是一般。 畿甸賑事, 專賴朝家之顧濟, 可謂少餘憾, 然聞今番移轉南漢江都米租, 各邑以戶口分給, 一人所得, 不過數升云, 其何以救得許多民命? 臣以爲, 今月中, 不可不更爲振發, 稍優其數也。 湖西諸邑上年捧糴, 旣不實, 朝家劃給之穀, 數亦不敷, 麥前難繼, 與畿甸無異。 纔聞以李畬疏請, 加給三倉米云。 如以方伯數易, 未果擧行, 則宜自廟堂, 量宜劃給, 以救燃眉之急也。 諸道民役中, 納布最苦, 故自賑廳移送錢文于各衙門, 以充身布, 其代則使之待秋捧納, 可謂至惠也, 當此飢歲, 施七分之惠, 不如減三分之役, 宜與他般身布, 一體寬督, 以解倒懸之困也。 嗚呼! 今之事勢, 可憂者多矣。 君德雖無大段闕失, 而皇極不建, 規橅靡定, 朝政雖不可一二遽數, 而論議乖張, 情志渙散, 改紀數年之間, 王綱國勢, 尙未有凝聚鞏固之效, 一日二日, 憲憲泄泄, 天怒民窮, 至於此極, 臣恐若此不已, 國無以爲國, 而終底淪胥以亡也。 《易》曰: "惟深也故, 能通天下之志; 惟幾也故, 能成天下之務。" 苟或徒事外貌, 而不極夫本源之所存, 徒遁末節而不察夫機要之所在, 則夫豈通志成務之云乎? 然事有是非, 政有得失, 固不宜懷私而偏斥, 亦不可遠嫌而苟合, 惟當不失是非之大體, 而用舍擧措之間, 勿令情志疑阻, 則庶幾有輯和之望。 至於殿下之自謀, 則惟在於立箇規模, 恢吾至公, 而建極于上, 勿以趣舍爲愛惡, 遜逆爲從違, 惟賢才是庸, 惟公論是稽, 毋復拘以形迹, 示以淺深, 則在廷之臣, 孰不精白一心, 以承王休也哉?

答曰: "憂愛陳戒之誠, 予甚嘉尙, 可不體念焉? 他餘事, 令該曹稟處。" 兵曹覆啓請施, 允之。


  • 【태백산사고본】 32책 30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418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재정-역(役) / 재정-창고(倉庫) / 군사-군역(軍役) / 구휼(救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