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남구만·좌의정 유상운·우의정 신익상 등과 한재와 상재를 그치게 할 대책을 논의하다
영의정 남구만(南九萬)·좌의정 유상운(柳尙運)·우의정 신익상(申翼相)이 청대(請對)하여 한재(旱災)와 상재(霜災)를 그치게 할 대책을 논의하였다. 남구만은 갑술년145) 에 죄를 받은 조사(朝士)를 경중(輕重)을 구분하여 소석(疏釋)할 것을 청하였고, 유상운은 말하기를,
"소인(小人)이 군자(君子)를 상해(傷害)한 것이 어찌 한정이 있겠습니까만, 경재(卿宰)의 상소처럼 가장 못된 경우는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경재의 상소에 참여한 사람은 수창자(首唱者)와 추종자(追從者)로 구분하여 처벌이 삭출(削黜)시키는 것에 그쳤는데, 논계(論啓)한 대관(臺官)에 있어서는 그 죄상이 경재의 상소보다 가벼울 것 같은데도, 도리어 투비(投畀)146) 의 처벌을 당하였으니, 경중(輕重)이 도치(倒置)된 듯합니다. 가벼운 처벌을 받은 사람에게 지금 그 형률(刑律)을 추가(追加)할 수는 없지만, 죄상은 가벼운데도 중벌을 받은 사람은 마땅히 소석(疏釋)하는 방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작년에 윤지완(尹趾完)이 이렇게 청하자, 박세채(朴世采)가 말하기를, ‘아직 한 해도 넘기지 않았는데, 성급하게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시기가 이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박세채 역시 이 논의를 불가하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이미 한 해가 지났고, 한재(旱災)가 또 이와 같으니, 마땅히 너그럽게 처결하여 석방해야 할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의금부(義禁府)와 형조(刑曹)에 분부하여 속히 너그럽게 처결할 것을 명하였다. 남구만이 청백리(淸白吏)를 초선(抄選)하는 일에 대하여 진달하기를,
"조종조(祖宗朝)의 고사(故事)에 생존한 사람은 염근(廉謹)이라 칭호하여 따로 포장(褒奬)을 베풀고, 사망한 사람은 청백(淸白)이라 이름하여 자손을 녹용(錄用)하였으니, 오늘날도 여기에 의하여 거행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남구만이 또 박세채가 올린 책자(冊子)를 옷소매 속에서 꺼내어 조목조목 이해(利害)를 논술하였다. 그 조목이 대개 수십여 개였는데, 남구만이 시행하기를 청한 것은 다만 영남인(嶺南人)의 수용(收用)과, 내직·외직의 교차(交差)와, 어사(御史)의 별도 파견과, 장재(將才)의 양성 네 가지뿐이었다.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혹은 ‘이것은 성덕(聖德)을 권면한 것이니, 오직 전하께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데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하고, 혹은 ‘이것은 유자(儒者)들의 늘 하는 말로써 오늘날 시급히 할 일이 아닙니다.’ 하였다. 복수설치조(復讎雪恥條)는 ‘이 일은 쉽사리 거론할 수 없습니다.’ 하고, 혁폐반제조(革弊頒制條)는 ‘이 일은 반드시 실제의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여 모두 실행할 수 없는 것으로 단정하였다. 논천통용조(論薦通用條)는 ‘비록 박세채의 말처럼 연영원(延英院)과 존현각(尊賢閣)을 새로 설치해서 초야(草野)에 묻혀 있는 숨은 선비를 불러들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신 등이 마음을 다해 추방(推訪)하여 음관(蔭官) 중에서 두드러진 사람을 뽑아 상주(上奏)하여, 혹은 연석(筵席)에 출입하도록 하고 혹은 대각(臺閣)의 직임에 두도록 한다면, 거의 인재를 얻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공거조(貢擧條)는 남구만이 박세채의 말에 따라 명경과(明經科)의 규정을 변통하여 매 식년(式年)147) 마다 한 가지 경서(經書)를 돌려가며 외도록 하고, 또 제술(製述)로 입격(入格)한 사람을 많이 뽑아서 오로지 입으로 읽기만을 숭상하는 데 이르지 않도록 할 것을 청하여, 임금이 이를 따르려고 하였으나, 뒤에 여러 신하들이 조종(祖宗)의 옛 제도를 경솔하게 바꿀 수 없다고 하였으므로, 논의가 마침내 시행되지 않았다. 남구만과 신익상이 또 말하기를,
"문신(文臣)의 전강(殿講)을 이미 배강(背講)을 하도록 했기 때문에, 비록 불통(不通)한 자라도 수치스럽게 여기질 않으니, 임강(臨講)으로써 개정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하니, 임금이 허락하였다. 유상운이 이윽고 사치(奢侈)에 대한 경계를 진달하고, 신익상도 또 절약과 검소로써 권면하며 옛 제왕(帝王)의 사치와 검소의 효과를 인용하여 진계(陳戒)하니, 임금이 가납(嘉納)하였다.
사신(史臣)은 말한다."소인이 군자를 해친 것을 유상운도 또한 미워하였다. 그런데 이미 경재(卿宰)의 상소에 참여한 여러 사람의 죄가 삭출(削黜)에 그친 것이 실형(失刑)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유배당한 사람들을 굳이 감형시켜 그와 동일하게 하려고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경재(卿宰)와 대관(臺官)은 지위의 높고 낮음이 비록 다르지만, 그들이 대신을 모함하여 죽인 것은 동일한데, 저들이 이들보다 가볍다고 말한 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박세채가 언제 윤지완의 말을 옳다고 하였기에, 유상운이 그 말을 핑계하여 권위(權威)로 삼아 반드시 임금으로 하여금 따르지 않을 수 없도록 하였으니, 죽은 사람이 지각이 있다면 박세채가 어찌 원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아! 이번의 한재(旱災)는 누구의 소치(所致)인가? 남구만의 무리가 인륜을 타락시키고 인정을 거슬려서 중외(中外)가 억울해 하고, 마음이 서로 막혀 있어 조정에 한 점의 화협(和協)하는 기운도 없으니, 그 원인을 따져본다면 어찌 다른 연유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전혀 두렵게 여겨 개도(改圖)할 생각을 갖지 아니하고, 또 용서할 수 없는 죄인들을 경솔히 석방시키려 하여 조정의 의론으로 하여금 더욱 궤열(潰裂)되도록 하였으니, 대신이 나라 일을 계획하는 방도와 재앙을 해소하는 계책이 과연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시세(時勢)에 따르던 무리들은 매양 ‘뒷날의 처지[後日地]’라는 세 글자를 가지고 지극히 원통하다고 하였지마는,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어찌 그 실정에 도피할 수가 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30책 28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376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인사-선발(選拔) / 사법-행형(行刑) / 왕실-국왕(國王) / 역사-사학(史學) / 과학-천기(天氣)
- [註 145]갑술년 : 1694 숙종 20년.
- [註 146]
투비(投畀) : 왕명(王命)으로 죄인을 일정한 곳에 귀양보냄.- [註 147]
식년(式年) : 간지(干支)에 자(子)·오(午)·묘(卯)·유(酉)가 드는 해.○庚申/領議政南九萬、左議政柳尙運、右議政申翼相請對, 以旱災霜災, 論消弭之策。 九萬請甲戌被罪朝士, 分輕重疏釋, 尙運曰: "小人之戕害君子者何限, 而未有若卿宰疏之最爲無狀者矣。 然卿宰疏隨參者, 則分其首從, 罪止削黜, 至於論啓臺官, 則其罪似輕於卿宰疏, 而反被投畀之典, 輕重似爲倒置。 被輕罪者, 今不可追加其律, 罪輕而被重律者, 合有疏釋之道矣。 昨年尹趾完有此請, 朴世采以爲: ‘未及經年, 遽有此言, 恐太早矣。’ 然世采亦未嘗以此論爲非矣。 今旣經年, 旱災又如此, 似宜疏放。" 上命分付禁府、刑曹, 斯速疏決。 九萬陳淸白吏抄選事曰: "祖宗朝故事, 生者稱以廉謹, 別施褒奬, 死者名以淸白, 錄用子孫。 今亦依此擧行爲宜。" 上從之。 九萬又將朴世采所上冊子, 出諸袖中, 逐條論利害。 其目蓋數十餘, 而九萬所請行者, 只是收用嶺南人、內外交差、別遣御史、儲養將才四者而已。 其他則或曰: "此所以勉聖德者, 唯在殿下加意。" 或曰: "此是儒者恒談, 而非今日急務。" 其復讎雪恥條, 則曰此事不可輕易論之, 其革弊頒制條, 則曰此事未必有實效, 皆斷之以不可行。 至論薦通用條, 則曰雖不能如世采言, 創置延英院、尊賢閣, 招徠巖穴之士, 而臣等悉心推訪, 抄啓蔭官中表著者, 或使出入筵席, 或置臺閣之任, 則庶有得人之效矣。 至貢擧條, 則九萬請依世采言, 變通明經科之規, 每式年輪回一經而誦之, 且多取製述入格, 俾不至專尙口讀。 上欲從之, 後諸臣言, 祖宗舊制, 不可經變, 議竟不行。 九萬及翼相又言: "文臣殿講, 旣令背講, 故雖不通者, 亦不以爲羞, 不若改以臨講。" 上許之。 尙運仍陳奢侈之戒, 翼相又勉以節儉, 引古昔帝王奢儉之效, 陳戒, 上嘉納之。
【史臣曰: "少人之戕害君子, 尙運亦惡之矣。 旣知卿宰疏諸人, 罪止削黜之爲失刑, 而被竄者, 必欲降而同之者, 何也? 卿宰、臺官, 尊卑雖殊, 其構殺大臣則一也, 謂之彼輕於此者, 抑何意也? 朴世采何嘗以趾完之言爲是, 而尙運藉重其言, 必使君上不得不從, 死者有知, 世采寧不痛冤哉? 噫! 今玆之旱, 誰所致也? 九萬輩斁敗倫彝, 咈戾人情, 中外抑鬱, 情志乖隔, 朝廷之上, 無一點和協之氣, 則究厥所由, 豈有他哉, 而曾不惕慮改圖, 又欲輕釋罔赦之罪, 使朝論益致潰裂, 大臣謀國之道、弭災之策, 果如是耶? 時輩每以後日地三字, 爲至冤, 而到此安得遁其情乎?"】
- 【태백산사고본】 30책 28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376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인사-선발(選拔) / 사법-행형(行刑) / 왕실-국왕(國王) / 역사-사학(史學) / 과학-천기(天氣)
- [註 146]